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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만끽할 DVD,만화,TV 가이드 [4]
2003-01-30

설특식 만화

아빠, 엄마, 남자랑 여자는 어떻게 달라요?

유명 만화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명작만화 모음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중 www.sugarspray.com

<수상한 아이들>(서울 미디어랜드 펴냄)

윤태호 1969년생혼자 자는 남편(1996)연씨별곡(1997)야후(1999)수상한 아이들(1999)로망스(2002)

이제 한국 남자 만화의 중심작가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윤태호는 데뷔 이래 토착적 서정에 기초한 개그와 묵시적 리얼리즘의 양대 세계에서 자기 입지를 분명히 해왔다. 지난 1999년에 연재를 시작한 <야후>는 한국사회를 휩쓸고 간 대재앙을 중심으로 주인공 청년의 내부에 억눌려 있던 가공할 힘이 터져나오는 과정을 밀도있게 그리고 있다. 자연히 만화가로서도 그 긴장감이 적지 않았을 터인데, 윤태호는 <로망스> <발칙한 인생> 등 일련의 유머러스한 작품들로 그 긴장들을 해소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수상한 아이들>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주류 잡지의 연재만화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필치로 탈출을 감행한 작품으로 보여진다.

<수상한 아이들>은 탁월한 신체조건과 천재적인 운동신경을 지닌 고등학생들이 수영장도 없는 학교에서 ‘수구부’를 만들어 놀아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매점의 배 나온 누나를 매니저로 영입한다거나, 핸드볼 코트에서 가슴에 가상의 수면을 그려 넣고 헤엄치는 척을 한다거나, 발목이 겨우 잠기는 양재천에 무릎을 꿇고 수구 비슷한 걸 해보는 척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무의미한 일들이 계속된다. ‘비인기 종목에도 땀을 쏟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사실 그 말도 그대로 믿기지 않는다.

정통의 스포츠 만화, 정통의 열혈 만화에 노골적인 콧방귀를 내뿜는 이 작품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만화 속 대부분의 선을 사인펜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가는 펜선의 화려한 터치를 거부하고 둔탁하게 그려진 인물들과 동선들은 왠지 어설퍼 보이지만, 그 발랄한 파괴의 이야기와 어울려 색다른 미감을 만들어낸다.

<귀여운 쪼꼬미>(서울문화사 펴냄)

김수정 1950년생오달자의 봄(1981)날자 고도리(1982)아기 공룡 둘리(1983)아리아리 동동(1985)소금자 블루스(1987)일곱 개의 숟가락(1990)

김수정은 그의 대표작 <아기 공룡 둘리>만으로도 우리 만화사에 이름을 내걸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 둘리 아빠의 이름이 너무 컸던 것일까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제작자와 사업가로 변신하여 그의 신작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그의 팬들에겐 늘 커다란 아쉬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달자의 봄> <소금자 블루스> <날자 고도리> <일곱 개의 숟가락> 등 그의 작품들은 하나 빠짐없이 색다른 개성의 주인공들로 꽉 차 있으면서도 그들 모두가 김수정의 아이들이라는 분명한 색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여운 쪼꼬미>는 1990년에 나온 김수정 만화전집의 마지막권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국내 최초의 성(性)교육 만화’라는 타이틀을 내걸 만큼 분명한 의도를 가진 교육만화다. 그러나 학습만화, 교양만화라는 테두리 속에 있는 많은 작품들로부터 느끼게 되는 부담감을 이 만화에서는 더이상 가질 필요가 없다. 김수정은 어린 시절의 성이라는 아주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면서도 두꺼운 안경을 쓴 박사님을 끌고 나와 이런저런 상식을 설파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그의 스타일대로 살아 있는 소년 소녀 주인공을 등장시켜 그들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도록 한다.

아빠와 목욕하면서 알게 되는 남녀간의 신체의 차이, 예쁜 여자를 보면 딱딱해지는 고추에 대한 신비감, 다친 강아지를 살려내고 그를 통해 깨닫는 생명의 소중함…. 많은 이야기들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부드러움으로 전해진다. 김수정은 그 만화의 주인공들처럼 작지만 따뜻한 마음의 서정을 아는 만화가로 보인다. 손가락 끝으로 발견한 첫 생리를 사방에 몰려온 장미와 기묘한 점들로 표현한 심리묘사는 순정만화의 감성에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러버스 키스>(시공사 펴냄)

요시다 아키미(吉田秋生) 1956년생길상천녀(1983)강보다도 길고 완만하게(1984)벚꽃의 정원(1986)바나나 피쉬(1986)캘리포니아 이야기(1988)러버스 키스(1996)야차(1996)

<바나나 피쉬> <야차>라는 만화로 큰 명성을 얻고 있는 요시다 아키미는 오해받기 쉬운 만화가다. 우선 그녀는 1980년대 초반 일본 만화계에 불어닥친 오오토모 가쓰히로(아키라, 동몽)의 선(線)을 소녀 만화에 도입시킨 장본인으로, 그 자체로 이단적인 경향을 충분히 띨 만한 만화가였다. 그리고 그녀의 주요 작품들의 액션미스터리적인 성격은 분명히 남성적인 장르로 그녀 작품의 중성성을 이야기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요시다는 다른 어떤 여성 만화가들보다 감성의 표현에 탁월한 만화가이고, 그녀의 이러한 섬세한 면모는 바로 이 작품 <러버스 키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러버스 키스>는 요시다로서는 별나다 싶을 정도로 ‘연애’를 중심에 두고 있는 만화다. 바다가 가까운 가마쿠라 지방 고등학교의 여섯 남녀가 그 주인공으로, 이들은 A와 B가 사귀고, B는 C를 바라보고, C는 A와 D 사이에서 갈등하는 꼬리잇기 형의 연애관계에 빠져 있다. 그 연애의 형태도 두명의 동성애자를 포함하고, 근친상간의 냄새도 풍기는 등 조금은 특별한 관계이다.

역시 극단의 만화가로서 본성을 발휘하는 듯하지만, 요시다는 그 관계를 극으로 이끌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세심한 마음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여섯개의 변주곡들이 서로 얽히는 과정을 시점의 차이를 두며 겹쳐서 보여주면서, 서로 어긋나는 감정의 선율이 만들어내는 로맨스의 슬픈 화음을 ‘제대로’ 들려준다. 이 감성을 이해한다면 <바나나 피쉬>나 <야차>처럼 일견 남성적, 혹은 중성적으로 보이는 작품들이 얼마나 깊은 여성성에 기대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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