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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독일, 졌다

2002년 독일영화 점유율 10%, 관객 100만 이상 동원 영화 세 편뿐

2002년 개봉된 독일영화는 총 53편. 관객 동원 총 1150만명. 자국영화 시장점유율 약 10%.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무차별 공격 속에서도 그나마 자국영화 시장을 10% 점유했다니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깔끔한 수치 뒤에 숨어 있는 속사정을 들여다보라. 한마디로 2002년 독일영화는 참패했다. 독일인 1150만명이 자국영화를 관람했다지만, 이 수는 2001년 단 한편의 독일영화 <마니투의 신발 한짝>이 동원한 관객 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2001년 독일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이 얼치기 서부극 단 한편에 몰린 관객 수가 무려 1200만명이었다. 마니투의 신발, 그것도 두짝이 아닌 단 한짝이 발휘했던 위력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올해 독일영화계는 참담했다. 자국영화 시장점유율 10%라는 수치도 엄밀하게 따지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프랑스영화 <아멜리에>가 독일 자본이 대거 투입됐다는 구실로, 독일영화로 탈바꿈해 리스트에 올라 있다. <아멜리에>마저 없었다면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은 비참했을 것이다.

<아멜리에> 외 2002년 10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독일영화는 <비비 블록스베르크>(210만명),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오른 <노웨어 인 아프리카>(130만명), 에로틱 코미디 <끝내주는 청년들>(100만명) 등 세편이다. SF 모험영화 <레지던트 이블>과 도리스 되리의 <누드>, 지저분함을 트레이드 마크로 하는 개그맨 두명이 등장하는 <에르칸과 슈테판> 속편 등이 그뒤를 이어 흥행 리스트에 올라 있다. 그런데 이 여섯편 모두가 한 회사 작품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순간 독일 영화계의 강퍅한 현실은 다시 한번 강조된다. 뮌헨에 있는 콘스탄틴영화사의 베른트 아이힝거가 아니었다면 2002년 독일 자국영화 관람객 수는 3분의 2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독일영화 제작사들은 제작보다 수입, 또는 해외 투자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영화들을 수입해 배급하거나 국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 더 안전한 수익을 보장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작사 사장이라는 직함은 명함에나 존재할 뿐, 증시를 통해 할리우드영화에 투자하는 데만 급급하다. 미국 영화인들이 독일 자본을 “스튜피드 저먼 머니”라고 조소하든 말든. 이렇게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해 자국영화산업 발전 노력을 게을리했던 독일 영화계는 결국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앞으로 독일 영화계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아무도 없다.그나마 2003년 독일영화 흥행의 희망을 점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마니투의 신발 한짝>의 연장선상에 있는 코미디 <꿈의 유람선>이다. <마니투>에서 약간 모자란 인디언을 연기했던 미하엘 헤르비히가 주인공 콕 선장으로 캐스팅됐고, 미스터 슈푹과 미스터 슈로티라는 코믹한 인물들이 등장해 헤르비히 전매특허인 막 가는 연기를 받쳐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