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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냐고 묻거든,웃지요 <원더랜드>

Wonderland, 1999년감독 마이클 윈터보텀 출연 셜리 핸더슨, 지나 맥키, 몰리 파커, 이안 하트, 존 심 장르 드라마 (유니버설)

부유하는 일상을 잡아내기에, 디지털카메라는 최적의 매체다. 뿌리박을 수 없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고독감에 시달리는 존재의 미묘한 떨림을 잡아내는 디지털카메라의 힘은 위대하다. 마이클 윈터보텀이 <원더랜드>에서 잡아낸 런던 사람들의 척척한 삶은, 거칠게 흔들리면서 그들의 일상에 달라붙은 디지털카메라에 고스란히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함께 있는 카메라에 너무 많은 것들이 잡혀서 어지러울 지경이다. 두번 보는 <원더랜드>에는 계속 새로운 의미가 찾아진다.

<원더랜드>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 가족에게 벌어진 일들을 보여준다. 노동계급인 빌과 에일린의 세딸은 모두 독립해서 살고 있다. 혼자 아들을 키우는 데비는 미용실에서 일하며 자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머리를 짧게 깎아 스킨헤드족처럼 보이는 전 남편 댄은 주말에 아들과 시간을 보낸다. 몰리는 주방가구를 파는 세일즈맨 에디와 결혼했고,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카페 종업원인 나디아는 애인이나 친구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고 남자를 만난다. 에일린은 늘 옆집의 소음 때문에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들의 삶은 일관되지 않다.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질시하고, 때로 미워한다. 상처를 주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한다.

세상은 참 이상한 곳이다.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아니면 양쪽 다 포함하든. 도저히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또 받아들인다. <원더랜드>를 보면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상처를 주지 않는 삶은 없다는 것.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아가며 살아간다. 빌은 에일린의 강박적인 불평 때문에 아들이 집을 나갔다고 생각한다. 데비는 행복한 가정을 꾸린 몰리가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다. 나디아가 만난 남자 팀은 다른 여자와 침대에 누워 전화로 약속을 잡는다. 마이클 윈터보텀은 그들의 일상을 냉철하게 담아낸다. 카메라에 비친 것만으로도 하나의 ‘세계’가 완벽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처럼 낯설고 이상하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어디론가 나아간다.

때로 지나치게 비관적인 마이클 윈터보텀의, ‘이상하게’ 매력적인 영화 <원더랜드>는 세상의 풍파에 지쳐버린, 그래서 잊어버리고 싶었던 말들을 기억나게 한다. 때론 슬픔도 힘이 된다는 것, 고통도 약이 된다는 것. 아무리 슬프고 고달파도 세상이란 건 이상한 매력이 있다. 마이클 윈터보텀의 디지털카메라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보여준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