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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이 세상을 구하리라,카툰네트워크 <파워퍼프 걸>
권은주 2003-03-26

범죄가 들끓는 도시 타운스빌. 과학자 유토늄 교수는 절망 속에 살다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소녀들’을 만들기로 한다(이래서 ‘로리타 콤플렉스’ 얘기가 나오는겨…). 설탕, 양념, 온갖 좋은 것들을 섞는 와중에 미지의 화합물, 케미컬X가 들어가는 바람에 눈이 왕똥그랗고 초절정깜찍소녀들이 태어났으니, 바로 ‘파워퍼프 걸’이었다고 한다. 이름하여 블로섬, 버블, 버터컵! 타운스빌은 이 유치원 꼬마 셋에게 도시의 평화를 맡기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러나 모조 조조를 비롯해 온갖 악당들이 파워퍼프 걸에게 계속 시비를 걸어오고, 족족 얻어터지며 평온하게 공존(?)하며 살아간다.

카툰네트워크의 최고 인기 캐릭터인 파워퍼프 걸의 파워는 정말로 막강하다. 과장스럽게 큰 눈, 지나칠 정도의 매력발산, 색색별로 나뉘는 캐릭터 등 일본 만화의 장점과 ‘히어로물’에 대한 패러디 등 미국적 장점이 모인 작품이다.

주로 머리를 쓰는 일과 리더를 맡는 블로섬, 울보에 말도 버벅거리지만 너무 귀여운 버블, 한 터프하고 힘이 늘 넘치는 버터컵의 조화. 파워퍼프 걸의 매력은 미치도록 귀여운 와중에 무한히 뻗어나가는 힘이 넘친다는 것이다. 이 유치원 아이들이 보여주는 미덕은 과연 무엇일까? 뜻밖에도 21세기에 걸맞은 강한 ‘여성상’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유치원 꼬마들이? 그렇다. 90년대까지는 의 데이나 스컬리와 <미션특급/신종횡사해>의 국장이 ‘강한 여자’들이었다. 이들은 섹스어필하면서 동시에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21세기로 넘어오면, 여자이면서 강한 것이 아니라 그 여성성 안에 강함을 아예 기본으로 장착한 캐릭터가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섹시하고 강한 여자의 다음 개념은 귀엽고 힘센 여자가 되는 것이다(<엽기적인 그녀>의 그녀는 청승을 떨기 때문에 당연히 탈락해야 한다).

<파워퍼프 걸> 극장판에서 버터컵이 ‘때려눕힌다’라는 개념을 배우는 장면은 ‘파워기본장착’의 중요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열받은 버터컵. 원숭이 로봇을 그냥 뻥 하고 때린다. 그러자 원숭이 로봇이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이 뜻밖의 사태에 얼어버린 버터컵. 그러나 그제야 블로섬은 사태를 깨닫는다. 말을 안 듣는 원숭이를 해치우는 방법은 때려눕히는 것이다. ‘힘의 논리’를 배운 유치원 아이들은 곧이어 도시 전체의 ‘존중’을 얻게 된다. 바로 이래서 파워, 힘, 혹은 권력이 내제된 여성이 단지 여성이 아니라 인간이 되는 것이다. <파워퍼프 걸>에서 ‘귀엽다’와 ‘힘세다’는 절대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귀엽지 않으면 파워퍼프 걸이 아니고, 힘이 세지 않으면 파워퍼프 걸이 아닌 것이다.

<파워퍼프 걸>은 본의 아니게 페미니즘의 구현체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작가 매크레켄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토늄 박사가 예쁜 소녀를 만들려다 슈퍼파워소녀를 만든 것과 비슷하다. 이 경우 ‘화합물X’(케미컬X)는 ‘귀엽다’이다. 손에 꼭 쥐고 싶은 아이들. 부벼대고 싶은 대상. 그러나 귀엽다는 것 안에 강함이 들어 있기에 존중해야 한다. 사랑은 가능하지만 지배는 불가능한 것이다. 매크레켄이 처음에 구상했던 ‘파워퍼프 걸’의 전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똑같다)인 ‘우패스걸’에게는 ‘귀여움’이 적다. 묘한 사악함과 터프함은 있지만 귀여움이 없는 우패스걸은 어째서 ‘귀여움’이 ‘강함’과 만나 진보적이 되었는지 반어적으로 보여준다(DVD에서 확인 가능함).

여기서 진지함을 접고 <파워퍼프 걸>의 본질을 이야기하자면, <파워퍼프 걸>이 일으키는 대부분의 웃음은 사실 ‘비틀기’와 ‘막 나가기’에서 나온다. 악당은 매일 나와서 주인공에게 당해줘야만 한다. 악당이 있어서 파워퍼프 걸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파워퍼프 걸이 나서야 하기 때문에 악당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확실하게 보여주기에 더더욱 웃음을 일으키곤 한다. 일반 상식은 없다. 유치원을 다니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악당을 해치워야 한다는 것부터, 악당들도 ‘타운스빌 시민’으로서의 권리주장을 하는 것까지 기존의 상식 비틀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 전복성이 반복성 안의 전복성임은 무시할 수 없다. 지난주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멀쩡하게 돌아와 또다시 치고받는 뻔뻔함 자체가 무한반복의 웃음을 일으킨다. 지난주에 언제 도시가 쑥대밭이 되었냐는 듯이 멀쩡하게 나타나는 타운스빌은 말 그대로 ‘반복’의 미덕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 만날 부수고 넘어지는 김에 건물을 차라리 안 짓는 에피소드도 생겼으면 한다(만날 괴물과 싸우느라 더러워져서 목욕하기 싫어하는 버터컵의 에피소드를 보고 영감을 받았음). 처음부터 느꼈던 것. 여자 3명으로 이뤄진 일본 그룹 쇼넨 나이프와 닮았다! 했더니 쇼넨 나이프가 실제로 극장판 사운드트랙에 참가하기도 했다. 아싸~.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