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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즌 시작하는 시트콤 <프렌즈>

유쾌한 녀석들, 돌아오다

사람들 특징을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 막연하게 감은 잡히지만 꼭 집어서 알려주는 것은 힘들다. 각 개인은 개성이 있다지만 여러 가지 성격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기에, 전세계의 점쟁이와 점성술사들이 밥을 먹고산다. 그래서 가끔씩 남의 특징을 잘 흉내내는 사람을 만나면, 그것이 무슨 이득이 되거나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경탄하게 된다.

시트콤 <프렌즈>의 대표적인 미덕은 바로 이 점이다. 주인공들을 보면서, 저건 내 남자친구야, 저건 내 여자친구야. 저 성격은 딱 누구 같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미국 애들도 다 저래? 하면서도 인간의 보편적인 평범함에 동감하게 된다. 레이첼, 로스, 모니카, 챈들러, 피비, 조이. 이 여섯명의 좌충우돌은 평범하다고 하면 평범할 수 있는 일상의 한 단면을 ‘살짝’ 보풀려서 보여준다.

사실 <프렌즈>의 내용은 해프닝의 연속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 자체가 해프닝의 연속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극 속에서 살아가며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프렌즈>는 이 해프닝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일일이 교차시키면서 때로는 웃고 넘어가게, 때로는 기억할 만한 순간으로 만들어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 가슴 두근두근하며 보았던 시즌8의 마지막회도 사실은 해프닝의 연속 중 한 지점이라는 사실이 4월7일부터 펼쳐진다고 ‘한다’(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변동 가능성이 있다). 두둥~.

<프렌즈> 미덕은 인물에 있다. TV라는 매체가 가장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드라마 속에서 마치 실제처럼 친근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이다. 각자 나름대로(정말로 똑같은 고민도 다 다르게 한다) 인생을 고민하지만 그 인생 때문에 자기 자신을 소진하고 싶어하지 않는 시기에 놓여 있다. 자기가 서른살이라는 사실에 패닉에 빠지는 레이첼의 모습, 본의 아니게 30대에 이혼을 세번 하게 된 로스, 서른이 넘고서도 여전히 ‘남들이 날 미워하면 어쩌지’ 하고 한숨짓는 챈들러와 모니카, 늘 엉뚱하게 인생을 바라보기에 평범한 인생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뇌가 되는 피비와 조이. 과장법이 섞여 있으나 이들의 모습은 주변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단순 캐리커처인 이들의 모습에서 가장 잘 보이는 것은 장점보다도 결함이다. 여기서 진실이 생겨나니, 결점없는 인간은 없는 것이다. 인간적 결점이라는 결속력으로 <프렌즈>의 주인공들과 시청자들은 하나로 묶이는 것이다. 이 완벽하지 못한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애크러배틱 체조. 그 결과는 너무나도 완벽한 정육각형 구조이다. 물도 육각수가 좋다고 하고 벤젠도 육각형 구조라는데 주연, 조연 구별이 없는 여섯명 구조의 <프렌즈>는 단순 해프닝을 화려한 앙상블로 완성해낸다.

이제 시즌9를 맞는 <프렌즈>는 ‘아직도 하냐’의 함정에 쉽사리 빠지지 않는다. 시즌이 점점 진행되면서 감칠맛 나는 대사가 점점 전형적이 되고, 성적 표현이 은근하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직접적이 되는 결함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원조’로서 품위를 유지한다. 나잇살 먹은 만큼 먹어놓고도 일반적인 성인의 기준과는 다르게 살던 여섯 친구들. 이들은 정말로 십년지기 친구가 되어가면서 깊이를 찾는다. 사회가 요구하는 나이. 시즌7을 넘어가면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20대이건 30대이건 40대이건, 어느 한 시기의 분수령을 넘어가는 것을 계속 보류하고 싶지만, 겁은 나지만 받아들여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이제 시작할 시즌9에서는 울보 공주 레이첼이 엄마로서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프렌즈>는 실없는 친구들의 우정 사이에서 웃음과 감동을 찾아낸다. 그것이 성공 요인이 맞다. 하지만 불안정한 우리나라의 케이블/위성 시장과 지상파 저질 시트콤을 고려해볼 때, 케이블에서 방영을 시작한 <프렌즈>가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요인은 여러 가지이다. 케이블을 볼 수 있는 ‘백수 시청군’이 늘어났다는 것, 수입한 방송사가 계속 살아남았다는 것, 그리고 미국 대사의 감칠맛을 깔쌈하게 옮겨주는 번역의 힘(워너브러더스코리아 DVD는 <프렌즈> 출시 때 동아방송 번역을 써달라!)!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프렌즈>는 10년이라는 대장정의 막판 도약를 천천히 준비하고 있다.

모니카의 거실은 이제 모니카-챈들러 부부의 사적 성향이 강해졌지만, 여전히 ‘센트럴퍼크’ 커피가게는 모든 친구들의 공간이다. 가끔씩 그런 공간을 꿈꾸지 않는가? <프렌즈>는 그런 공간을 마련해준다. 단지 소비적인 수다일 뿐이라고? 시시덕거리더라도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가. 요즘같이 테이크아웃 커피집이 늘어난 시기. 때로 커피집 소파에 푹 퍼져 앉아 자기 인생에 행복한 한순간이 다른 사람으로 인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누군들 느끼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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