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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네글레스코 감독의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권은주 2003-04-16

옛날 뉴욕 언니들

How To Marry A Millionare1953년, 감독 진 네글레스코출연 마릴린 먼로 EBS 4월19일(토) 밤 10시

“명성은 곧 상품이다.”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팝 아트에 응용한 화가 앤디 워홀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실크스크린이라는 인쇄방법을 이용해 마릴린 먼로라는 유명스타의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여성용 향수의 커버로 사용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은 마릴린 먼로의 초기작이다. 우리는 흔히 그녀를 요염한 여배우로 기억하곤 한다. <7년만의 외출>에서 고혹적인 하반신의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다.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에서 마릴린 먼로는 아직 그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대신, 코믹한 연기를 과시한다. 시력을 감추기 위해 안경을 벗고 눈뜬 장님 신세가 되어버린 모습은, 웃기엔 너무 잔인한 유머처럼 느껴진다.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은 어느 세 여성에 관한 영화다. 모델인 샤츠와 폴라, 로코 등은 돈많은 남자를 남편으로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그녀들은 맨해튼에서 호화스런 집을 빌린다. 쇼핑하러 갔던 로코는 톰이라는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샤츠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로코 역시 어느 석유업계의 거물을 만나지만 그 역시 샤츠에게 호감을 보인다. 한편, 눈이 나쁜 폴라는 남자들이 안경 쓴 여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고민한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은 물욕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남성을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담는다. 영화는 사랑과 쾌락, 그리고 소유욕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성들이 진정한 사랑에 안착하는 것을 주요한 이야기로 삼는다. 물론 캐릭터들의 급속한 변심은 일견 남성 관객의 판타지, 다시 말해 순응적이고 온순한 여성상에 근접하고 있어 불편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 최근 국내에도 방영되는 TV시리즈 <섹스 & 시티>의 클래식 버전이라고 하면 어떨지.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은 시네마스코프로 만든 두 번째 극영화로 기록된다. 그것은 영화가 시작하는 오프닝에서부터 예고된다. 극장 커튼이 열리면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연주하는데 당시 관객에게 실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맛보는 기분을 제공하기 위해 특별 제작한 것이다. 전통적인 화면비율에 비해 대형화면으로 상영되었던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은 스타의 외모를 전면에 배치하는 데 주력한다. 좋은 예가 마릴린 먼로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은 채 나른한 포즈를 취한 그녀의 모습은 지금 봐도 고혹적이다. 진 네글레스코 감독은 원래 화가 출신이었다. <키다리 아저씨>(1954)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네글레스코 감독은 영화를 스토리텔링보다 화려한 시각 이미지를 중시해 만들었다. 그 점을 예증하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 ‘사치스런’ 영화로 보이는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