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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비처럼 날았던 시절이여 <알리>

1960년에서 1981년 사이에 세계는 무슨 일들이 있어났는가. 믿거나 말거나 인류가 최초로 지구가 아닌 다른 별까지 발을 내디뎠고, 비틀스와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딥 퍼플이 오리지널 멤버로 연주를 하고 있었고 축구황제 펠레는 바나나킥을 보여주었다. 아베베라는 에티오피아의 마라토너는 맨발로 올림픽 2연패를 이룩했으며 루마니아의 코마네치는 10점 만점이라는 ‘완벽’에 도달하는 체조솜씨를 선보였다. 그런 기록은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 사이에도 지독한 전쟁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머리에 꽃을 꽂고 평화를 노래했다. 머리에 꽃을 꽂으면 평화가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이 있었고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과 짐 모리슨이 불꽃처럼 타들어갔다. 신중현이 기타를 메고 팔도강산을 누볐고 김민기가 하나하나 눈물 같은 노래를 만들어 몰래 나눠가졌다. 소년소녀들이 목요일 밤에 시를 낭송하던 문학의 밤이 있었고, 커피 한잔을 마셔도 수천장의 음반과 고급 오디오를 구비한 다방에서 음악감상을 하면서 마셨다. 무도회장에서는 진짜 밴드가 진짜 신나는 음악을 진짜로 연주해주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그때는 진짜 록밴드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믿어지는가. 이렇게 멋진 인간들과 전무후무할 사건들과 다시 못 볼 아름다운 풍경들이 불과 20년 안에 다 모여 있었다는 사실이.

1960년에서 1981년 사이에는 권투선수조차도 진짜로 멋졌다. 운동선수로서는 가장 명예로울 올림픽 금메달조차도 인종차별이라는 부당함 앞에서는 미련없이 강물에 던져버리는 선수가 있었는가 하면, 명분없는 전쟁과 강제징집에 반대해서 명예로운 챔피언 벨트마저 기꺼이 포기하는 선수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운동선수가 뱉은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완벽한 문장을 기자 마이크 앞에다 뱉어내는 선수도 있었다. 그 정도면 시인이자 철학자이며 위대한 웅변가라고 칭해야 마땅하지만 그 시절에는 멋진 것이 너무나 많았던 탓에 그 정도는 그저 ‘떠버리’라는 별명으로 만족해야 할 시대였다. 이 권투선수들의 이름은 모두 무하마드 알리이다. 권투라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일대일 타격기 스포츠에 품위와 철학과 우아함과 위트를 겸비하고 예술의 경지에서 춤을 추듯 경이적인 기록들을 경신해나갔던 이 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다름 아닌 1960년에 데뷔해서 1981년에 은퇴했다. 1960년에서 1981년 사이 얼마나 멋진 인간들과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가득했던가. 그러잖아도 멋진 것이 넘쳐나는 지경인데 그 20년 동안 무하마드 알리는 헤비급 세계챔피언을 세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멋진 시대에 어울리는 멋진 시합이 무엇인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워낙에 멋진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게 멋진 챔피언이 나왔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멋진 챔피언이 있었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멋진 시대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것은 진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

불공평하다. 전세계 60억 인구가 유난을 떨면서 새 문을 열었던 21세기. 이 멋진 신세기는 정말 볼품없다. 진짜 록밴드도 없고 음유시인도 없다. 신기한 것은 많지만 낭만은 없다. 이 시대에도 약탈의 전쟁은 있지만 그 상처를 위로할 머리에 꽃 같은 노래는 하나도 안 나온다. 분노는 하되 승화는 없다. 스포츠의 놀라운 기록은 연봉과 상금의 액수일 뿐 철학과 위트로 나비처럼 나는 선수는 없다. 승리는 하되 우아함이 없다. 확실히, 좋은 시절이란 것은 존재한다. 그리고 확실히 좋은 시절은 다 갔다. 이런 말은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무하마드 알리가 더이상 권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형태/ 궁극종합예술인 www.theg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