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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미국 실험영화의 대부 고 스탠 브래키지 추모 행사
옥혜령(LA 통신원) 2003-04-21

지난 3월, 이라크전과 아카데미 시상식을 둘러싼 잡음이 한창일 때 미국 아방 가르드 영화계는 스탠 브래키지(Stan Brakhage)라는 큰 별을 잃었다. 아방가르드영화가 예술영화전용관에서마저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오늘날, 일반인들에게 그의 부고는 그저 생소한 어느 영화인에 대한 뉴스로 치부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50년의 경력 동안 380여편에 이르는 실험영화를 만들어온 브래키지의 생은 그 자체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계의 산 역사인지라 그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미국 각지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LA의 아메리칸 시네마테크도 브래키지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4월10일부터 ‘브래키지 추모전’(4. 10∼18)을 연다. 브래키지의 최근작 4편과 그의 대표작 <독 스타 맨>(Dog Star Man, 1962), <윈도 워터 베이비 무빙>(Window Water Baby Moving, 1959) 등과 함께 짐 셰든이 감독한 다큐멘터리 <브래키지>(1999)가 상영돼 미약하나마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다큐멘터리영화에는 브래키지의 인터뷰뿐 아니라, 조너스 메카스, 브루스 엘더 등 그와 함께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계를 이끈 이들의 영화도 담겨 있어 1950, 60년대 절정기를 맞이했던 미국 아방가드르 영화계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빌리지 보이스>의 짐 호버먼이 “그저 한명의 영화인이라 부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표현한 바대로, 스탠 브래키지는 ‘미국식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아방가르드 미학을 정립했다고 평가받아왔다. 60년대 유토피아적인 저항문화의 한가운데서 낭만주의적인 예술가의 신화를 좇아 그의 개인적인 비전을 카메라의 형식실험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브래키지의 실험정신은 자신만의 고유한 비전을 찾고자 했던 수많은 아방가르드 영화인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운드와 내러티브가 배제된 채 추상적인 영상과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미지의 시각 경험을 제공하는 브래키지식 이미지들은 어느 비평가의 표현처럼, MTV 뮤직비디오나 나이키 광고에서, 고다르-영화에서, 또는 이웃집 아마추어 영화인의 홈비디오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브래키지의 업적을 평가하는 일은 그래서, 오락산업 논리에 전용당하고 있는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또 다른 가능성, 가장 개인적이어서 또한 정치적일 수 있는 카메라의 힘을 재발견하는 것일 수 있다. 남가주대학(USC)의 아방가르드영화 권위자인 데이비드 제임스 교수는 “카메라를 통해 개인적인 차원의 비전을 발견하는 작업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브래키지의 공헌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줄기 빛이 우리의 ‘훈련된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얼마나 많은 무지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고 브래키지는 물었었다. 브래키지가 남기고 간 380개의 무지개는 그저 얼마나 더 무궁무진한 무지개가 우리의 카메라를 기다리고 있을지 다시금 기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