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내 인생의 영화
볼거리, 이 정도는 되야지! <매트릭스>
2001-01-05

1895년 12월28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그랑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대중에게 영화를 상영했다. 세계영화사에서는 이날을 ‘영화 탄생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영화에 관한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뤼미에르 형제는 ‘왜?’ 영화를 상영했으며, 그들이 상영한 영화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뤼미에르 형제는 돈을 벌기 위해영화를 상영했다. 그들은 1프랑의 입장료를 받고 영화를 보여주었고, 그들이 보여준 영상은 ‘멀리서 달려오는 기관차를 찍은 것’이었다. 기차를 본 적이 전무한 혹은 거의 없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돈이 아깝지 않은 스펙타클한 영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영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기대하는 첫 번째는 ‘볼거리’다. 스토리나 테마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이런 취향 때문인지 내가 가장 즐겨보는 영화는 ‘액션영화’다. 중학교 시절 이후로 ‘소림사’나 ‘무림’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영화는 모두 보았을 정도로 액션영화 중에서도 ‘무협영화’를 특히 좋아했다.

하지만 같은 액션이라도 총싸움 영화는 취향에 맞지 않았다. 칼싸움에 비해 액션이 초라해 볼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장미가 흐르는 결투 장면은 그래도 볼 만하지만, 주인공인 주제에 비겁하게(?) 방패막이 뒤에서 총질을 해대고 땅바닥을 기어다는 건 별로 보기 좋지 않은 모습들이다.

그런데 대학 시절 영화에 관한 내 취향을 바꿔놓은 명작을 접하게 되었다. 바로 <영웅본색>을 비롯한 오우삼 감독의 영화들이다. 오우삼의 총싸움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리얼리티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군대에 갔다온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총이라는 것은 잘 맞지 않는 물건이다. 가장 안정적인 엎드려 쏴 자세로 정조준을 하고 쏘아도 잘 맞지 않는다. 오우삼 영화의 주윤발처럼 날아다니고 벽을 차고 뛰어오르고 계단 난간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총을 쏜다면 상대에게 맞을 리 만무하지만, 주윤발은 그런 화려한 액션을 펼치면서 적을 해치운다. 주인공답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용서할 수 있다. 아니 칭찬해주고 싶다. 멋있기 때문이다.

총싸움 액션의 볼거리의 대부분은 오우삼이 만들었다. 쌍권총을 멋있게 쏘는 것, 손목을 비틀어서 권총을 쏘는 것, 양손을 들어 빈 탄창을 버리는 법 등등. 나는 오우삼 이상으로 총싸움 영화를 멋있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정말 충격적인 영화를 만났다. 오늘의 본론에 해당하는 영화 <매트릭스>다.

총싸움이 칼싸움보다 초라해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칼이나 창이 휘둘러지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총알이 날아가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기껏해야 총소리가 들리고 사람이 죽거나 물건이 부서지는 것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우삼은 총쏘는 사람의 포즈에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매트릭스는 과장법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마지막 20분이다. 나는 그 부분을 너무 좋아해 지금까지 100번도 넘게 본 것 같다. 테크노 음악의 빠른 비트처럼 쏟아져 나오는 총소리. 그리고 파편이 튀다못해 거의 부서져버리는 기둥들. 얼마나 많은 총알이 날아다니고 있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총알로도 멋있는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매트릭스>가 위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은 치열한 총격전 장면이 아니다. 그 정도는 오우삼도 했으니까. 내가 감동한 부분은 오우삼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장면, 바로 총알이 날아가는 궤적을 보여준 장면이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한번 보고나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나는 대단한 발명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표절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인지 <매트릭스>의 총알 날아가는 신을 흉내내는 사람들이 없지만, 나는 이것이 총싸움 영화에 있어서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잡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날아오는 총알을 잡거나, 칼로 총알 튕겨내는 장면 같은 것이다. 이제까지 이런 장면을 표현하면 싸구려 홍콩영화에서나 나오는 ‘뻥’처럼 보였지만, <매트릭스>의 아이디어를 이용한다면 멋있는 ‘볼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최근의 영화이긴 하지만 굳이 <매트릭스>를 뽑은 것은 내 삶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기획을 진행중이다. 이 두 가지 역시 ‘볼거리’가 중요한 장르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한다. <매트릭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낡은 장르도 머리를 쓴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관련영화

김지룡/ <놀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