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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관객의 시선에,서인석 <별> 미술감독
2003-05-21

처음 <> 시나리오가 나올 당시, 장현일 감독은 세트 제작비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올 로케로 촬영을 마칠 예정이었다. 시나리오상 산속에 자리한 전화국 중계소야 팔도를 뒤지면 한적하고 조금 낭만적이기까지 한 적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 동선도 크지 않은 장면들이니 적당한 장소만 찾으면 현장에서 모든 촬영 스케줄을 감내할 수 있을 거라던 감독의 기대는 프리 프로덕션 1단계인 헌팅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강원도에서 시작된 산행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아우르다 결국 소백산 연화봉에 이르러서야 끝이 났다. 겨우 한달뿐인 준비기간을 헌팅에만 쏟아부은 셈이었다.

감독의 예상을 깨고, 산속 중계소는 호텔을 방불케 할 만큼 호화롭기 그지없었고, 낭만을 논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웅장했다. 게다가 전화국 중계소만 달랑 있는 경우는 드물고 각종 유선방송 중계국과 군사기지가 한데 어우러져 있기 일쑤였다. 소백산에 자리한 전화국 중계소를 찾아낸 것으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이야기 배경이 가을과 겨울인지라 계절을 좇아가는 일정이 녹록지 않았고, 특히 겨울 소백산의 일기가 너무나 불안정했기 때문에 촬영일정은 툭하면 좌절됐다. 결국 양수리촬영소에 세트를 짓기로 결정하고, 보통 내부촬영에만 쓰이는 세트가 아닌 중계소 안과 밖을 모두 재현한 세트가 지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예산은 애초 금액을 훨씬 넘어섰고, 세트와 그 밖의 소품까지 담당했던 미술팀의 고충은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아파트 일대를 돌며 버려진 가구며 생활 소품들을 주워오는 것은 물론이고, 겨울의 세찬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 튼튼한 중계소 외부를 짓기 위해 가을 내내 소백산 연화봉 정상에 구슬땀을 묻었다. 눈이 자동차와 키를 나란히 할 땐 일일이 쓸며 정상 탈환을 해야 했는데, 등산객의 따가운 눈초리도 미술팀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고.

미술감독 서인석(34)씨와 다섯명의 미술팀원들은 함께 모인 기억이 드물 정도다. 영우(유오성)의 옥탑방 내부과 수연(박진희)의 동물병원 내부, 소백산 중계소 현장 세트와 영춘에 자리한 동물병원 외부를 마감하기 위해 모두 네팀으로 흩어져 활동했기 때문이다. 팀을 통솔해야 하는 서 감독의 경우 한곳이 마무리되는 것을 보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각각의 마감상황을 체크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주요 무대인 중계소 촬영 때문에 소백산을 제집 드나들 듯 오르내리기를 한달, 드디어 10월1일 크랭크인 일정에 맞출 수 있었다.

어렵게 연출한 세트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로선 배운 게 참 많은 현장이었다. 관객에게 인정받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현장의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관객이 얼마나 세세한 부분까지 체크하는지, 영화에 요구되는 진정성이란 무엇인지, 남모르게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영화가 가야 할 길이 대충 눈에 잡히는 중이다. 영화 찍겠다고 덤비는 후배들에게 “정말 잘할 자신 있으면 하라”고 넌지시 조언하는 그는 관객의 평만큼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은 없다고 믿게 됐다. 그의 믿음을 현실에서 알현할 순간을 기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글 심지현·사진 조석환

프로필

1970년생·중앙대 조소학과 89학번한미르(‘god’편) CF를 비롯, 각종 방송광고 및 뮤직비디오 소품 제작 및 MBC, KBS 미술센터에서 활동<내츄럴시티>(민병천 감독), 단편 <Money 夢> <박상병 파리 들어왔다> 미술·세트 제작<>로 미술감독 입봉·현재 狂 영상미술 제작공장 운영(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