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생각도감
심통의 한가운데,<사우스파크>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모이면 돈 이야기를 한다.

한대수 아저씨가 “음악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화폐 이야기를 하고 화폐 잘 버는 사람들이 모이면 음악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는 것처럼 우리 모두 돈 이야기를 하며 인상쓸 때 전 국민은 <매트릭스>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매트릭스>는 더 더워지는 요즘 왠지 심통이 난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내가 아는 그녀도 그 심통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녀는 어떤 노부부가 사는 낡고 오래된 집 방 두칸을 빌려서 살면서도 살며시 방문 앞에 예쁜 화단을 꾸며놓았다. 비좁은 방 수납공간을 위해 천장 가까이 긴 선반을 만들어 책과 비디오를 꽂아두고 이렇게 건너편 빌라의 화려한 인테리어가 아닌 생활 속에서 작은 아이디어를 내어 작은 공간을 꾸미며 사는 녀석이다. 타워팰리스가 부러울쏘냐. 그녀의 집은 내용도 이야기도 사람도 보이는 정말 사람사는 집 같은 곳이었다. 그런 그녀는 가끔 예쁜 화단 앞에서 어디서 구해왔는지 벽돌에 석쇠를 대고 우리를 불러서 고기도 구워먹곤 한다. 그럴 때마다 주인 할머니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살짝 보시곤 한다. 그녀는 노래도 곧잘 불러 노래부르기를 즐기는데 그 노래란 게 모두 괴이쩍어 <인터내셔널가>부터 <사우스파크>에 나오는 <엿먹어 후레자식들아>까지 알 수 없는 노래들을 자신의 배를 손으로 마치 북을 치듯 퉁퉁 치며 부르는 것이다. 영락없이 만화 <아타고올은 고양이의 숲>에 나오는 주인공 뚱보고양이처럼 말이다.

그녀가 <매트릭스>를 보다가 졸았다고 이야기해준다. 나에게 보지 말라며…. 그 말투엔 전화로 <사우스파크> 노래를 불러젖힐 심통이 묻어났다(제발 부르지 말아줘 ㅜ ㅜ). 다행히도 노래를 불러주진 않았지만 예의 그 느릿느릿한 말투로 이야기해준다. ‘영화는 현혹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정곡이라구.’ 카하하하. 그녀의 명쾌함에 ‘난 사실 살찐게 아니라 뼈가 굵은 거야’라고 말하는 <사우스파크>의 뚱보 카트맨이 생각났다. <사우스파크>는 트레이 파커와 맷 스톤이라는 똘아이 청년들이 지하실에서 종이를 오리고 붙이며 만든 5분짜리 단편으로 시작해서 결국 코미디센트럴의 시리즈로 급기야 극장판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판은 역시 시리즈의 인물들이 나와 계속 욕을 한다.

뚱보 카트맨은 여전히 귀여운 아이를 발로 뻥 차버리고, 여자친구만 만나면 토하는 스탠은 게이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며 그 심오한(?) 클리토리스란 것을 찾으러 다닌다.

혼자 웅얼거리며 말하지만 암묵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듣는다는 웃긴 설정의 카일은 항상 만날 죽고 이번엔 급기야 그의 얼굴이 공개되는데 금발의 미소년이었다(사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번에 개봉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 보면 컬럼바인고교를 나온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위의 똘아이 청년들이라고 소개된다. 그들은 그 학교에서 왕따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란다. 과연 그 훌륭한 왕따들은 어떤 주의, 주장, 정치적 메시지 그런 것 전혀 없이 그냥 모든 것에 욕을 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것이다. 조잡하고 유치한 절지애니메이션으로 말이다. 근데 보면 속이 시원하다. 거침없다.

싫어하는 것을 거침없이 실명으로 욕을 해대는 것도(3대 미친여자 중 하나 셀린 디온이 나오거나…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크흐흐 돈으로 노래부르는 것들) ‘테렌스와 필립’이라는 인물 둘이서 나와 계속 욕만 헤대는 영화를 극장에서 모두들 나가는데도 너무나 감동적으로 마지막까지 보는 욕쟁이 꼬맹이들…. 그 욕설을 그대로 배워 학교에서 마구 욕할 때의 그 쾌감….

최고다! 역사상 가장 유치하고 조잡하지만 그들은 정곡을 찌른다.

어떤 감각을 현혹시키는 기술도 없다. 고작 오린 종이쪼가리들을 움직이며 그야말로 시종일관 욕만 해댄다. 하지만 그 전복성은 <매트릭스>의 100배다.

<매트릭스>처럼 놀라운 기술은 없을지언정 자신의 색깔과 정곡을 찌르는 것이 있는 영화들. 만든 사람이 느껴지는 영화들. 왕따 감독이 느껴지는 <사우스파크>처럼 그런 것들을 우린 찾는다. 이번 <매트릭스>가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 나의 그 매력적인 친구가 마지막으로 느릿느릿하게 한 말이 더 걸작이다.

‘이번 <매트릭스>는 남자는 졸라 열심히 위에서 땀흘리며 운동하고 있는데 여자는 눈감고 자는 기분이랄까….’ 움화화홧….

역시 <매트릭스>는 계속 극장에서 사람들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겠지만 우린 모두 자버리자. 그리고 집에 와 비디오로 욕쟁이 꼬맹이들의 욕을 배워서 초여름 심통의 한가운데서 모두들 배를 손으로 퉁퉁 치며 노래나 부르자. ‘엿먹어라 후레자식들아….’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프로듀서 sicksadworld@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