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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씨네21 영화평론상 [3] - 유운성 이론 비평

영화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살펴보는 악의 존재론

늑대의 시간

브레송과 베리만에게 악이란, 아무런 가치판단의 기준도 지니지 못한 채 그저 주어져 있을 뿐인 세계와 그 속에 던져진 인간의 행위 자체이다. 즉, 평가되지 못하고 오로지 기술될 뿐인 사건들의 총체야말로 악 자체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영화 속에서 악은 세계에 대한 가치중립적인 명명(命名)에 다름 아니다. 브레송의 영화에서 세상의 질서에 개입해 들어오는 은총에 대한 갈망은, 베리만의 인물이 외침과 속삭임에 대한 신의 응답을 갈망하는 것에 비교될 수 있다. 결국 이는 가치에 대한 갈망이다.

브레송과 베리만은 <팡세>의 파스칼처럼 현실의 밑바닥에 놓인 심연을 응시하며 불안해한다. 무한에 대한 인식, 즉 현실에는 경계가 없고 바깥도 없다는 인식은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응답의 주체 혹은 전적 타자가 자리할 곳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히치콕이나 브뉘엘에게 악이란 가치중립적인 세계에서 가치를 창출하려고 시도하는 인간행위에 붙여지는 이름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시도는 일종의 허위의식에 기반한 것으로 필연적으로 대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낳는다. 그리하여, 히치콕이나 브뉘엘은 그러한 허위의식을 비웃으면서 그 정체를 발가벗겨 보이고자 노력한다. 이들은 브레송이나 베리만과는 달리 현실 바깥을 사유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현실의 인간들이 세워놓은 상상적인 도덕의 경계를 비웃는다. 악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죄의식은 허구에 불과하다. 악은 세계에 대한 가치중립적인 명명이 아니라, 몇몇 사건들과 행위에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허물의식의 부재 내지는 불가능성이 피할 수 없는 결론이라 할지라도, 그처럼 허물의식이 부재하는 세계의 모습을 똑바로 응시하여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샤브롤은 응답의 주체 혹은 전적 타자의 존재를 문제삼지 않고도 도덕적 딜레마의 발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살인행위를 냉담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나서 이를 악이라 부르지 못하거나 부르지 않는 등장인물과 우리 자신의 태도를 문제삼는다.

악에 대한 탐구는 바꾸어 말하면 가치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나, 이러한 탐구를 수행하는 작가들은 종종 참혹한 결론에 이르곤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몫은 시선의 회피가 아니라 치열한 응시일 것이다. 인간의 시간은 지나갔고 지금은 새벽도 오기 전, 로마인의 표현처럼 온전히 늑대들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