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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애니를 껴안다⑤ - 김준기

치밀하고 섬세한 걸음으로

작업실에서 만난 김준기(31)(사진) 감독에게서는 야성의 냄새가 났다. 민소매 밖으로 드러난 팔뚝은 제법 울퉁불퉁했다. 얼굴은 거뭇거뭇한 구레나룻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그랬더니 “남자한테 보여주려고 운동한 거 아니다”라고 웃었다. 그렇게 웃는 표정이 천진난만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사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등대지기>나 최신작 <인생>(사진)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들의 표정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최근 캐릭터 작업이 한창인 <방>(The Room)에서는 더욱 다채로운 표정 연기를 기대해도 좋다고 귀띔했다.

“짤막한 단편에서 관객에게 뚜렷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치밀한 스토리 못지않게 미세한 표정 연기도 중요하죠. 그런 점을 부각하려 하고 있어요.”

그런 치밀함이 그에게 준 것은 많다. 첫 작품 <생존>은 1995년 제1회 SICAF에서 단편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세 번째인 <등대지기>는 2001년 LG동아만화페스티벌에서 단편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2002년 SIAF 관객상, 2002년 문화관광부 주최 영상만화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방>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사전지원작으로 선정됐다. 그렇게 얻은 상금과 지원금은 전업작가로서의 힘든 삶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운이 좋았죠. 회사를 그만두고 가진 것을 모두 털어 만든 작품이 잘됐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반드시 운이 좋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늘 아이디어를 궁리하고 그것을 꼼꼼하게 작품 기획으로 연결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이뤄진 준비가 그에게 지원과 당선의 영광을 준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는 공주대학 2기(91학번)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 공주로 내려갔지만 제대해 복학한 뒤로는 컴퓨터애니메이션에 매달리게 됐다. 독일 단편 <밸런스>를 보고 난 뒤부터였다.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버릴 것은 버리는 것이죠. 하다보면 이것저것 욕심이 생기지만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독립감독이 가져야 할 미덕 아닐까요.”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로서,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그는 “미야자키 작품 속 캐릭터 하나하나가 갖는 카리스마가 부럽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카리스마로 가득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꿈이다. 최신작 <방>은 등이 서로 붙어 있는 실험체 이야기다. 둘이 협력해야 밥을 먹을 수 있지만 현실은 공평하지 못하다. 늘 혼자 하던 작업이지만 이번에는 2명의 식구를 새로 늘렸다. 회사이름도 애니메이션과 피노키오를 합친 아노키오(Anocchio)라고 만들었다.

“젊음의 특권은 실패라고 생각해요. 대학 때 마음껏 실험하고 최대한 실패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얻은 경험을 회사에 들어가서 성공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사용해야겠죠.”

그래서 김 감독은 많은 애니메이션 기획사들이 10분짜리 단편조차 만들어보지 않고 대작 시리즈, 극장용을 만들 기획을 덜컥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치 못한다. 세 번째 작품을 기획하면서 “이제 조금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다. 담담하게, 하지만 기운차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문득 끝모를 토템 기둥을 부둥켜 감싸안고 기어오르는 ‘인생’의 젊은이가 오버랩됐다.정형모/ <중앙일보> 메트로부 기자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