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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맛있는 섹스…>가 <첫사랑 사수…>보다 더 끌리다

저렇게 거침없이 하다니…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을 시사회장에 찾아가서 봤다. 에로영화의 ‘에’자와도 멀찍한 거리를 두고 금욕적인 관람태도로 일관해온 나에게 그것은 정녕 한편의 장대한 스펙터클이었다.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던 극장의 풍경 말이다. 철푸덕철푸덕 돌비서라운드 시스템으로 울려퍼지는 ‘육체의 판타지’ 속에서 족집게 수능 명강을 듣듯 초롱초롱 빛내며 화면에 집중하는 수백개의 눈알이라니. 에로영화의 전인미답이나 다름없는 나에게(자꾸 강조하는 걸 보니 뭔가 켕기는 게…) 이런 풍경은 매우 기묘하면서도 유쾌한 경험이었다.

다음날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의 시사회장에 또 꾸물꾸물 쫓아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했다. 아, 한국영화를 보면서도 자막이 필요할 수가 있구나, 하는. 볼륨 만빵으로 올린 차태현의 사투리 대사를 반 이상 알아듣지 못하고 나는 전반부 한 시간 동안 옆의 선배한테 “뭐라구요? 뭐라구?”를 반복하다가 결국 청취를 포기하고 나머지 시간은 안 가겠다는 사람 온갖 감언이설로 끌고 간 선배의 코앞에 시도때도 없이 주먹을 불끈불끈 들어올렸다(때론 나도 선배의 권위에 과감히 도전한다. 흠).

두 영화는 제목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공통점이 있지만, ‘맛있는 섹스’와 ‘첫사랑 사수’라는 단어조합이 전하는 느낌처럼 다른 점이 더 많은 영화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편의 자리에 놓여 마땅한 영화인 듯하다.

우선 눈에 보이는 차이는 이런 거겠지. <맛있는 섹스…>의 커플은 거의 보자마자 훌렁훌렁 벗고 경기를 시작한다. <첫사랑 사수…>의 커플은 경기 종료 막바지까지 뽀뽀 한번 안 한다. 그러나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랑이란 오만가지 색깔을 띠고 각자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으니 ‘해서’ 맛도 아니고 ‘안 해서’ 맛도 아니라고 본다. 내가 발견한 두 영화의 결정적 차이는 사랑의 성적 정체성에 있다. <맛있는 섹스…>가 이성애 영화였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첫사랑 사수…>는 알고보니 동성애 영화였다는 것이다.

전자에서 사랑을 나누는 건 건장한 두 남녀지만 후자에서 진정한 커플은 건장한 두 남남이다. 태일과 선생 영달. 태일과 일매라고? 글쎄다. 이 영화에서 사랑게임을 벌이는 청군백군은 태일과 영달이다. 일매? 두 남성이 펼쳐가는 싸움과 타협의 매개물인 일매는 줄다리기하는 동아줄이자 둘이 튀겨대는 배구공이고, 두 사람이 씨름을 벌이는 모래판이다. 동아줄과 배구공, 모래판은 당근, 말이 없다. 일매, 역시 말이 없었다. “저는 태일이에게 돌아갈 수 없는 몸이에요. 으흑”이라는 70년대 스타일의 저 영롱한 대사를 읊어대기 전까지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애잔한 느낌을 주는 유일한 아니 유이한 두 장면이 태일과 영달이 서로를 업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장면이라는 건 이 영화가 ‘알고보니 퀴어영화’라는 걸 보여주는 강력한 단서가 아닌가.

후반부에서 난데없이 일매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설정이 들어가는 것 역시 두 남남의 이루기 힘든 사랑- 두 사람은 교육계와 법조계라는 우리 사회에서 기성질서에 가장 충실한 조직에 편입돼 있거나 편입될 예정이다. 커밍아웃하면 인생이 거의 아작난다- 을 맺어주기 위한 감독의 고도의 전술적인 배려가 아닐 듯싶다. 죽음을 코앞에 둔 일매와 태일이 결혼함으로써 영달과 태일 커플은 남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명분이 생겼고, 조만간 일매는 세상을 떠날 터이니 커플은 이제 오붓하게 둘이서 살 수도 있다. 약간 슬프지만 정말 따뜻하고 사려깊은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나로서 동성애 영화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나 자신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게임의 당사자로 등장하는 <맛있는 섹스…>를 훨씬 더 재미있게 봤다. 카메라의 각도는 남성중심적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감독이 여성의 감정선을 비교적 세심하게 읽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방식으로 시작한 사랑이건 절정의 순간은 하강을 기다리게 마련이다. 하강의 속도에서 몸의 대화이든 말로 하는 대화이든 대화는 어긋나게 되고 풍요로움 대신 공복감이 관계를 채우게 된다.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해지는 섹스장면들은 둘의 관계 속에서 싹트는 허전함과 소외감을 신아(여성)의 입장에서 차분하게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본 나와 주변사람들은 비록 대단한 수작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이렇게 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영화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우리가 허구한 날 입으로만 섹스예찬을 하며 리버벌한 척하는 사이 남들은 그저 묵묵히 실천에 옮긴다고 생각하니 그것이 참으로 분통할 따름이다. 김은형/ <한겨레>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