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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면 영화 덕,안 되면 홍보 탓?

◈ 홍보마케팅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와의 만남 | 우리 회사가 마케팅한 작품을 묻기에 제목들을 쭉 나열했다. 갑자기 그 클라이언트 왈,

“어, 나 그 영화 사기당해서 봤는데!”

웬 사기? 그 다음 말이 더 걸작이다.

“우리 영화도 그렇게 사기를 쳐서라도 흥행이 잘되게 해주세요.”/ “네?”이거 사람을 완전히 사기꾼으로 모시네.

◈ 친구들과 모임 |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영화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한 친구 왈,

“그 영화 완전히 속아서 봤어. 야한 줄 알고 봤다가 두 시간 동안 졸다 나왔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그날 난 완전히 사기꾼으로 몰렸다.

한쪽은 속아서 영화를 본다고 울상이고 한쪽은 제대로 속이지 않는다고 울상이고. 이럴 땐 차라리 내가 울고 싶은 심정이다.

간혹 거리를 지나가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서 하는 얘기들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마치 관객을 속여서 영화를 보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사기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영화의 단점은 감추고 장점만을 두드러지게 포장할 뿐이다.

홍보는 설득이다. 혹은 유혹이다. 때로는 정보이며 그래, 솔직히 얘기해서 가끔은 속임수다. 거짓말에도 의도적인 것이 있고 속아도 좋을 만한 순진한 것이 있다. 마케팅을 하면서 가끔 사용하는 과장은 거짓이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관객은 자신의 구미에 맞게 상황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야하고 미스터리하다면 둘 중 한 가지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야한 것에 관심을 가졌다면 온통 그쪽으로만 몰려든다. 야하다는 것만 강조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되면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야한 미끼를 더 많이 던질 수밖에 없다. 야한 건 더 야하게. 그러니까 사기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관심있는 쪽에 비중을 두는 것뿐이다.

관객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고 거기에 매력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홍보마케팅은 적극적인 유혹 수단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쓸모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이다. 제대로 된 홍보 기획자라면 관객이 그 영화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정확한 자료와 정보를 적절하게 제공하여 친절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간혹 난감할 때가 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는 것보다는 숨기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오락성이 전혀 없는 영화를 엄청난 오락영화로 포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예술성을 솔직하게 내보였다는 이유로 애써 기반을 깔아놓은 작업을 포기해야 할 때는 차라리 진짜 사기라도 칠걸,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다. 흥행이 안 되면 거의 그 책임은 마케팅하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충무로에 전설같이 내려오는 말이 있다. ‘흥행이 잘되면 영화가 좋아서, 흥행이 안 되면 홍보 마케팅을 못해서.’

홍보한 작품마다 관객몰이를 한다면 그 얼마나 기쁜 일일까? 아니 모든 영화가 흥행이 잘돼서 최소한 손해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솔직히, 사기를 쳐서 관객이 많이 온다면야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사기도 칠 만한 여지가 있어야 치지! 무조건 홍보 탓만 하면 정말 어쩌란 말이냐! 채윤희/ 올 댓 시네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