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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미안해>의 `제작자` 명계남

프로듀서 경력,이제부터다

대통령 선거 전후로 ‘배우 명계남’은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친구 이창동을 험한 전방에 보내놓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산다.”

정말 그랬다. 최근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면 늘 ‘비서’가 받는다. 새삼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정치와 관련한 수많은 인터뷰와 출연 요청을 막아보려니 건방져졌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또 정신 건강과 몸을 추스르면서 일을 좀 제대로 해보려니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 일은 영화에 전념하는 거다. “프로듀서로 시작한다는 자세로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 심재명 명필름 대표 등 능력있는 후배한테 물어보고 배우려고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면 꿇을 것이다.” 광주영화제 집행위원장, 남도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 등 만만치 않은 직함을 새로 얻었지만, 무엇보다 그는 제작자로서 새로운 길을 활발히 모색하고 있다. 최근에는 배우였던 방은진씨의 감독 데뷔작 <엄마, 미안해>(가제)의 시나리오가 완성됐고, 투자자도 구했다. 여고생이 새 아빠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 이야기다. 제작 시스템도 변화를 모색한다. 신문의 정치면, 사회면에 주로 등장했던 그의 행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모’와 ‘국민의 힘’ 이후에 대해서도.

방은진 감독의 작품을 기획하기 시작해서 시네마서비스의 투자 결정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봐야 하나. 방은진과 기획을 시작한 게 2년이 좀 넘고, 두달 전쯤 시나리오가 완성됐는데 여기에 오기까지 심정적으로 꽤 오래 걸린 것 같다. 지금까지 이창동 감독하고만 세개 하지 않았나. 하긴 그것도 파이낸싱은 늘 쉽지 않았다. 아무튼 다른 감독 걸 상업영화로 만든다며 뛰어들었다는 측면에서 프로듀서로 데뷔하는 셈이다. 예전에는 시나리오 들고 파이낸싱한다고 다녀본 적이 없다. 시네마서비스 이전에 시나리오를 한두 군데 넣어봤더니 내부의 의견이 엇갈린다면서 결정을 망설이기에, 이거 힘든가, 그랬다. 개인적으로 친한 씨네2000의 이춘연 사장에게 보여줬더니 이틀 뒤엔가 전화가 왔어. 기막히게 좋다, 정말 방은진이 쓴 거냐고 물으면서. 그래서 시네마서비스가 내년도 라인업까지 거의 다 결정이 돼 있다는 걸 알지만 자신감을 갖고 보여줬더니 김상진 감독도 좋다, 정말 방은진씨가 쓴 거냐고 묻데. 강우석 감독도 보고 곧바로 오케이하더라.

시네마서비스와의 파트너십은 일회성인가. (이스트필름 창립작 <초록물고기>도 시네마서비스가 투자했다.) <엄마, 미안해> 이후를 얘기한 건 없다. 이거말고도 그동안 준비한 작품이 예닐곱개 된다. 앞으로도 잘해보자는 말 정도만 건넸다.

시나리오가 나온 뒤에 보니 대중적 호소력은 어디에 있는지, 나름대로 민감하다면 민감한 소재인데 바로 그 지점이다. 자극적인 소재이지만 <데미지> 식으로 풀지 않고 독특하게 간다. 나도 방은진이란 인물과 영화하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영화에 대해 많이 알고 준비가 많이 돼 있는지는 정말 몰랐다. 음악이 굉장히 중요하다.

<데미지>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그 영화에선 누군가가 응징을 당하지 않나. 이건 그렇지 않다. 엄마와 새 아빠가 결혼하는 게 첫 장면인데, 마지막은 딸과 새 아빠가 결혼하는 걸로 끝난다.

결말을 미리 공개해도 되나. 뭐 어떤가? 엄마가 그 결혼을 축복해준다. <데미지>처럼 어느 한쪽의 아픔으로 남지 않는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을지 논란의 여지가 있을 테지만 여기선 다 용서가 된다.

진행 중인 오디션은 어떤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주인공 여고생이 첼로를 연주해야 돼서 두세달은 연습해야 한다. 10월 중하순에는 촬영에 들어가야 하니 일정이 빠듯하다. 굉장한 스트레스다.

엄마 역은. 30대 중후반이란 연령대의 역을 할 만한 배우층이 워낙 좁지 않나. 그리고 좀 심하게 말하면 잘 나가는 배우들께서 엄마 역, 아줌마 역을 하려고 해야 말이지. 설득을 해내야 한다.

앞으로 상업영화에 주력하겠다는 건 무슨 뜻인가. 영화를 하는 것에 큰 차이는 없다. 이창동 감독 영화만 해와서 바깥 분들이 방향을 전환해달라는 말들도 하고, 가까운 후배나 동료도 ‘이창동 것만 하는데’ 하며 시나리오도 갖고 오지 않고 해서…. 사실 이스트필름은 내 친구 이창동이 영화를 하겠다고 해서 만든 거 아닌가. 그러면서 영화에 깊이 발을 들여놨고, 영화가 가진 사회적 맥락도 더 깊이 알게 됐고. 그동안 트로피가 수십개 쌓이고, 중3 정도 되는 영어실력으로 5시간씩 떠드는 뻔뻔함도 생기고, 빚도 수억원이 생겼다. 그리고 이창동이라는 걸출한 영화작가가 태어나면서 덩달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옆에서 굉장히 훌륭하고 멋진 프로듀서로 한국영화판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껍데기 같은 이미지도 생겼다. 사실 이창동 영화를 올해 들어가려고 했다. 올 초에 빨리 찍자면서 가을쯤에 촬영하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제목도 다 나왔었다. ‘밀양’(密陽)이라고, 시크릿 선샤인…. 근데 노무현 대통령이 뺏어갔다.

장관 된 뒤에 그 작품 어떻게 하기로 이야기를 나눴나. 어떻게 얘기하겠나. 만날 틈도 별로 없고, 연락을 해도 길게 얘기할 틈이 없다. 감독으로 돌아오면 그걸 할지 다른 거 할지 아직 모르지.

조우필름과 공동 브랜드를 꾸리겠다는 건 무슨 이야기인가. 그동안 조우필름, 마술피리(<고양이를 부탁해> <장화, 홍련>), 청년필름(<해피엔드> <와니와 준하>) 등의 제작사와 아주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이 제작사들이 안정적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지 않나, 그래서 내가 왜 각자 찌그러져 있느냐, 합쳐서 힘을 모으자고 했다. 일단 조우필름과 공동제작을 하기로 했다. <엄마, 미안해>도 공동제작으로 갈 거다. <장화, 홍련>을 마술피리와 영화사 봄이 같이 했던 것처럼. 조우필름이 준비 중인 김응수 감독의 <달려라 장미>도 공동제작이 될 거다. 근데 공동제작이란 말이 재미없어서 브랜드 하나 만들어서 하기로 했다. 그래야 다른 회사가 붙기도 좋고.

아까 준비 중인 작품이 예닐곱편 있다는 것도 양쪽을 합친 숫자인가. 아니다. 그러면 열편이 넘는다. 그것도 아주 양질의 시나리오가. 우리가 능력이 부쳐서 못하고 있는 거지. 이번 겨울에 눈이 많을 때 찍었으면 좋겠다는 게 있다. SBS 시나리오 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숨바꼭질>(가제)이란 작품으로 눈오는 산간 마을에서 80∼90%를 찍어야 한다.

공식 직함이 몇개나 되나. 이스트필름 대표와 남도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이 있고, 광주영화제 집행위원장, 근데 이거 공식적으로 결정이 됐나 모르겠네.

그러지 않아도 집행위원장을 관둔다 만다 하는 소문이 있던데. 그런 소문이 났나? 집행위원장과 관련해 내가 말하기는 곤란한 처지이긴 한데, 영화계가 뜻을 모아 광주영화제를 잘 살려보자는 뜻에 출발했다. 근데 누가 갈 것이냐, 형이 가서 간판 노릇하면서 우짜우짜 뛰어다니면 힘을 받겠다고 해서 하게 됐다. 이제까지 영화계가 광주영화제를 많이 돕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많이 도와야 한다. 올해 영화제가 진행되던 중간에 들어간 거라서 내가 할 건 별로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지금은 임재철 프로그래머가 진득하게 잘하고 있다.

영화 바깥에서 많은 일을 했는데 이제부터는 영화에 주력한다고 보면 되나. 그렇다. 영화만 한다.

남도영상위원회 일은. 출발점인데 내가 실질적으로 할 게 많지 않다. 올해는 아주 기초적인 예산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준비하는 중이다. 순천, 광양, 여수는 프로모션해볼 여지는 많은 곳이다. <애기섬>의 장현필 감독이 사무국장을 맡아 열심히 잘하고 있다.

‘국민의 힘’은. 뭐 그냥 회원이다. 아무것도 아닌데, 일부 언론에서 덧씌워서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자꾸 공격한다. 생각하면 화나는 일인데 그걸 벗기는 방법이 없다. 내가 이 정권의 실세네, 일등공신이네 그러는데 어이가 없다. 선거과정에서 내가 모나게 군 게 있긴 있지만 사실 뭐 대단하게 한 게 없다. 사회 봤다, 사회. 유세단에 끼어서 찬조연설 가끔 하고. 그것도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일등공신? 그렇게 하지도 않았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노사모를 이끌었던 문성근, 명계남은…’ 하고 수식어를 붙이는데, 아마 교통사고로 죽어도 계속 쓸 거다. 지난번에 교통사고로 숨진, 노사모를 이끌고 국민의 힘을 뒤에서 조종했던 명계남이 어쩌고 하면서. <조선일보>가 그러는 건 이해가 간다. 내가 심하게 했으니까, 물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랬던 거지만. 그런데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분들이 오해하는 게 많은 것 같다. 선거과정에서 했던 말들 때문에. 내가 선동가 기질이 있다. 좋은 말로 하면 구사력이 뛰어나고 사람 맘을 흔드는 재질이 좀 있다고 할까. (웃음) 남들이 껄끄러워할 것도 탁 던지니까 상대방이 들으면 맘 아파할 말들이 있다. 근데 그건 선거과정의 일이었고…. 이거 길게 말하면 재미없는데, 일등공신이 아닌데 일등공신이라고 하고 뭐만 하면 다 거기다 연결시키니 억울하다.

‘국민의 힘’쪽에서 어떤 역할을 요청하는 게 없나. 없다. 오히려 나서면 방해되지. 안 나서도 방해되는데.

문성근씨가 최근 ‘국민의 힘’을 탈퇴했는데, 그 이야기는 미리 좀 나눴나. 나도 신문 보고 알았다. 그렇게 자주 만나지도 않는다. 나중에 만났을 때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말 나온 김에 노 대통령이 몇 가지 쟁점들 때문에 지지자들로부터 비판도 받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 된 건가 아쉽고 안타까운 게 없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그분을 신뢰한다. 실수인지 아닌지 내가 판단할 입장도 아니고, 지켜보자는 표현을 하기도 그렇고. 큰 변화가 있는데도 그런 건 보지 않으니 안타까움이 있다. 일단 검찰을 장악하지 않잖나. 이건 국민이 잘 모르는 엄청난 변화고 옳은 변화다. 애초부터 그가 대통령이 된다고 세상이 갑자기 확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노사모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러더라. 누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거나 어떤 집단이 권력을 잡았을 때 세상이 확 뒤바뀔 것이라는 기대나 그렇게 되는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고. 세상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단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어떤 사람이나 세력에 의해 휘둘리는 세상이 아니라 상식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이 되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 말한 게 2년 반 전쯤이다.

스크린쿼터 문제를 투자협정과 떼어놓고 논의하기로 했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친구가 주무부처 장관 아닌가. 그래서 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이런 이야기도 나오더라. 노 대통령이 영화계 몇놈들 때문에 국익을 해치고 있다고. 국익을 위해서도 스크린쿼터에 손대는 건 안 된다.

이창동 장관의 입지가 정부 내에서 쉽지 않을 텐데. 그렇다. 그런데 다들 꼼짝 마라다. 이창동이 꼼꼼하고 완벽하고, 어눌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서 말하는 걸 보고 야당쪽에서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힘들고 외로울 때 하소연하지 않나. 그 친구가 그러질 않는다. 예전에도 심정적으로 아프고 그러면 나나 문성근이가 이창동이를 통곡의 벽 삼아 자꾸 전화하고 그랬지 그는 우리에게 그래 보질 않았다. 늘 혼자 다 안고 갔지. 그리고 그럴 여유나 시간도 없다. 가끔 전화해도 ‘잘 있지’ 하고 인사만 나누는 정도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본다. 내가 이창동이와 많은 논의를 할 것이다, 하물며 노 대통령과 직접적인 라인도 있을 것이다 하는데 전혀 아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연기 인생일 텐데.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잘 시키지 않네. 연기를 잘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또 나에 대한 오해나 편견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젊은 프로듀서는 연출부가 나를 쓰자고 하니까 무지하게 비쌀 거라고 했다고 한다. 혹은 골치아프고 말 많은 놈으로 알 텐데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엔터테이너로서의 기능은 잃어버렸다. 정치판에서 대단한 뭐를 한 것도 아니고, 실질적으로 김인문씨보다 더 한 게 뭐 있냐고. 새로운 반향이니까 드러난 것뿐인데.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엔터테이너의 기능을 되찾고 싶은 열망은 있나. 있지만 단시간에 되는 건 아니다. 연기자로서의 열망과 희망이 지금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시기는 아니다. 연기는 일종의 생활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일단 후배들과 영화를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빚 때문에 많이 고달프겠다. 영화 세편 제작하면서 들어온 게 없으니까. <오아시스>는 조금 이득을 줬지만 워낙 작았고. 그런데 뭐 로또도 있고. 로또가 되면 <키노>도 다시 살리고. (웃음)

겉으로 드러난 것말고 영화계에서 어떤 역할이나 사회에서 요청받은 일이 있나. 2년 동안 회사가 엉망이 되도록 내버려뒀는데, 그동안 뛰어다닌 정열의 10분의 1만 쏟으면 우리 영화사 돈 무지하게 벌 거라는 자신이 있다. 그 사이 어떤 정치 지도자의 당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언론개혁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그 공부를 좀 하고 있다. 나하고는 관계없이 내 아이들이나 이 다음 세대의 세상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산영상위원회 위원장 할 때 차린 영화사 ‘씨네씨’는 어떻게 됐나. 사무실은 계속 운영 중이다. ‘씨네씨’처럼 대표는 아니지만 대구의 대경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와 관계를 맺게 됐다. 문화도 지역으로 자꾸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방에서 파이낸싱하고 그 지역에 돈을 떨어뜨려야 한다. 방은진 감독과의 작업도 씨네씨가 계기가 됐다. 대경과는 협업 혹은 공동제작 형태로 일을 진행할 생각이다. 영화판에서 이창동 때문에 유명해진 걸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에서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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