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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문화와 문화산업
2001-05-16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신현준| 문화지식인 http://homey.wo.to

사회: 오늘은 문화지식인 신호미(37·여·무직)씨를 모시고 ‘양아치 문화’, ‘건달문화’를 다뤄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영화의 경향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들이 하위문화를 제대로 표현한 최초의 작품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먼저 하위문화의 개념부터 정의하고 싶은데, 대부분 그걸 ‘상위문화보다 하위에

있는 문화’라고 알고 있더군요. 언젠가 모 일간지 기자는 “한국에서는 록음악을 아직 하위문화로만 생각한다” 운운하더군요. 한심합니다.

문: 그렇다면 어떤 뜻입니까?

답: 하위문화란 2차대전 이후 영국 등지에서 청소년 문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학술 패러다임으로 정착한 개념입니다. 이들의 하위문화란 ‘노동계급 청년 하위문화’이며, 그전에 시카고의 갱을 연구하면서 이 개념을 사용한 학자도

있습니다. 즉, 하위문화란 지배문화와는 상이한 신념 및 가치체계, 라이프스타일을 말합니다.

문: 그렇다면 하위문화는 지배문화에 저항하는 것입니까?

답: ‘운동권식’으로 묻지 말아 주십시오. 반항(revolt)은 맞지만 저항(protest)은 아닙니다. 또한 반항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사선적으로’, 즉, ‘비스듬히’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는 때로 반동적일 수도 있습니다.

문: 1980년대 한국의 대학생 문화도 하위문화라고 부를 수 있나요? 그런 주제로 책을 쓴 사람도 있던데….

답: 한마디로 코미디입니다. 하위문화와 반문화 사이의 고전적 구분도 못하는군요. ‘애늙은이 문화’였던 1980년대 대학생 문화는 하위문화도,

반문화도, ‘청년문화’도 아닙니다. 차라리 1970년대 보헤미안적 대학생 문화가 반문화에 가깝습니다.

문: 한국에서 하위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실체는 없다는 말인가요?

답: 하위문화가 발달한 영국에는 모드, 펑크, 스킨헤드, 크러스티, 레이브 등이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면서 공존합니다. 한국에서는 경찰의 주기적

소탕작전에 의해 가리봉으로, 화양리로, 돈암동으로 쫓겨다니다보니 하위문화의 ‘역사’가 없고 실체도 모호합니다.

문: 영화에 드러난 한국의 건달문화나 양아치 문화는 어떨까요?

답: 하위문화라고 부를 수 있든 없든 청년 하위문화가 조직화된 권력에 쉽게 포섭되는 점이 한국(혹은 아시아)의 특수성인 듯합니다. 반면 하위문화에

대한 지식인의 낭만적 시각은 매우 강합니다. 일전에 정윤수가 ‘백지영이여 다시 한번’이라고 쓴 글도 비슷한 맥락인데, 백면서생이 보기에 터프하고

멋있거든요. 아, 물론 영화나 글 자체가 후지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문: 어쨌든 탐탁지 않으신 것 같은데….

답: 하위문화 ‘이론’이 비판받는 이유들 중 하나가 하위문화가 보통 문화보다도 마초(macho)적이고 여성비하적이기 때문입니다. 지배문화에

속한 인물이 남자답게 굴면 짱구(=장진구)되기 십상이지만, 하위문화에 속한(다고 간주되는) 남자가 터프하게 굴면 아주 관대합니다. 게다가 하위문화가

보통의 대중문화로부터 정말 독립적인가라는 질문도 제기됩니다.

문: ‘하위문화의 진정성’과 ‘대중문화의 상업성’ 사이의 이분법이 허구적이라는 말로 이해해도 될까요?

답: 영국 같은 나라의 경우 언론계와 학계에서 ‘이건 로컬 하위문화’라고 떠들면 업계에선 그걸 글로벌 비즈니스로 만듭니다. 이런 시스템을 저는

‘하위문화산업’이라고 부릅니다. 20년 전에는 ‘인간망종’으로 취급받던 펑크족이나 하던 울긋불긋한 머리염색을 이제는 동네 아줌마들도 하질 않습니까.

아, 참 이제는 <빌리 엘리어트>처럼 하위문화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작품도 장사가 잘됩니다.

문: 한국의 댄스가요도 하위문화산업인가요?

답: 면도날 씹고 다니던 언니들이 댄스그룹 멤버가 되는 건 맞지만 한국은 아래로부터 자생적으로 올라오는 건 아닌 듯합니다. ‘하위문화의 진정성이

있다’는 평가가 있어야 산업에도 유리하다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진리와는 거리가 있죠.

문: 그렇다면 한국영화는 이제 하위문화산업으로 정착하는 징후를 보이는 걸까요?

답: 그러기엔 관객이 하위문화의 성원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대학물 먹은

사람들이 양아치 친구를 떠올리면서 보는 것 아닐까요? 하위문화산업이라기보다는 노스탤지어산업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이걸 제대로 평하려면 지역성에

대한 ‘노골적’인 토론이 필요한데, 한국에서 이 주제만큼 터부시되는 게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