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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들,나가 있어!호모포비아를 조장하는 방송들

‘느끼하거나 무섭거나.’이 나라 공중파 방송에서 남성동성애자(게이)가 다뤄지는 방식이다. 남성동성애자 (캐릭터)는 코미디 프로그램과 추적 다큐프로그램의 단골 손님이다. 이 두 장르를 통해 이들은 극단적으로 희화되거나 위험집단으로 타자화된다. 90년대 중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 동성애자가 공중파에 ‘데뷔’한 이래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언감생심 동성애자 내부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이들의 일상을 찬찬히 응시하는 시선을 아직 이 나라의 공중파에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동성애자라는 낯선 존재 앞에 어찌 할 바를 모르는 ‘포비아’(공포증)의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조금 딱하다. 최근 한 코미디와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또다시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증)가 전파를 탔다.

KBS2TV <개그콘서트> 갈갈이 삼형제의 ‘느끼남’은 계집애 같은 말투와 행동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게이 캐릭터를 대표한다. 은연중에 게이 캐릭터의 냄새를 풍기던 느끼남이 지난 6월22일 방송을 통해 드디어 커밍아웃을 했다. 아니 형제인 박준형에게 아우팅당했다. 아우팅의 과정은 이랬다.

박준형씨는 이날 ‘호모 XXX’라는 소재로 말장난을 시작했다. 개그맨들의 얼굴사진이 붙은 패널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이들에게 어울리는 ‘호모 XXX’가 무엇이냐고 묻는 방식이었다. ‘댄서 킴’으로 알려진 개그맨 김기수씨는 ‘호모 댄서스’라는 방식이었다. 마지막 질문으로 ‘느끼남’의 사진이 보여졌다. 이어지는 박씨의 자문자답. “호모 느끼스라구요? 아닙니다.” 정답은 “호모”. 관객의 느물느물한 웃음이 터졌고, 느끼남은 특유의 눈웃음으로 ‘애매호모’한 분위기를 돋웠다.

‘느끼함+자아도취+여성스러움=남성동성애자.’ 고전적인 공식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모처럼만의 노골적인 호모포비아였다. 게이 캐릭터를 지겹게 울궈 먹으면서도 끝끝내 커밍아웃하지 않는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오히려 솔직했다. 홍석천씨의 ‘쁘아종’부터 숨겨진 게이 캐릭터는 개그의 단골 소재였다. 한 유명 디자이너의 여성스런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 개그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다. 그러나 어떤 캐릭터도 느끼남처럼 당당하게 커밍아웃하지 않았다. 물론 좋게 말해서다. 당연히 이성애자의 웃음은 동성애자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을 게다.

KBS의 정통 시사다큐 프로그램 <추적 60분>도 잇따라 호모포비아임을 커밍아웃했다. 제목도 살벌한 ‘에이즈 혈액이 당신을 노린다’ 편은 지난 7월19일 전파를 탔다.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된 10대 소녀 이야기를 다룬 이날 방송에서 동성애자는 다시 한번 에이즈 확산의 원흉으로 지목당했다. 소녀에게 수혈된 ‘나쁜 피’의 헌혈자가 남성동성애자였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예의 그 흐린 창과 코맹맹이의 증언으로 남성동성애자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헌혈을 통해 에이즈를 확산시키는지 증명했다. 감염된 피를 헌혈한 사람이 남성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계집애같이 논다”는 증언까지 끌어들였다. ‘나쁜 피’의 주인공과 인터뷰는 남성동성애자를 파렴치한 집단으로 낙인찍는 화룡점정이었다.

‘에이즈 혈액이 당신을 노린다’ 편이 방송되자 <추적 60분> 홈페이지는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자)들이 득달같이 모여들었다. 게시판에는 ‘동성애자=정신이상자, 신이 만든 불량품’, ‘엽기, 변태 동성애자 때려죽이자’ 등 부화뇌동이 판을 쳤다. 몇몇 네티즌들이 ‘에이즈 수혈감염보다 당신들의 호모포비아가 더 무섭다’고 반박하기는 했지만 이미 공중파가 전국에 뿌려놓은 편견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에이즈를 매개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에둘러’ 드러내는 ‘에이즈 혈액이 당신을 노린다’는 앞으로 반복될 동성애 혐오증의 전조로 읽힌다. 최근의 시사다큐 프로그램은 동성애자를 대놓고 ‘변태’로 몰지는 못한다. 그만큼은 이 사회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증거다. 호모포비아의 현재형은 동성애자를 ‘청소년을 물들이는 오염집단’, ‘에이즈를 퍼뜨리는 위험집단’으로 은유하는 것이다. 하긴 동성애자들이 지워진 존재였던 시절, 동성애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동성애자의 존재를 증명해 동성애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했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물론 남성동성애자들이 모두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나 <파니 핑크> 등 서구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들이 묘사하듯 이성애자 여성의 가장 좋은 친구, 관계의 현자들은 아니다. 일본 야오이 만화의 꽃미남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이 보여준 촌스러운 재현방식은 이 나라 공중파의 현주소를 확인케 한다. 그들의 ‘개혁 의지’가 협소한 정치의 울타리에만 갇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참, 이 나라 공중파에서 여성동성애자(레즈비언)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곧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 인권운동의 고전적인 명제, 침묵은 곧 죽음이다, 가 왜 진실인지를 공중파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증거하고 있다. 게이들은 조롱당하는 정체성마저 감지덕지할 형편이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