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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놀이,<매트릭스>가 선사한 또 하나의 즐거움

‘교내 총기사건의 대명사’로 불리며 전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컬럼바인고교 사건의 가해학생들이 <매트릭스>의 팬이었다는 발표 이후, <매트릭스>는 청소년들에게 폭력을 조장하는 영화의 대명사로도 깊게 각인돼 있다. 현실세계와 영화 속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당하는 억눌림을 폭력으로 표현한 것에 <매트릭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종의 ‘마녀사냥’에 반대하는 이들도 끊임없이 반론을 제기해왔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 대표적인 경우.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여론 주도층들은 <매트릭스>와 같은 할리우드영화가 청소년을 중심으로 심약한 이들에게 그릇된 세계관을 심어주고, 그를 기반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만들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증거는 얼마 전 ‘미국 10대 3명, <매트릭스>를 본뜬 범행 계획’이라는 식의 제목으로 각 언론에 소개된 한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건의 전모는 뉴저지에 사는 10대 3명이 자동차를 훔쳐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하려 ‘모의’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들의 범행 모의와 <매트릭스>가 연계되게 된 것은, 고성능 화기와 수천발의 총알을 보유하고 있던 그들이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를 숭배해 그의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본뜨고 다닌 경우가 많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거기에 그들이 자신들을 ‘네오’라고 부르며 무술을 연마하기도 했다는 사실도, <매트릭스>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굳건한 증거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기사에는 범인들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벳이라는 소년이 언어장애가 있는 동생 때문에 친구들에게서 놀림받은 것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담겨져 있었다. 그 소년이 당한 언어적/정신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엉뚱하게 <매트릭스>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서울에서 열렸던 첫 번째 매트릭스 놀이의 참가자들

일본 매트릭스 놀이 영문 사이트

서울 매트릭스 놀이에서 네오와 스미스 요원의 대결을 재연하는 장면

일본 매트릭스 놀이 참가자들

여하튼 미국에서 그렇게 <매트릭스>를 모방했다고 믿어지는 폭력사건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여 있을 때, 일본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매트릭스>를 모방하는 행사가 열려 전세계 팬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 행사란 일본의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한 <매트릭스> 팬이 ‘나는 네오 역을 할 테니 스미스 복장을 하고 나와 나를 저지해 볼 사람은 시부야로 나와라!’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린 데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향을 기대하지 않고 올린 글인데, 예상 외의 반향이 있었고 예정되었던 6월15일 도쿄의 시부야역에는 몇십명의 스미스 요원들이 집결했다. 그들은 네오와 스미스 요원의 추격/격투장면을 재현하면서, 그것을 ‘매트릭스 놀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날의 ‘매트릭스 놀이’ 모습은 인터넷을 통해 생생하게 다른 팬들에게 전달되었고, 그뒤 두번의 ‘매트릭스 놀이’ 행사가 치러졌다. 지난 6월29일 열렸던 두 번째 매트릭스 놀이에는 무려 450명이 참가해 장관을 이루었으며, 이 새로운 개념의 퍼포먼스에 관심을 보인 수많은 외국인들도 직접 네오나 스미스 요원으로 혹은 사진촬영을 위해 참가하기도 했다.

물론 이 매트릭스 놀이는 가장 일본적인 이벤트 아이템인 이른바 ‘코스프레’(Costume Play)의 한 변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고 하면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대규모의 팬들이 격리된 공간이 아닌 시내 한복판에서 코스프레를 펼친다는 점일 것이다. 그저 검은색 양복에 선글라스만 준비하면 아무런 문제없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도, 시간과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여유와 열정이 있는 오타쿠들에게만 한정될 수밖에 없는 코스프레와 구별될 수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매트릭스>라는 전세계적인 콘텐츠를 기반으로, 누구나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진 매트릭스 놀이는 전세계,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매트릭스> 팬들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다음 카페에 만들어진 ‘매트릭스 리로디드 인 서울’은 그런 팬들이 모여 서울에서도 매트릭스 놀이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난 7월20일 오후 3시경, 대학로에서 서울에서의 ‘첫 번째’ 매트릭스 놀이를 했다. 처음이라 30여명 정도만이 참여했지만, 네티즌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현재 그 카페의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당시 사진들을 보면, 직접 놀이에 참여한 이들이나 그 놀이를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진지하면서도 즐거웠음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 중요한 것은 이번 행사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서울에서도 매트릭스 놀이를 더 큰 규모로 열려는 계획이 진행 중에 있고, 일본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놀이방법을 제안할 수 있는 게시판에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과거 <록키 호러 픽쳐 쇼>가 개봉되었을 당시 우리나라 팬들이 서울 캐스트를 조직해 미국 팬들의 퍼포먼스를 흉내냈던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영화 개봉에 맞춰 진행된 단발성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매트릭스 놀이의 경우, 비록 일본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측면에서 아주 흥미롭다. 특히 <매트릭스3 레볼루션>이 올 겨울 개봉될 예정이기 때문에, 그와 연계된 자발적인 이벤트로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 가능성이 있다. 올 여름부터 겨울까지 이들 매트릭스 놀이꾼들이 보여줄 행보을 지켜보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흥미로울 것이 분명하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매트릭스 리로디드 인 서울 사이트: http://cafe.daum.net/matrixinseoul

일본 매트릭스 놀이 영문 사이트: http://matrixreloaded_tokyo.tripod.co.jp/english.html

일본 매트릭스 놀이 사진 사이트: http://s00516.pussycat.jp/#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