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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보은>의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박은영 2003-08-11

미야자키의 후계자라구요?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 두 거장이 이끄는 지브리 스튜디오엔 십수년 전부터 후계자 발굴과 양성이 지상 과제였다. “우린 너무 늙었어. 재능있는 신인을 찾아야만 해. 하지만 그게 누구든 지브리 브랜드 파워에 대한 부담을 돌파하지 못하면, 가망은 없는 거야.” 그때 모리타 히로유키(39)가 나타났다. 3년 전 지브리에 입사해 <이웃집 야마다군>에 참여했던 신인 애니메이터. 층층시하 엄혹한 작업장에서 자기 주장을 펼쳐 보이던 대차고 야무진 젊은이를,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가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단박에 감독 시험에 통과한 건 아니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즈키 프로듀서의 추천에도 아랑곳없이, 단편 <고로의 대산책>에 원화 작가로 투입하는 등 한동안 그를 곁에 두고 지켜봤다. 그리고는 어느 날 불쑥 “연출을 할 건지 말 건지 당장 정하라”고 닦달해, 모리타 히로유키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미래의 유망주’에게 맡긴다던 일명 ‘고양이 기획’이 모리타 히로유키의 손 안으로 들어온 순간이었다.

애초 테마파크 상영작으로 기획됐다가 TV애니메이션으로, 다시 극장용 장편으로 방향이 바뀐 <고양이의 보은>은 비교적 다양한 세대를 매혹하며 지난해 일본에서 크게 흥행했다. 모리타 히로유키의 감독 데뷔는 일단 합격점을 얻은 셈이다. 철저한 기획 작품이었기 때문에 감독의 색깔을 가늠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그 자신이 “지브리의 주인공으로 자격 미달”이라고 칭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작품에 녹여 넣었다는 점은 신선해 보인다. “미친 시대에 바르게 사는 것이 가장 대단한 일”이라며, 순수한 선의와 보은 등의 낡은 미덕을 찬양하는, 지브리의 새 얼굴과 서면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봤다.

<고양이의 보은>은 지난해 일본영화 중에서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비결이 무엇이었나. 일본은 지금 불경기고 생산력과 창조력이 의문시되는 시대다. 남보다 뛰어나고 특별해야 한다. 보통으로 살기 어려운 시대다. 그래서 관객은 주인공 하루의 평범함에 안도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보통이라는 것이 뭐가 나빠!”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도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 감독이 된 게 아니다. 지브리 스탭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 결과, 특별한 주인공이 아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통 아이인 하루가 만들어진 것이다. 내 개인의 취향을 고집하는 대신, 여성 스탭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점도 주효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하루의 평범한 삶의 방식을 응원할 수 있어서 나도 행복했다. 아침에 기분 좋게 눈뜨고, 아침식사를 하고, 활기있게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일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양이의 보은>은 애초 극장용 장편이 아니었다. 더 큰 화면으로 더 많은 관객을 맞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나리오가 완성돼가는 시점에 일본 6대 도시 10개관 상영을 목표로 하는 극장 작품이 되어버렸다. 처음에 프로듀서로부터 전해들은 예산은 2억엔이었다. 2억엔이라는 예산은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비교해서는 적은 것이지만 일본의 극장애니메이션 예산으로는 좋은 편이었다. 지브리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난 평범한 작품은 만들지는 않겠다는 의욕이 있었다. 다만 프로듀서인 스즈키 도시오와는 1년 내에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빨리 제작하기 위해서 TV애니메이션처럼 ‘움직임’이 아닌 ‘멈춤’에 비중을 두는 기법을 동원했다. 동화 수를 줄이기 위해 ‘움직임’을 생략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의지를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멈춤’을 활용했다. 행동이 경솔한 주인공 하루와 쓸데없는 움직임이 일절없는 바론을 표현하기에 그 기법이 알맞았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허사로 스케줄은 1년을 넘겼다. 지브리 사내에서도 <고양이의 보은>의 제작을 중단하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스즈키가 투자자에게 불려가 “자금 회수를 위해 전국 250관에서 상영할 수밖에 없다, 싫으면 제작 중지다”라는 협박까지 당했다. 처음엔 방황했지만 10관이든 250관이든, 관객에 대한 감독으로서의 책임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귀를 기울이면>의 바론 남작을 등장시킨 또 다른 이야기, 즉 자매영화를 기획하자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그것은 미아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의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나는 답을 줄 수 없다. 다만, 내 짐작으로는, ‘고양이 사무소의 바론’이라는 아이디어는, 미야자키가 <명탐정 홈즈> 같은 탐정 이야기를 워낙 좋아해서 나온 것 같다. 원작을(정확히 원작의 시놉시스만을) 받아본 첫 느낌은, 내용이 아주 밝다는 것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어두운 것이 많아서 지겨웠다. 그에 비해 <고양이의 보은>는 낙천적이었고, 그 점이 마음을 끌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대목이 주인공 하루의 캐릭터라고 들었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아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냈나. 스즈키가 내 콘티를 읽고, 하루에 대해 “어디에도 있을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아이,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지만 실은 잘 생각하고 있는 아이”라고 평했다. 내 자신이 콘티를 그릴 때는 이런 추상적인 설명을 캐릭터에 부여하지는 않았다. 처음에 나는 하루를 가출 소녀로 설정할 생각이었다. 가출 소녀라면 고양이 나라에서 헤매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시부야나 하라주쿠에서 놀며 돌아다니는 소녀들, 호기심과 추진력 등 건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나쁜 아이들을 모델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브리의 여러 사람들이 반대했다. 사회문제를 반영하는 것이 알맞지 않고, 길에서 노는 아이로 여고생을 대표하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는 것, 판타지의 주인공은 보통 아이로 하는 편이 재미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느 날, 딱 한번, 먼저 미야자키에게 가서 도움을 구한 적이 있다. “하루를 잃어버렸습니다”라고. 그랬더니 “하루는 무언가를 구하는 아이가 아닐까,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거라고 믿고 있는 아이가 아닐까”라고 말해주었다. 이것은 커다란 힌트였다. 나는 특별히 나쁜 아이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는 막막함’을 그리고 싶던 거였다. 그런 느낌이 하루를 고양이 나라로 인도했다. 미야자키와 나의 생각은 일치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하루는 정말로 보통 존재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림체가 단순하고 깔끔하다. 전체적인 미술 컨셉은 무엇이었나. 캐릭터도 미술도 성숙하거나 노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어딘가 아직 미숙함을 가진 주인공 하루의 눈높이에 맞춰, 하루 자신의 긍정적인 시선, 사고방식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했다. 진한 그림자를 넣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밝게 그렸다. 캐릭터도 최대한 선을 생략해서 단순하게 했다. 선을 많이 써서 ‘힘들게 그렸습니다’라고 보이기는 싫었다(실제로는 매우 힘들었지만).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일본의 대중문화에는 고양이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일본인들에게 고양이는 어떤 존재인가. 공통된 인식은, 고양이는 은혜를 모른다는 것이다. 은혜를 모르는 고양이들이 어떻게 은혜를 갚는가가 이 영화의 볼거리다. 일본인은 대부분 개를 좋아하는 개파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고양이파로 나뉜다. 고양이파는 일본의 어디에라도 있는 고양이를 귀여워한다. 나즈메 소세키의 소설 <우리들은 고양이다>에도 등장하듯이. 개파쪽에서 보면 고양이는 귀여워할 대상이라기보다 야성적이고 붙임성이 없고 제멋대로다. 변신하는 고양이 전설도 있어서 무서운 이미지다. 나도 개파로, 고양이는 싫어한다. 바론으로 작품을 만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곤란했다. <귀를 기울이면>의 바론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면, 바론쪽에서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네가 좋아하기를 바라지 않아”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을 때 바론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론은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서기보다는, 위엄있고 무표정한 편이 좋으니까. 그러면서도 신사적이고 친절하며, 어른스러움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쪽이 더 어필할 거라 생각했다. 소녀들의 주위에 그런 어른이 너무나 적으니까.(만일을 위해 말해두는데, 애니메이터들은 고양이를 아주 좋아한다. 그 덕에 그림이 리얼하다)

언제 어떤 계기로 애니메이션을 시작했고, 지브리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나.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8mm 필름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문화제에 상영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림을 움직이는 즐거움은 물론이고, 잘 모르는 동급생이 찾아와서 웃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는 것을 보고 맛을 들였다. 그뒤로는 그만둘 수가 없었다. <이웃집 야마다군>을 연출한 다나베와 친구라서 그의 소개로 지브리에 들어왔다. 사실은 이전에 <마녀 배달부 키키>의 그림을 5개월 정도 도운 일이 있는데, 미야자키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랬었나?”라고 묻더라. 정말 너무하지 않나?

신인감독으로서 ‘지브리’라는 브랜드 네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 그 의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갔다. 제작 중에는 ‘넓은 관객층’이나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주제’를 의식했다. 전국 개봉이 결정됐을 때 넓은 세상에 나 자신을 널리 알려줄 후원자였다. 솔직히 지브리라면 미야자키, 다카하다 감독을 가리킨다고 생각했기에 주목받지 못하리라고 여겼으나 내가 틀렸다. ‘지브리’라는 이름에 대한 관객의 신뢰에 놀랐다. <고양이의 보은> 공개 뒤에 지브리의 과거 작품을 다시 보고, 그 풍성함과 건강함을 재확인했다. 솔직히 나 자신이 지브리의 감독에 알맞은가는 의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당신의 스승일 텐데, 그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다고 느끼나. 자유롭고 풍부한 움직임 표현을 배우고 싶다. 일본에서 이것을 철저히 하고 있는 작가는 의외로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TV를 중심으로 발달해왔기 때문에 움직임이 다채롭지 못하다. 그에 비해 미야자키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중요시하는데, 그런 노력을 이어가고 싶다. 풍부함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지브리 작품이 성공한 이유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어떤 종류의 풍요로움을 제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풍요로움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서 얻는 즐거움을 배우고 싶다.

다음 작품 계획은. 언젠가 꼭 영화화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면. 구체적인 원작을 검토 중이지만, 아직 얘기할 단계는 아니다. 나중에 <빨간머리 앤> 처럼 한 여성의 성장을 오랜 시간에 걸쳐 따라가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소녀가 성장해서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내용을, 지금 우리 세대의 가치관으로 그리고 싶다. <고양이의 보은>은 하룻밤의 사건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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