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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부전자전 서핑 다큐멘터리
옥혜령(LA 통신원) 2003-08-18

브라운 감독의 <스텝 인투 리퀴드>, 보통 사람들의 파도타기 다뤄

캘리포니아를 상상할 때 눈부시게 푸른 하늘 아래 넘실대는 파도를 가르는 구릿빛 서퍼의 이미지를 빼놓을 수 있을까. 서핑이 하와이에서 시작된 보편적인 레크레이션이라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비치 보이스의 음악이 대표하는 대중문화는 서핑을 캘리포니아의 가장 쿨한 아이콘으로 만들어왔다.

지난 8월9일 LA와 뉴욕, 하와이의 5개관에서 개봉해 평균 2만7197달러라는 올 여름 최고의 스크린당 흥행수익을 기록하며 서핑 붐을 몰고온 데이나 브라운 감독의 <스텝 인투 리퀴드>는 이 한없이 쿨하고 모험적일 것 같은 서핑의 세계를 다큐멘터리라는 정공법으로 눈앞에 펼쳐 보인다. “스턴트맨, 특수효과 사절”이라는 자신만만한 카피가 무색하지 않게, 2시간 동안 스크린을 가득 채운 환상적인 서핑신들은 극장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스펙터클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스텝 인투 리퀴드>가 단지 초특급 스펙터클만으로 까다로운 관객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다. LA의 각종 매체들이 영화평보다 더 긴 지면을 할애하며 영화의 뒷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것은 바로 감독 ‘브라운’이라는 이름이 서핑 세계에서 하나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60, 70년대를 거쳐 하위문화로 자리잡은 서핑을 대중화하는 데 톡톡히 한몫한 다큐멘터리 <앤드리스 서머> 1(1966), 2(1994)의 감독이 바로 데이나 브라운 감독의 아버지 브루스 브라운. 당대의 전설적인 서퍼들을 주인공으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서핑의 정신을 담아낸 <앤드리스 서머> 시리즈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데이나 감독이 2000년대 서핑의 현주소를 짚어보고자 한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그러나 <스텝 인투 리퀴드>가 <앤드리스 서머>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결정적인 지점은 바로 더이상 영웅들이나 쿨한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라 “누구라도”, “어디서라도”, 자유롭게 즐기는 ‘생활’로서의 서핑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캘리포니아, 이스터섬, 베트남, 하와이를 가리지 않고 전세계에서 자기 나름의 서핑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을 찾아간다. 20m가 넘는 파도를 찾아 모험을 즐기는 프로 서퍼들, 서핑에서 정신적인 수행의 의미까지 짚어내는 이들뿐 아니라 미시간 호수에서 민물 서핑을 즐기는 중년의 사내들, 심지어는 석유 운송선이 만들어내는 운하의 물살에서도 서핑을 하고야 마는 텍사스 청년들과 꼬마들의 해변가 파도타기에까지 이르면, 왜 극장 로비에서 서핑 보드를 팔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관객 평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신만의 “퍼펙트 웨이브”를 찾아가는 범인들의 이야기가 선사하는 매력은 그렇게 전염성이 강하다. 그러나 한편 이 영화가 호흡을 가쁘게 하는 화려한 스펙터클을 앞세우고 있다는 <LA 데일리뉴스>의 지적처럼, 서핑이 백인들만의 또 다른 레저 스포츠로 자리잡게 된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부재함은 아쉬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