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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과 살인, 단도직입적으로 처단한다,<특수수사대 SVU>

<특수수사대 SVU>Home CGV 수·목 자정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인 캐리 브래드쇼가 랄프로렌과 구찌로 전신을 감싸고 대로를 활보하는 사이, <특수수사대 SVU>의 여형사 올리비아 벤슨은 강간범을 쫓아 도시의 뒷골목을 헤맨다. 전세계인들에게 세련되고 품격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뉴욕’은 또한 온갖 엽기적인 범죄의 전시장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들이 제법 붐비는 한낮의 지하철. 한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다. 희생자는 울부짖지만 승객들은 숨을 죽인 채 애써 못 본 척 한다. 두건을 뒤집어쓴 범죄자는 지하철 문쪽으로 희생자를 거칠게 밀어붙이다 문이 열리자 재빨리 달아난다. 희생자만 그의 얼굴을 언뜻 보았을 뿐 변변한 목격자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못봤단 말이예요?” 뉴욕 경찰서 성범죄 전담반인 SVU(Special Victims Unit) 소속의 여형사 올리비아 벤슨은 시청자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꼭 집어 내뱉는다. 현장에 있던 남자 승객을 찾아가 범인의 인상착의를 물으면서도 마찬가지다. “범죄가 일어나는 동안 당신은 대체 뭘 했죠?”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끔찍한 범죄현장을 꼼짝없이 지켜봐야했던 시청자들은 이제 올리비아의 자발적 팬클럽이 되어 방송이 끝날 때까지 전심전력으로 그를 응원한다. 마음 속으로 ‘올리비아, 그 나쁜 X를 꼭 잡아서 감옥에 처넣어!’라고 부르짖으면서.

<특수수사대 SVU>가 범죄 수사를 소재로한 다른 드라마 시리즈와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애써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건의 성격상 SVU 사람들도 <C.S.I.수사대> 만큼이나 정액과 지문에 관심이 많지만, SVU 사람들은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 분석에는 비교적 관심이 적다. 오히려 몹쓸 범죄자를 반드시 처벌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끈질긴 수사의 원동력이 된다. 하긴, 일주일 동안이나 여성을 지하실에 감금하고 성폭행한 남자와 이웃집 여자를 한달 동안 훔쳐보다 살해한 뒤 연쇄살인계에 몸 담은 남자를 어찌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겠는가.

특히 올리비아가 희생자들을 보면서 느끼는 연민과 고통, 범죄자들에 대한 격렬한 분노는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된다. 물론 그는 소리내어 범인을 성토하거나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 강간이란 범죄는 없다, 피해 여성들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초동 수사를 게을리한 동료 경찰을 매섭게 쏘아보는 올리비아의 두 눈에서 반드시 사건을 해결하고 말리라는 굳은 의지가 읽히는 것이다. 물론 올리비아는 시청자들의 신뢰를 듬뿍 받을 만한 인물이다. 조깅과 요가, 복싱으로 단련된 튼튼한 몸과 위험한 순간에도 상대를 똑바로 응시할 정도로 강한 심장의 소유자다. 필요할 때는 완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심문을 할 때는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지켜보는 동료들까지 압도한다.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흉악한 범죄에 두려움없이 맞서는 이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이들은, 지난 13년 동안 미국인들에게 사랑받아온 드라마 시리즈 <Law&Orde r>(NBC)의 제작팀이다. 이들은 뉴욕 경찰서 형사들의 활약상과 형사사건의 법정공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Law&Order>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 1999년 <Law&Order:SVU>라는 자매 시리즈를 내놓았다. 현재 미국에서는 네번째 시즌이 방송 중이고, 국내에서 방송하는 것은 첫번째 시즌이다. 미국에서는 의 두번째 자매시리즈인 <Law&Order:Criminal Intent> 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하니, 제작팀은 범죄수사물에 관한한 일가를 이루었다 하겠다.

뉴욕 경찰서 성범죄 전담반에서 처리하는 사건들은 사이비 교주의 공공연한 성폭력과 의붓아버지, 시아버지, 친아버지 등 온갖 ‘아버지’들이 저지르는 근친강간, 연쇄살인범의 상상을 초월하는 성범죄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양하다. 올리비아가 사건 조사 과정에서 마주친 한 교통경찰은 자신이 한때 SVU 소속이었다면서 “그런 끔찍한 현장을 계속 지켜보면 인간들이 싫어질 것 같았다”고 털어놓는다. 올리비아와 함께 그 끔찍한 현장을 찾아가는 일은 시청자들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 불편함이 클 수록 ‘악은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단순명쾌한 결말이 속시원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성범죄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선정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도 너스레를 떨지않고 단도직입적인 태도로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 특유의 연출기법 덕택인 것 같다.이미경/자유기고가 friendlee@han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