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DVD 타이틀 제작업체 알토미디어 강우선 대표

한국의 크라이테리온,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DVD 산업은 급속도록 발전해왔다. 현재 국내에 보급된 DVD 플레이어는 100만대(DVD-VCR 콤보 포함)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시장에 발매된 DVD 타이틀은 4천여종에 이른다. 또 매달 200여편의 새로운 DVD 타이틀이 새로 출시되는 것을 보면 ‘지금은 DVD 시대’라는 말이 허풍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국내 DVD 시장의 내실은 그리 탄탄한 편이 아니다. DVD 타이틀을 대여해주는 곳이 드문데다 그나마 확보하고 있는 타이틀도 풍부하지 못해, 특별한 관심이나 필요성보다는 혼수용품으로 구매된 대부분의 DVD 플레이어는 놀고 있는 형편이다. 또 가뜩이나 영화타이틀 소장문화가 희박한 상황에서 활발히 판매되는 타이틀은 사운드와 비주얼이 화려한 블록버스터영화에 치중돼 있다. 여기에 불법복제 타이틀이 온·오프라인에 걸쳐 거래되고 있으며, 이중 판권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등 지금의 한국 DVD 산업은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DVD 타이틀 제작업체 알토미디어가 취하는 노선은 다소 허무맹랑해 보인다. 올해 들어 <피아니스트를 쏴라> 등이 담겨 있는 프랑수아 트뤼포 박스세트를 발매한데 이어 <영혼의 줄리에타> 등을 포함한 페데리코 펠리니 박스세트, <피츠카랄도> 등이 실린 베르너 헤어초크 베스트 컬렉션, 로제 바댕의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같은 고전 걸작영화를 차례로 발매한 것. 앞으로도 트뤼포와 펠리니 박스세트 2탄과 비스콘티, 파졸리니, 로셀리니 등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으니, 이건 취향에 앞서 시장 상황을 무시한 일종의 오기로 보이기도 한다. “오래오래 팔리는 고전 명작만을 출시하겠다”는 알토미디어의 강우선(45) 대표를 만났다.

그동안 알토미디어가 출시한 작품들은 모두 고전 걸작들인데,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한마디로 차별화 전략이다. 일반적인 타이틀들을 내는 것보다는 영화 교과서에 나옴직한 명작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는 것이다. 이런 고전영화들은 단기간에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는 될 수 없겠지만, 달이 가고 해가 가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될 거라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셈이다. 영화광으로까지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젊은 시절 프랑스 문화원 등을 전전하며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영화를 보곤 했다. 영화 일을 하게 된 뒤에도 영화제 등에서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계 이력이 궁금하다. 1989년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만들던 당시 제작사인 청기사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동향 출신인 곽재용 감독과 잘 아는 사이라 함께 일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 작품 이후엔 회사를 나와서 자그마한 홍보대행사도 꾸리고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영화계의 언저리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주위 분들의 추천으로 일신창투가 영화에 투자하기 위해 만든 한국영상투자개발에서 부가판권 판매대행을 맡게 됐다. 그 이후 코리아픽쳐스, 쇼이스트, 아이픽처스와도 일하게 됐다.

부가판권 판매대행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말하는가. 예전에는 비디오와 DVD까지 포함했는데, 요즘에는 그 두 종류의 윈도를 제외한 나머지 판권을 파는 일을 의미한다. 가장 큰 게 공중파 방송사에 영화 판권을 판매하는 일이다. 케이블TV, VOD쪽까지 포함한다. 그동안 <친구> 같은 영화를 방송사에 팔았고, 앞으로는 <시카고> <갱스 오브 뉴욕> <영웅> <장화, 홍련> 등을 판매 대행할 계획이다.

DVD 사업에는 어떻게 뛰어들게 됐나. 방송사와 거래를 하다 보니까 내가 스스로 외화를 구매해와 판매할 여지도 생겼다. 그래서 칸영화제나 MIPCOM 같은 해외영화제와 마켓을 돌면서 영화를 사서 방송사에 ‘납품’했다. <빠삐용> <소년 소녀를 만나다> 같은 영화가 그것이다. 그런 와중에 DVD 판권이란 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부터 고전 걸작영화를 발매했나. 아니다. 2000년에 <우나기>와 <박하사탕>을 출시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실패작이다. 영화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서플먼트도 없고, 화질과 음질도 별로 안 좋은 상태로 냈었다. 거의 VCD 수준이라 할 만했다. 이후 부가판권 판매대행을 집중적으로 펼치면서 자본을 확보했고, 올해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DVD 시장에 뛰어들게 됐다.

올해 들어 3종의 박스세트와 몇편의 타이틀을 냈는데 실적은 어떤가. 애초 세운 ‘똔똔 전략’이 잘 안 된다. (웃음) DVD 부문은 아직 적자 상태다.

회사에 타격은 없나. 어차피 회사 전체로 볼 때 DVD쪽 매출은 20%밖에 안 되니까 아직 큰 부담은 아니다. 사실, 이런 DVD를 내면서 애초부터 손해볼 것은 감수했던 일이다.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요즘 1∼2개월 동안 새로운 타이틀을 발매하지 않고 쉬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결국 현재로선 방송판권 판매 수수료 수익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으로 메우는 수밖에 없다. 다음에 내는 DVD가 안 된다면 또 쉬면 된다. (웃음)

현재까지 가장 많이 나간 타이틀은 무엇인가. 펠리니 박스와 트뤼포 박스가 비슷하게 나갔을 것이다. 1200세트에서 1300세트 사이가 팔렸는데, 손익분기점이 대략 1500세트 정도라고 보면 머지않아 흑자로 전환될 것이다.

이런 노선으로 DVD를 내는 데 있어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다. 우선 한국에는 이런 고전 예술영화를 구매하는 저변이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 하긴 DVD 타이틀을 산다는 문화조차 정립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 대부분의 고전영화의 음향시스템이 2.0채널이거나 모노여서 홈시어터를 통해 생생한 음질을 즐기려는 소비자들이 외면하기도 한다. 아주 적은 숫자의 마니아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불법 타이틀이다.

불법복제 타이틀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로서는 발매된 DVD를 컴퓨터로 복사해 시장에서 판매하는 불법복제품은 어쩌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최신 개봉작을 출시하는 것이 아니니까. 더 큰 문제는 정상적인 수입절차를 밟은 듯 보이는 불법 리핑(ripping: 원판권자의 마스터 소스를 이용해 생산하지 않고, 출시된 DVD를 복제해 생산하는 행위) 타이틀이다. 우리가 낸 타이틀 중에 꽤 여러 편이 다른 회사에서 출시돼 있고, 어떤 경우는 3편이 동시에 돌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명백히 불법이다. 물론 이들 타이틀을 낸 회사에선 제3자를 통해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는데 썩 믿음이 가지 않는 이야기다. 또 리마스터 작업이나 부가영상물의 경우 별도로 저작권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이들 타이틀은 모두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더 황당한 일은 이들 영화에 대해서도 영화등급심의위원회가 정상적으로 등급을 내준다는 점이다. 한 나라에서 공식적인 판권을 획득한 작품이 하나뿐이라는 건 상식인데, 똑같은 영화에 여러 번 심의를 내준다니 이상한 일이다.

이중 판권문제는 알토미디어만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시장이 작아서 그런지 미국쪽이나 직배사들은 아직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특히 피해를 입은 타이틀들은 우리 회사의 핵심 타이틀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인 탓에 최선을 다해 막아낼 것이다. 미국 FBI에도 신고를 했으며, 다른 회사들과도 연대해서 공동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판권 계약을 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트뤼포는 프랑스 MK2와, 펠리니는 이탈리아 인트라무비와, 헤어초크는 베르너 헤어초크 프로덕션과 계약을 맺었다. 펠리니 박스에 다큐멘터리를 넣기 위해 이탈리아 RAI 방송사와 별도의 계약을 맺기도 했다. 사실, 상당 기간 외화를 구매했기 때문에 판권자만 찾으면 계약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로셀리니 감독의 <무방비 도시>의 경우 판권자를 찾느라 1년 정도 시간을 허비했다. 그렇게 힘들여 계약한 영화인데, 공식 계약 여부가 불투명한 쪽에서 곧 발매한다고 하니 화가 안 나겠나.

알토미디어의 모델이 있나. 모델이라기보다 미국의 예술영화 전문 컬렉션인 크라이테리온과 비슷한 방향을 추구한다. 영상과 음질을 최대한 복원하며, 서플먼트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디자인에도 신경을 쓰는 크라이테리온처럼 우리 또한 DVD의 고급화를 이끌어내고 싶다. 마케팅 포인트를 ‘명품’이란 쪽으로 가져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해외에서 출시된 타이틀 그대로 내는 게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자료를 수록하려는 것 또한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낯뜨거운 이야기지만 펠리니 박스나 트뤼포 박스를 놓고 어떤 이들은 알토 것이 크라이테리온 것보다 낫다고도 한다. 그리고 크라이테리온과의 다양한 협력방안도 논의 중이다. 한국의 크라이테리온,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펠리니의 에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오디오 코멘터리를 실은 점도 특이하다. 정성일씨와는 오래 전부터 함께하자는 얘기를 해왔다. 보수를 넉넉히 못 준 건 미안하지만…. 오디오 코멘터리나 서플먼트를 강화하는 것은 영화학도나 영화 마니아들이 우리가 낸 DVD를 통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종의 영상출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해당 영화에 적합한 평론가들을 기용해 코멘터리나 영상물을 제작할 생각이다.

외국처럼 도서관 등에 납품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나. 현재 일부 대학의 경우 도서관에서 DVD 라이브러리를 꾸리고 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우리 타이틀을 홍보할 계획이다.

당분간의 계획은 어떤 것인가. 트뤼포와 펠리니의 박스세트 2탄 외에 루키노 비스콘티, 비토리오 데 시카,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로베르토 로셀리니, 세르지오 레오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스탠리 큐브릭, 페데리코 펠리니 등의 세계를 그린 이탈리아 RAI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를 2차례에 나눠 낸다. 감독에 관한 것인 만큼 35mm 필름캔에 넣어 한정판매할 계획이다. 또 <무방비 도시> <키카> <누드모델>도 계획 중이다. 그런데 이런 작품 출시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앞서 말한 불법적인 DVD를 근절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