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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며 살자!<키쿠지로의 여름>

여름도 끝나가고… 놀러도 못 가고… 뒹굴거리며 ‘이쒸… 우라질레이션’ 하면서 선선해진 바람을 저주해본다. ‘바보축구온달똥개’라는 욕을 들어봤는지. 바보, 온달, 똥개는 알겠는데 축구는 뭐지?? 우리 시골에선 바보란 욕과 비슷한 쓰임새로 있는 게 이 ‘축구’란 용어다. 도대체, 왜, 대관절, 무슨 이유로 축구란 구기종목이 우리 시골에선 욕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어린 시절 싸우면 항상 입에 달고 다닌 욕이었다. 그 축구란 욕은 ‘아이고 저 녀석 축구네 축구야’ 하시며 동네 아주머니들도 입에 달고 다닌 꽤 지역적인 욕이라 하겠다. 그래서 지난해 월드컵 당시 축구란 말만 나와도 왠지 모르게 욕을 하는 거 같아서 슬며시 웃곤 했다. 그 다음 최대의 욕이 ‘미천놈’. 아니 미쳤으면 ‘미친놈’이지 왜 ‘미천놈’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가장 나쁜 욕이라고 생각하며 격앙된 감정일 때 버럭 내뱉던 말이었다. ‘이 미천놈, 죽여버릴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이 욕은 나쁜 게 아니라 바보스럽기조차하다. 그 다음엔 정말 듣기 싫은 욕을 나불대고 다녔는데 바로 ‘에이! 재수없어’다. 이 말은 고등학교 시절 입에 달고 다니다가 급기야 내가 뇌까린 말에 마음 약한 여선생님을 울리기까지 했으니 정말 하면 기분 나쁜 욕이라고 생각된다(그 우는 여선생님을 쫓아 양호실까지 가지 않았던가. ‘젠장’ 하면서). 그리고 이 ‘젠장’이란 말도 참으로 좋아했다. 만화책에 많이 나오는 이 말을 아무도 쓸 거 같지 않고 어쩐지 멋져 보여 ‘젠장할’ 이렇게 내지르며 쏘다닌 것 같다. 그러면 뭔가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대학 시절 정말 대단한 욕들을 알게 되었다. 음음… 지면상 생략하는 게 가슴 아프다만 여러분들이 상상하던 그대로의 욕들을 버럭버럭 내질렀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욕은 주문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상대방을 저주하든 놀리던 입에서 발음하기 쉽든지 아니면 잊지 못할 단어로 되어 있는 거 같다(만화가 김진태의 <시민쾌걸>에 자주 나오는 욕 ‘우라질레이션’도 욕 같으면서도 어쩐지 학구적이면서도 발음하기 좋기까지 하다!! 캬하하하). 이 발음하기 좋은 욕들은 수리수리 마수리 또는 아브라카다브라, 옴마니 반메훔처럼 간절히 원하는 기도문 또는 주문과 욕은 어쩐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이런 주문과 같은 욕과 달리 또 하나의 욕은 스스로 자신에게 하는 욕이다. 맥락이 없는 욕은 상대방에게 툭 내뱉어도 사실 자신에게 하는 욕이다. 혼잣말하듯이 중얼중얼거리며 욕을 할 때도 있는데 주로 혼잣말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 자책하듯이 자신에게 욕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요즘 많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귀를 귀울여보라. 혼자서 속삭이듯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욕하는 친구들이 꽤 있을 것이다. 사실 나도 그런 부류….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아침에 세수할 때부터 자신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리며 욕하는 친구들인 것이다. 지난밤의 행동들을 후회하거나 미안해할 때, 또는 퉁퉁 부어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얼굴의 자신을 볼 때도, 계절이 바뀌는 것조차도 욕하고 싶은 것이다. 마치 주문처럼 말이다.

같이 작업하는 후배가 타이 여행 중 만난, 어린 시절 해외(스웨덴)에 입양된 청년이 한국말을 딱 하나 기억난다고 이야기했단다. 그게 바로 ‘얼레리 꼴레리’. 어감도 희한하지만 그 어린 소년이 한국말 중 유일하게 안 잊고 기억하는 게 ‘얼레리 꼴레리’라니…. 그 말을 들으며 씁쓸하면서도 한국어도 모르는 자신을 기억 속에서 맴돌게 하는 유일한 모국어가 자신을 ‘놀리는 욕’이라는 생각에 어쩐지 욕도 경우에 따라선 사랑스런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드는 것은 왜일까? 이런 욕! 영화에도 있다. 미워할 수 없는 욕. 이거 “빠가야로, 내 이름은 키쿠지로다”. <키쿠지로의 여름>(1999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란 영화의 마지막 대사. 기타노 다케시 특유의 썰렁함과 뭔가 아무렇게나 주물럭주물럭 만든 것 같아도 내공이 보이던 그 영화가 기억난다. 어벙한 50대 건달 아저씨와 어린 소년의 엄마 찾아 삼만리 같은 이야기. <키쿠지로의 여름>은 소년의 여름이 아니라 이 아저씨의 여름이라는 게 마지막 대사에서 알 수 있다. 참내… 헤어지기 전 이름을 물어보는 소년에게 냅다 바보라고 욕하긴…. 눈물나면서도 이 퉁명스러움이 사랑스럽다. 여기서도 기타노 다케시 최고의 욕이 나온다. 바로 ‘빠가야로’. 바보란 일본말이지만 어쩐지 기타노 영화에선 ‘빠가야로’만한 대사가 없는 듯하다. <키즈리턴>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툭 내던지듯 하는 그 말. “빠가야로, 우린 시작도 안 했잖아.” 살다가 욕 나오는 것 참거나 막으면 안 된다. 병난다. 쳇!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프로듀서 sicksadworld@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