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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코리아, 앞으로 5년이 고비다,박세형 SiCAF 총감독
사진 이혜정문석 2003-08-29

제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이 지난 8월17일 성황리에 6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각종 전시행사에 21만명, 영화제인 ANIMASIA에 3만여명, 온라인 행사에 15만명 등 올해 SicAF는 외형적인 면에서 어느 해보다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 또 만화애니메이션 산업 전문 프리마켓을 표방하는 SicAF 프로모션플랜(SPP) 역시 두 번째 행사라는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5개국 35개 업체의 참여 속에서 100억원 규모의 투자상담이 이뤄졌다.

1995년 첫 행사가 열린 이래, 짧은 기간 동안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있는 SicAF의 뒤에는 박세형 총감독이 있다. 그는 홍익대 미대 출신으로 서울대 미대 대학원을 거치면서 만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 1985년엔 국내 최초의 만화학과인 공주전문대 만화예술과를 설립했고 96년엔 세종대 영상만화학과를 만들었으며, 98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만화과 교수이자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만화 연구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천국제대학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의 조직위원장을 맡아온 그는 SicAF의 산파이기도 하다. 박세형 총감독은 서울시의 용역을 받아 SicAF의 개최방안을 연구해 행사를 만들어냈으며, 95년의 1회 행사부터 기획위원, 기획단장, 아트디렉터 등으로 활약하며 행사를 이끌어왔다. 올해부터는 다른 영화제로 치면 ‘집행위원장’쯤에 해당하는 ‘총감독’ 역할을 맡아 성공리에 축제의 장을 마무리한 그를 만났다.

올해 행사가 끝났다. 소회가 있을 것 같다. 총감독 역할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매번 참여했지만 이번에 새삼스레 느낀 것은 SicAF가 국민축제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일부에서는 행사가 상업적이라고도 하고, 전문성도 떨어진다고 하는데 어린이들과 가족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전문성 또한 깊어질 것이다.

올해 SicAF의 성과가 있다면. 관객 수는 6일 동안 온라인까지 치면 36만명 정도 된다. 고무적인 숫자다. 하지만 그런 외형적인 면을 보고 성공이라고 판단하기보다는 이 행사의 발전방향과 관련한 새로운 단초를 발견했다는 점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만화, 애니메이션이란 분야는 출판, 영화뿐 아니라 캐릭터, 게임 등으로 이어지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성격이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좀더 커다란 규모의 행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얻게 됐다.

아쉬웠던 점은 없었나. 단편상영에 관객의 호응이 적었다는 점이다. 1천여석 중 300석밖에 안 찼다. 한국에 애니메이션학과 대학생이 1천여명 되는데도 말이다. 해외와 국내의 창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단편애니메이션인데도 말이다. 이건 우선 우리의 이벤트 기술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문제의식이나 인식이 공유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단편애니메이션에 대한 만화, 애니메이션계 사람들의 주인의식이 부족한 것이다.

올해 행사에서 특별히 신경을 쓴 지점이 있다면. 전시나 상영보다 더 힘을 기울인 것은 애니메이터즈 나이트, 카투니스트스 나이트, 인디 디렉터즈 나이트 등 업계 종사자들의 모임이었다. 앞서 말한 주인의식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인이 돼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발전도 없다는 그런 문제를 제기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고우영 선생이나 임정규씨 등에게 공로상도 수여하고 했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쭈뼛쭈뼛한 분위기였다. 앞으로는 이 자리에 문학, 정치, 디자인 등 다른 분야의 분들도 모실 생각이다.

전시 부스들이 너무 물건을 파는 데 열을 올렸고, 판촉 이벤트에만 힘을 기울여 어수선했다는 비판도 많다. 업체들이 SicAF에 부스를 차리는 것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일 텐데 사실 상품을 홍보하는 것은 이런 행사에서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전시 마인드인 것 같다. 행사의 성격에 맞춰 전시와 마케팅 사이의 균형을 맞춰주면 되는데, 마케팅이 과열돼 관람객에게 불쾌감을 자아내게 했던 것 같다. 그런 것은 오히려 업체들에도 도움이 안 될 텐데 말이다. 전시 마케팅 노하우의 성숙도 따라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어린이들이 몰려서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고 비판을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어린이들이 즐거워한다는 것 아닌가. 문제는 이를 영화제 전반에 있어 싱싱한 활력으로 이어줘야 한다는 점일 게다.

SicAF의 발전방향이라면. 만화, 애니메이션은 출판, 영상, 방송, 극장, 인터넷 등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특징을 가진 새로운 미디어다. 결국 이런 것을 한데 통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만화,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파생되는 분야를 모두 포괄한다면 독일에서 열리는 대형 시장인 ‘메세’ 같은 형태로 나아갈 수 있다. 디지털 인프라라는 차원에서 세계적인 수준인 한국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잘만 만들면 충분히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행사가 될 전망이 있다. 서양 사람들이 ‘동북아의 트렌드를 보기 위해선 매년 8월 서울로 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번 행사에서 그런 가능성을 찾았나. 사실 프리마켓인 SicAF 프로모션플랜(SPP)만 해도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 행사 직전에 캐릭터 페어나 게임 쇼 같은 게 큰 규모로 벌어져 모두들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나, 하는 우려였다. 다행히도 서극 감독도 참여하는 등 좋은 성과를 낳았다. 특히 중국쪽의 관심은 상당했다. 한류를 통해 한국 대중문화의 힘을 봐서 그런지, 그들은 아시아에서 한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눈치더라.

메세급 행사로 발전하려면 많은 게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우선 예산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올해는 서울시에서 10억원, 문화관광부에서 3억원, 기업에서 협찬금 2억5천만원을 받았다. 다행히도 입장수익이 예상보다 조금 많아져 재정적으로는 괜찮았던 편이다. 하지만 포괄하는 범위를 더 넓히다보면 자연히 예산도 더 필요할 것이다. 또 문학, 미술, 미디어 테크놀로지, 게임, 음악, 설치 디자인 등의 전문가를 행사에 참여시켜야 한다. 사실, 더욱 중요한 것은 다양한 행사를 통합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산도 절약될 것이고, 효율도 올라갈 것이다. 게임, 캐릭터 등이 따로 행사를 갖는 것보다 한데 모여 규모를 키운다면 세계적인 주목이란 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만화, 애니메이션 산업의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판단하나. 앞서도 말했듯, 만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는 다른 장르와의 교류가 활발할 수밖에 없는 분야다. 때문에 우리의 발달된 디지털 인프라를 고려하면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 하지만 아직 지원시스템은 미진한 편이다. 현재도 여러 가지 지원이 존재하긴 하지만, 새롭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중국만 해도 80년대 후반부터 상하이를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을 국책사업화했다. 앞으로 5년이 중요하다. 잘만 하면 우리도 ‘코리아’라는 브랜드 파워를 갖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 산, 학의 원활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

관, 산, 학 협력체제라면. 일단 분산돼 있는 지원체제를 정비하고, 대학과 기업이 프로젝트나 연구소를 공동으로 설립해 좀더 실용적이고 좀더 의미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문제는 새로이 무언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각 분야 사이를 이어줄 수 있는 혈관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또 만화, 애니메이션을 극장용이나 방송용, 대본소용으로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매체의 특성상 인포테인먼트 에듀테인먼트의 일환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원복 교수의 만화 시리즈가 스테디셀러로 읽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혈관 움직임이라든가 자연의 변화라든가 무기 시뮬레이션이라든가 교육적인 내용을 만들어서 DVD로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국 같이 안정된 곳일수록 설자리가 없을지 모른다. 우리 시장을 출발점 삼아서도 나가는 게 더 전망이 밝을 것이다. 험한 곳에 기회가 있는 법이다, 라고 말이다. 이게 억지가 안 됐으면 좋겠다.

만화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어린 시절부터 만화는 좋아했다. 박재동과 부산고 동기인데, 그 친구는 동양화를, 나는 서양화를 전공하게 됐다. 미대를 간다고 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호적에서 이름을 뺀다는 말을 들은 세대니, 그때 만화를 한다고 했으면 사망하지 않았을까. (웃음) 홍익대 서양화과에 갔는데, 나는 일러스트레이션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서울대 미대로 대학원 진학을 했다. 그즈음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했는데, 멕시코의 만화가 리우스의 작품을 보면서 만화도 예술가의 표현수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어찌나 만화가 비교육적이라고 욕을 해대는지. 그래서 석사 논문으로 ‘만화의 교육적 기능에 관한 연구’를 썼다.

현재 개인적인 작업도 벌이고 있나. 지금은 인터넷용 단편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 곧 보게 될 거다. 상업영화는 능력이 못 미쳐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인포테인먼트, 에듀테인먼트 성격의 책을 만들고 싶다. 만화처럼 보이는 애니메이션에도 관심이 있다. 그러고보면 경계를 오가는 데 계속 관심을 가져온 것 같다. 내 성향이 어떤 고정관념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는 쪽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교수직에 페스티벌에 학회에 개인 작업까지, 무척 바쁠 것 같다. 50대 초반의 우리 세대들은 기본적으로 워크홀릭이다. 일을 안 하면 오히려 아프다. (웃음) 쉬고 있어도 다음에 뭘할까, 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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