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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사에 출마한 아놀드를 희화화하고 있는 네티즌들
권은주 2003-09-27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출마를 선언한 이후,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소환선거는 전세계적인 이목을 끌고 있는 중이다. 본론에 앞서, 주지사 소환선거란 무엇인가를 잠시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이른바 간접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자신들의 의사를 정치에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기회는 몇년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선거 이외에는 없는 것이 사실. 그런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이 주민소환 제도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의 성과가 불만족스러울 경우 임기 내라도 주민들의 투표를 통해 경질시킬 수 있는 것이 그 내용. 주민투표제, 주민발안제와 함께 직접민주주의 3대 방안이라고 중고등학교 때 배운 기억이 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현재 일본과 대부분의 미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채택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입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일부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그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번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소환선거는 민주당 출신으로 선출된 그레이 데이비스 현 주지사가 막대한 재정적자와 이에 따른 공공서비스 축소, 이어지는 세율 인상 등의 실정으로 인해 주민들에 의해 발의된 주민소환으로 시작된 것이다. 아놀드가 출마를 선언하기 전부터 이 선거가 주목을 끈 것은 미국 내 전체 주에서 1위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5위권의 경제 수준을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의 향후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막대한 경제력을 움직일 수 있는 주지사의 자리를 지난 88년 이후 미국 공화당이 한번도 차지하지 못할 정도로 전통적인 민주당의 아성이었기에, 큰 변수가 없는 한 소환투표를 하더라도 현 부지사가 당선될 것으로 예측되었던 것이 사실. 그런 상황에서 공화당의 깃발을 든 아놀드가 출마를 선언했으니, 정치와 엔터테인먼트라는 절묘한 조합으로 인해 전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이 레노 쇼에 출연해 자신의 출마를 선언하는 아놀드의 손에 현 주지사의 잘려진 목을 넣어 만든 안티-아놀드 유머.

<Terminator>를 패러디한 <Governator>현 주지사의 얼굴을 넣어 만든 <Total Recall>

여하튼 아놀드의 출마에 이어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 포르노 배우 메리 케리 등 무려 130명이 넘는 후보들이 등록을 해, 이번 주민소환 선거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이 확산되어왔다. 하지만 나머지 후보들이 아무리 정치적, 사회적으로 주목을 끌려고 노력했다고 해도, 아놀드가 이끌어낸 열광과 비아냥에 결코 견줄 수 없는 것이 사실. 일단 어떤 이유에서건 그의 지지자가 된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확산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Meetup.com에서는 일주일 만에 아놀드 지지 커뮤니티에 5천여명이 가입하는 일이 벌어졌고, 10여개의 아놀드 지지 사이트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놀드의 공식 선거운동 사이트인 JoinArnold.com도 하루 100만명 이상의 방문자 수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아놀드의 선거 운동 관련 물품을 파는 온라인 상점도 수백개로 늘어났고, 기존 팬사이트들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당선을 위한 지원을 펼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놀드의 출마를 삐딱한 시선에서 바라보는 네티즌들의 활동이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그가 출연했던 수많은 영화들의 제목과 포스터를 패러디해 만들어진 날카로운 유머들은 현재 인터넷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것만 들어보면 <Terminator>를 <Governator>로, <Collateral Damage>에서 Collateral을 주지사의라는 뜻의 Gubernatorial로 바꿔 <Gubernatorial Damage>로 바꾸어 패러디 포스터를 만든 것. 비슷한 예로는 <End of Days>를 소환당한 현 주지자 그레이 데이비스의 이름을 따와 바꾼 <End of Grays>, <Kindergarten Cop>에서 Cop을 미국 공화당의 별칭인 G.O.P(Grand Old Party)로 바꾼 것 등이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제목 자체를 바꾸지 않고도 패러디를 한 예가 있다는 것. <Twins> 패러디 포스터에는 대 드 비토 대신 역시 주지사 후보에 출마한 흑인 아역배우 출신의 게리 콜먼의 얼굴이 들어가 있고, 주민소환에서 소환을 뜻하는 영어단어 Recall이 들어 있는 <Total Recall>은 몇몇 문구만 바뀐 상태에서 네티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사실 이런 패러디는 그의 출마를 삐딱한 시선에서 바라보는 네티즌들에 의해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니다. 언론들도 아놀드와 관련된 기사를 실으면서 그가 출연한 영화제목들을 활용하는 데 경쟁적으로 열올리고 있기 때문. 뉴욕의 <데일리 뉴스>는 터미네이터(Terminator)와 주지사(Governor)를 결합한 <Govinator>라는 말을 만들어냈으며, <타임>은 <Conan the Barbarian>을 후보자를 뜻하는 <Conan the Candidate>로 부르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유머의 수준을 넘어 아놀드의 당선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데 인터넷을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 Katie Couric이라는 후보자가 아놀드의 부친이 나치였다는 사실을 부각하기 위해 군대의 행군 소리가 들어간 안티 아놀드 라디오 광고를 만들어 이를 라디오는 물론 인터넷에 퍼뜨린 것이 그 대표적인 예. 또한 아놀드가 과거에 찍은 포르노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것도 그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선거결과를 바꿀 정도인지는 미지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증명이 된 정치에 대한 인터넷의 위력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미국에서도 입증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선거결과에 따라 아놀드는 그러한 변화의 첫 수혜자 혹은 희생자로 기록되게 될 것으로 보인다. “I’m not into politics: I’m into survival”이라는 <러닝맨> 속의 대사가 아놀드의 현 상황을 잘 대변해준다는 한 신문 기자의 코멘트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아놀드 공식 선거 운동 페이지 : http://www.joinarnold.com/en

아놀드를 소재로 한 정치 유머 모음 : http://politicalhumor.about.com/cs/schwarzenegger

아놀드 지지 사이트 : http://www.voteahnu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