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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 장 뤽 고다르 인터뷰
2001-05-23

“영화가 아니라 배급이 변했다”

고다르는 결코 내러티브영화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1988년 <누벨바그> 이후 13년 만에 칸영화제에 출품한 고다르의 신작

<사랑의 찬가>에서 고다르 특유의 형식실험은 여전하다.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모를 대사, 쉬지 않고 반복되는 암전과 자막, 이미지와

사운드의 엇갈림, 정지한 것과 움직이는 것의 묘한 대칭 등 <사랑의 찬가>는 일반 극영화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영화다. 사랑의

네 가지 계기인 만남, 육체적 열정, 다툼, 헤어짐을 다루는 작품을 만들려는 남자가 있다. 그는 작품에 어린 남녀, 성인 남녀, 늙은 남녀

세 커플을 등장시키려 하는데 성인 남녀에 관한 이야기에 문제가 생긴다. 마땅한 여자주인공을 찾지 못하던 남자는 3년 전 만난 적 있는 여자에게

배역을 맡기려 하지만 그 순간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일반 극영화라면 충분히 따라갈 만하지만 고다르는 이같은 이야기를 완전히 분해해서

이미지와 사운드의 단면만을 제시한다. 흑백으로 진행된 전반부가 지나면 2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남자가 그녀를 만난 기억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컬러화면으로 보여지는데 이부분 역시 감정이입은 쉽지않다. 고다르는 이번 영화에서도 틈틈이 매우 직접적이고 신랄한 정치적 언사를 던지기도

하는데 “캐나다나 멕시코도 아메리카의 일부인데 미국은 왜 자국을 ‘United States of America’라고 부르는가?”라는 대사와

스필버그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이야기 판권을 사려하는 설정이 그런 예이다. 어쨌든 <사랑의 찬가>는 그가 오랜만에 파리에서 찍은

영화로 60년대 누벨바그영화를 연상시키는 매혹적인 이미지들과 만날 수 있으며, 일흔 넘은 나이에도 영화실험의 최전선에서 물러서지 않는 고다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가 50년 전에 비해 변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나누어 본다면.

영화사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은 제작 및 배급 시스템이다. 영화사의 초창기에는 거대 스튜디오들이 군림했다. 1950년대

중반까지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이 존속했고 프랑스에선 파테영화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 이후 TV의 시대가 도래했다. TV는 독일인이

발명했고 처음 만들었을 당시 ‘이코노스코프’라고 불렸다. 그 다음에 영화의 대중화시대로 넘어간다. 과거엔 영화 만드는 일이 우선적이었던 데

비해 현재는 방송을 위해 영화를 제작하는 상황이 됐다. 사실 TV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창조의 기능이 없는 것이다. TV는 단지 생산된

것을 방송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영화를 감독주간이나 비경쟁부문에 출품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은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영화제 집행위원회의 권한에 속한다. 이번 영화의 경우 이 부문, 저 부문을 보고 검토한 뒤 그들이 5월15일

오후 5시에 경쟁부문 출품작으로 상영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내 영화가 감독주간이나 자크 리베트, 자크 로지에,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과 나란히

한 부문에 출품됐더라면 더 나을 뻔했다.

당신은 칸영화제를 두려워하는가.

내가 이번에 영화제에 온 것은 차기작인 <우리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재정지원을 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작가주의의 주창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지금 당신이 갖고 있는 작가주의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작가주의는 <카이에 뒤 시네마>와 누벨바그 초기 때 생긴 표현이다. 당시만 해도 감독은 작가로서 거의 전권을 갖고 있었다. 이전

시대에는 시나리오 작가를 작가로 간주했다. ‘주의’라는 단어는 저주받은 표현이다.

영화에서 스필버그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당신은 스필버그에 반대하는가. 영화를 보고 스필버그가 고소한다면 어쩌겠는가.

개인적으로 스필버그를 전혀 모른다. 그는 오늘날 영화 만드는 주된 어떤 방식을 대표하는데 내가 그 방식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스필버그의 작품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비평가로 활동할 때처럼 스필버그 영화 중 하나를 골라 장면별로 분석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당신의 영화엔 인용이 많이 쓰인다.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책의 인용뿐 아니라 내 영화에서는 배경을 이루는 요소들도 인용의 기능을 한다. 거리나 풍경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지나가는

신 하나도 단지 줄거리상의 의미를 넘어서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거리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책을 진지하게 깊이 읽는 편은 아니다. 책을

읽다가 느낌이 오는 문장 두세개 정도를 포착해서 노트에 적어놓는다. 그런 문장들을 추려내는 것 자체로 다른 세계로 떠나는 게 가능하다.

영화에 종종 정지된 화면이 등장하는데 사진과 영화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자기 앞에 놓인 물병을 가리키며) 이 물병을 두고보자.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이 물병을 기록하는 것과 같다. 사진은 대상을 향해 갈 수 없고

단지 물체를 받아들이는 것에 머문다. 반면 영화는 카메라 자체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촬영시 뭔가를 결정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완성된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은 잘려진 부분부분들이다. 모든 것이 해부되고 영화가 완성되면 뒤짚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 된다. 작품 자체가 처음의 결정사항과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반면 TV에서 창조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레이션이 많은데 내레이션의 도입방식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가. 영화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파괴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 자리에서 구구절절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지 구성, 파괴 과정에는 노트 없이 임한다. 마치 샐러드를 만들 때처럼

충분히 흔들어서 솎아냈다고 판단될 때 이미지의 형성 마지막에 이른다. 미술이나 소설의 구성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화가의 작업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주제를 계속 여러 영화를 통해 표현하는 감독들이 있다. 당신은 한 인터뷰에서 “이미 행해진 일이면 그것을 다시 할 마음은 없다”고

밝혔는데 당신 자신은 비슷한 작업을 반복한 적이 없는가.

셰익스피어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계획한 적이 있는데 누군가에 의해 이미 영화화돼서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도 중단한 적이 있다. 이미

영화화됐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같은 위대한 작가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표현한 주제를 내가 다시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당신의 작품에는 영화사의 과거에 대한 암시가 많다.

오늘날 칸영화제는 내가 처음 왔을 때인 1950년과는 딴판이다. 당시 한 미국인이 자크 로지에 감독과 함께 영화필름을 어깨에 메고 영사실로

운반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 미국인이 바로 잭 니콜슨이었다. 이렇게 필름을 옮기는 풍경은 영영 사라져버렸다. 이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란의 젊은 여성감독 사미라 마흐말바프의 <사과> 같은 영화를 보면 아직 그때와 비슷한 무엇인가가 계속된다.

자크 리베트나 나나 아직도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해 몇킬로미터를 걸어갔다가 영화를 관람한 뒤 밤하늘을 바라보며 집에 돌아오는 것은 여전하다.

변한 사회에서도 계속 살아남는 방법에 익숙해진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 자체가 변한 게 아니라 배급이 변한 것이다. 오늘날 배급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사과>의 입장객은 400명인 데 비해 어떤 영화는 40만명일 수 있는가? 그런 차이가 가능하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런 사회에서도 살아남는 영화가 있다.

올해는 <카이에 뒤 시네마> 50주년인데 다시 펜을 잡을 생각은 없는가.

그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남에게 해가 되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당신을 대신하는 듯한 인상이다. 당신은 어른이 되었는가? 아직 어린아이인가.

나는 어른이 되는 데 비교적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마 지금 이 기자회견 순간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영화에 대해 나의 관점을 갖고

접근한 것은 30살 때이다. 그뒤 어른이 되는 데 30년에서 40년쯤 걸렸다. 30살 때 영화나이가 1살이었다고 본다면 지금은 영화나이로 40살이고

실제 나이 70살인 어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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