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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중국 극장가를 평정하다
2003-10-20

무협영화 <천지영웅>, 힘있는 이야기와 자연스러운 연기로 흥행질주

10월 첫쨋주부터 시작된 일주일간의 국경절(國慶節) 황금 연휴를 기점으로 베이징의 극장가는 그동안 기대를 모아왔던 국내외 신작들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와 달리 올 연휴는 단 세편의 영화가 조촐하게 경쟁을 벌인 가운데, 허핑(何平)의 7년 만의 신작 <천지영웅>(天地英雄)이 흥행전선의 승자로 떠올랐다. 과장된 근육덩어리로 몸 전체를 특수분장한 유덕화의 신작 <지혜로운 근육맨>(大塊頭有大智慧)은 홍콩 최고의 제작진과 배우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고, 한국영화 <클래식>이 이들 두 화어영화와 나란히 공개되어 이제는 잠잠해진 ‘한류’ 열풍에 새 기운을 불어넣을 한국영화로 주목받으며 상영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인 허핑 감독은 20년대 중국 산시(山西) 지방 희극운동의 창시자인 아버지와 신중국(新中國) 최초의 극영화 <다리>(橋)에서 유일한 여성 배역을 맡은 어머니를 둔 유명한 영화가족 출신의 감독이다. 20대 초반, 일찍이 영화계에 투신하여 1988년 <가와시마 요시코>(川島芳子)로 데뷔한 이래 90년대 <쌍기진도객>(雙旗鎭刀客), <불꽃 폭죽>(?打雙燈), <일광협곡>(日光峽谷)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 경력을 이어온 허핑 감독은 중국 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문 상업적 감각을 지닌 감독으로 초기작 <쌍기진도객>에서부터 재능을 드러냈다. 새로운 ‘대륙형 무협영화’라 칭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그는 액션의 과감한 생략과 할리우드 서부영화와 흡사한 공간과 이야기 구조를 취해 기존 무협영화와의 차별을 시도한다. 장대한 풍광을 자랑하는 중국 서부지방과 무협 장르에 심취한 허핑 감독의 취향은 이번 <천지영웅>에도 드러난다. 성당(盛唐) 시대를 배경으로 불교의 경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나긴 여정을 실크로드를 따라 펼쳐지는 광활한 중국의 자연풍경과 더불어 아낌없이 화면에 담고 있는 <천지영웅>은 자오페이(趙非)가 촬영을 맡고 있고, 장원(姜文)과 나카이 기이치(中井貴一), 왕쉬에치(王學圻)가 주역을 맡아 각각 이름에 걸맞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천지영웅>은 단순한 무협영화로 분류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영화이다. 여기엔 와이어액션도 없고, 강호에 만연한 원한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역사 속의 잊혀진 작은 인물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곳 언론에서도 ‘무협영화’(武俠片)보다는 ‘서사영화’(史詩片)로 이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지난해 장이모의 <영웅>(英雄)에 대한 대대적인 ‘비판운동’과 비교해 사뭇 대조적인데, <영웅>이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의 힘과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에서 대체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천지영웅>은 <영웅>에서부터 제기된 중국 상업영화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다시 불러일으키며 중국 상업영화의 낙관적 미래까지 조심스레 점치게 하고 있다.베이징=이홍대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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