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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03 리포트
2003-10-20

새로운 다큐의 물결이 모인다

부산영화제에 참가한 뒤, 폐막식 오전에 일본으로 향했다. 10월10일 오후에 열린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03(YIDFF 2003)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필자가 YIDFF에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 영화제가 시작한 1989년, 마에카와 미치히로(일본 동북예술공과대학 전임강사)라는 일본의 친구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2001년에 처음 참가했다. 이때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세계 다큐멘터리 작가들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 형식적인 차원을 넘어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심이 대단하다. 두 번째, 영화제의 주요 스탭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스크린 뒤에서 분주하게 뛰어다닌다는 점이다. 야마가타를 대표하는 인물로 영화제 실행위원인 야노 가즈유키와 아시아 천파만파 디렉터 후지오카 아사코가 있다. 이들은 한국의 국제영화제 집행위원들이 무대에 서는 것을 즐겨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오로지 자원봉사자 중심의 영화제, 다큐작가들의 무대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들은 자본 중심의 영화제보다 정신과 마음의 영화제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영화제가 진행 중인 중반 후지오카 아사코(뉴 아시안 커런츠 부문 디렉터)는 거의 기진맥진한 얼굴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진행의 무사함과 국내외 작가들을 위해 충실하게 가이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 야마가타영화제를 찾은 외국의 감독들은 일본어가 유창하다는 것이다. 기본회화가 전부인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일본어가 가능했다. 역시 일본은 유니버설 혹은 글로벌화가 진행된 것인가 하고 자문해봤다. 그뿐만 아니라 통역을 맡은 사람들의 50%는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관객과의 대화를 도왔다. 이 점은 한국에서도 개선되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한다.

네 번째, 야마가타영화제는 과거의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개념의 다큐멘터리 역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의 하나다. 이 영화제는 아시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다큐영화제다. 이른바 다큐멘터리영화제의 칸영화제라 불리는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와 협력하고 있어 아시아 다큐작가들의 유럽 진출을 돕고 있다. 한국의 신진 다큐멘터리 작가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한국적인 판단기준에 머물지 말고 과감하게 YIDFF에 노크하기를 바란다.

강력하게 대두하는 아시아 다큐멘터리

야마가타 시내에는 영화의 거리가 있다. 이 거리의 앞쪽에는 기념탑이 있다. 이 기념탑에는 최우수 수상자와 작품명이 새겨져 있다. 이 기념탑을 설명하는 표식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영화문화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구축한 다큐멘터리영화는, 격변하는 세계정세와 더불어 영상기술의 고도화, 미디어의 폭넓은 표현에 있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커다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야마가타영화제는 다큐멘터리영화를 서포트하고 새로운 상황을 수용하는 다큐멘터리영화의 신개념을 구축할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품들을 폭넓게 소개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또한 전세계 영상작가들과의 교류를 지향하며 이 영화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영화제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사정을 서로 이해하고 참된 우정을 깊게 하는 한편, 세계평화를 위해 기여하기를 바란다.” 이 문구는 1989년에 야마가타시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사업의 하나로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창설하면서 새긴 것이다.

야마가타영화제 2003년의 주요 프로그램은 모두 7개다. 국제경쟁부문, 뉴 아시안 커런츠 부문, 뉴 독스 재팬, 배우고-가르치고-만들기: 다큐멘터리를 가르치는 학교 심포지엄, 야마가타 뉴즈릴, 특별초대작품-심사위원들의 신작발표 및 금년 5월에 사망한 다큐 작가 마에다 가쓰히로의 작품 <공해원년>과 <자유광주>(한국의 광주항쟁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 오키나와 특집이 그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영화제의 핵심은 국제경쟁부문과 뉴 아시안 커런츠 부문(아시아 천파만파)이다. 올해 국제경쟁부문의 경우 전 세계 국가와 지역으로부터 902편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이것은 지난해보다 300편이나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15편이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필름으로 찍은 작품 7편, 비디오 혹은 디지털영화 8편이다. 영화의 형태가 점점 디지털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나타내는 좋은 사례라고 보여진다.

뉴 아시안 커런츠 부문의 경우 아시아의 새로운 감독과 작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야마가타 출신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오가와 신스케를 기념하는 뜻에서 그의 이름으로 대상을 시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에서는 변영주 감독과 멜리사 리(호주동포 3세)가 수상한 바 있다. 이 부문 디렉터 후지오카 아사코에 의하면 아시아 58개국과 지역으로부터 833편이라는 어마어마한 편수가 출품되었다고 한다. 이중에서 단지 30편만 초청받았는데, 한국은 이미영, 이호섭, 이창재, 조연경 등 4명이 초청되었고 수상작은 내지 못했다. 이 부문의 전반적인 경향은 대체로 여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 TV 다큐멘터리 작품의 출품이 많았다. 두 번째로는 단편영화의 출품(대부분 20분 미만의 작품)이 많았다. 이들 가운데 <미로> <뉴델리> <쇼트 쟈니> <데뷸리> <올드>가 초청되었다. 세 번째로는 ‘지속적인 역사관’을 다룬 작품이 많았다고 한다. 네 번째는 경계를 뛰어넘는 스타일의 작품과 해외유학파들의 작품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한국, 중국, 대만, 타이, 홍콩, 몽골 등 아시아 전역에서 미국과 유럽쪽 유학파들의 왕성한 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섯 번째로는 새로운 강력한 세력의 등장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영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알리고 싶어, 오리지널리티를 모색하는 자기 표현의 욕구가 뜨거웠다.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쪽에서는 2001년엔 총응모편수가 30편이었는데 올해 95편으로 급증했다. 다음이 인도로 63편에서 118편이나 증가했다.

한국 영화인들 중에서는 앞서 이름을 밝힌 감독들 외에도 여러 사람이 참여하여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뉴 아시안 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인 김동원 감독(전 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서준식(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장성연(서울영상위원회 기획홍보팀장)- 그는 게스트와 프레스의 레터박스에 일본어와 영어로 된 서울영상위원회 안내 홍보물을 열심히 넣고 다녔다-, 정수완(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홍순철(영상원 교수), 김이찬(이미영 감독의 <먼지, 사북을 묻다> PD), 김혜준(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그는 스페셜 부문에서 한국 정부의 다큐멘터리영화 지원정책에 관한 발제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제 폐막식 이틀 전에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위원장과 홍효숙 프로그래머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김동호 위원장은 시상식 뒤에, 스페셜 멘션(특별 언급부문상)도 몇개 있는데 “왜 한국은 하나도 못 받았지?”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온전한 영화로서의 다큐멘터리를 높이 산다

수상결과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가장 긴 러닝타임의 영화인 중국 왕빙 감독의 <철서구>(Tie Xi Qu:West if Tracks/ 545분)와 최단 러닝타임의 영화인 타이 타논 시타루챠웡 감독의 <쇼트 쟈니>(A Short Journey/ 5분)였다. <쇼트 쟈니>는 국제비평가연맹상 스페셜 멘션과 뉴 아시안 커런츠 부문의 스페셜 멘션 등 두개의 특별상을 받았다. 10월10일부터 16일까지 총 177편의 다큐멘터리 작품이 상영된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야노 가즈유키의 말을 들어봤다.

“야마가타영화제는 ‘이슈 파이팅’영화제가 아니라 참신하고 건강한 관점의 다큐멘터리 작가와 작품을 엄선한다. 한편, 다큐멘터리영화의 새로운 개념과 이념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에게 용기를 주고 평가한다. 단지 다큐멘터리라는 이유로 평가하기보다는 한편의 온전한 영화로서의 다큐멘터리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 따라서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품고 있는 시야가 폭넓은 다큐멘터리와 인간적인 깊은 성찰과 반성이 진실하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양윤모/ 영화평론가·강우석필름아카데미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