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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법칙,사랑하지 말 것,<강호동의 천생연분> <장미의 전쟁>
2003-10-22

<강호동의 천생연분>MBC 토요일 저녁6시 방영

<장미의 전쟁>KBS2TV 토요일 저녁6시 방영

성가 드높던 대표적인 두 짝짓기 프로그램이 사라진다. <강호동의 천생연분>은 10월4일 방영분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끝났다. 이어진 2회분은 하이라이트 방영이다. <장미의 전쟁>은 11월 KBS 개편 때 “확실히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두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이유는 사뭇 다르다. <…천생연분>은 강호동이 타사 sbs의 같은 시간대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서, <장미의 전쟁>은 KBS가 가을 개편에 기치로 내건 ‘공익성 강화’ 차원에서다. 그런데 인기가 없어서는 아니니 짝짓기 프로그램의 몰락을 예견하기에는 이르다. 두 프로그램은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간 ‘은근과 끈기’를 지녔기도 하다. <…천생연분>은 <목표달성! 토요일>의 한 코너로 출발하여 2002년 10월 프로그램으로 독립하였으며 <장미의 전쟁>은 <자유선언! 토요 대작전>의 단일 코너로 굳어져 사실상 독립 프로그램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초기, 출연자 섭외에 애를 먹었지만 프로그램 출연 뒤 출연자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출연하려는 연예인들이 줄을 섰다는 후문. <…천생연분> 출연 뒤 김흥수, 빈, 비, 유민 등의 인기가 급상승하였으며 <장미의 전쟁>의 경우 연예인 지망생이 얼굴을 알려 CF와 드라마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미의 전쟁>에서 연예인 지망생이 처음에 묶여나온 카테고리는 ‘일반인’이었다.

인지도 상승효과가 인증을 받으면서 출연자들의 무엇이든 못할 게 없다는 집착도 도를 더해갔다. 오프닝 춤을 위해 며칠씩 연습을 하는 건 필수, 출연자들은 한표를 얻기 위해 몸을 바쳐 뛰었다.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몇몇 출연자는 방송분에서 얼굴을 몇번 비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세명의 출연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전망평도 나왔다.

‘논픽션 시추에이션, 중매 버라이어티’ <…천생연분>은 MC 강호동의 개인기에 기댄다. 그가 옮겨가면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에서도 그 장악력을 읽을 수 있다. 강호동은 스튜디오 안이 시끄럽게 호령한다. 그의 진행은 혈기방장하여 쇼 프로의 제작자들이 바라는 ‘숨쉴 틈 없는 긴장’을 유지하지만 그것은 독이 되기도 한다. 딱딱 떨어지는 맛없이 두루뭉술함은 <…천생연분>의 가장 큰 적이었다. 특히 <…천생연분>이 정해놓은 ‘킹카-퀸가’ 룰은 자승자박의 꼴이었다. <…천생연분>은 투표를 하여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남녀를 ‘킹카-퀸카’로 뽑고 이들에게 떠나라고 주문한다. 영예가 되어야 할 룰이 안타까움이 되는 이 이상한 룰은 짝짓기 팀 안에 넣은 보조진행자(0표 클럽, 덤 앤 더머)를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처음 출연하여 만난 남녀의 활기를 이어나간다는 복안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킹카-퀸카가 계속 출연할 의사가 있을 경우 ‘떠나라’는 효력이 없다. 그리하여 바쁜 스케줄의 연예인에게 한번 출연으로 킹카-퀸카 퇴출을 영광스럽게 안기는 편의 수단이 될 뿐이다. ‘방송 환경’이 ‘퇴출’의 고려사항일 테니 당연하게 조작 의혹도 제기됐다. 모 가수가 출연한 방송분의 경우 자기가 찍은 상대방이 0표가 나오자 “내가 잘못 눌렀나보다”고 말을 했고, 진행자는 “(파트너를 안 찍고 다른 사람을 찍고는) 끝까지 변명을 한다”는 유들유들한 말솜씨로 넘어갔다.

비판이 수시로 날아들었지만 짝짓기 프로그램의 휴업기간은 짧을 것이다. 짝짓기 프로그램은 자기 충족적 현실을 창조하는 데 손쉬운 해결책이다. 선남선녀만 모아놓아도 화학작용이 발생한다. 아니, 출연자들 스스로 시나리오를 짠다. 스타의 인기는 ‘현실의 가상적 충족’ 여부에 달려 있는데 짝짓기 프로그램은 이런 목적에 적당하다. 스타의 연애관과 연인관을 피력하고 연애 감정을 보여주는 데서 느끼는 시청자들의 대리만족은 크다.

시청자들은 이것이 다 장난이고 쇼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 감정이 동요된다.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이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여자친구(남자친구)도 있으면서 그런다”고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스타를 선택하지 않은 여자의 ‘퇴출’을 외치기도 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킹카-퀸카 조작에 분노한다. 하지만 킹카-퀸카 조작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프로그램 내내 이루어지는 감정의 조작이다.

이상적 대리만족을 위해서 짝짓기 프로그램은 , 즉 ‘킹카, 퀸카’ 용의 ‘이념적 이상형’을 만들어간다.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친구처럼 편안하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지’, ‘남자로서 느껴지는지’는 출연자들을 안달복달하는 고민이다. 어려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저씨 타입도 질색한다. 그래서 프로그램에는 사랑의 가장 물질적 단계만이 드러난다. 그리고 여기엔 진심이 없다. 이런 출연자들이 바라는 것은 연인이 아니라 인기라는 것은 명백하다. 진짜 좋아하는 것 같은데도 어떤 짝짓기 프로그램에서도 스캔들이 나지 않는다.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가장 웃기는 순간은 출연자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일 것이다. 너무 진지해지는 순간일 것이다. 초점 맞지 않은 카메라에서도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면 그는 바보다. 시청자들을 향해서 구애를 해야 하는데, 한 사람을 사랑해버리다니. 사랑하지 말라, 그것이 ‘짝짓기’가 목표인 연예 프로그램의 지상명령인데. 구둘래/ 자유기고가 kudl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