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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라고? 전쟁이지!
2001-05-24

KBS2TV 퀴즈프로 <퀴즈 정글>

KBS2 화요일 오후 6시30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너는 어디 갔느냐, 아니냐?” <강원도의 힘>에서 두 사람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영영’인지 ‘너는’인지, 알쏭달쏭한 이것은 그들에게 수수께끼다. 어딘가에 진실은 있을 것이다. 그 진실이 즉발적인

표현으로 밝혀질 때 우리는 이것을 퀴즈라고 명명한다. 퀴즈에는 답이 있다. 답이 있으면 그것을 맞히는 승자가 있고, 그래서 때로 퀴즈는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정글이 되기도 한다.

문제풀이 제1계명, ‘아는 것이 힘’

퀴즈 프로의 전성기인가. 원래 공부는 학생들만 하는 것이었다. 퀴즈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학생 대상이었다. 국가적으로 유포했던 “평생학습”이

지금 약발이 먹히고 있나. ‘아줌마’군이 퀴즈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고, 지하철에 타면 한영사전을 읽는(<생방송 퀴즈가 좋다>

출연자) 아저씨도 생겼다. ‘퀴즈’라는 건 우리가 학창 시절 들여다보던 교과서만큼 실생활에 쓸모없는 것이지만, ‘퀴즈 프로그램’은 성적

발표일 성적표가 걸리는 칠판 앞에 장사진을 이루던 학생들만큼이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도전! 퀴즈 퀸>(SBS, 월∼금

오전 9시), <생방송! 퀴즈가 좋다>(MBC, 일요일 오후 5시10분), <도전! 골든 벨>(KBS2, 금요일 오후

6시30분), <퀴즈! 영화탐험>(MBC, 토요일 오전 9시45분), <퀴즈 천하통일>(EBS, 월∼목 오후 6시55분),

<장학퀴즈>(EBS, 월요일 오후 7시30분) 등의 퀴즈 ‘전용’ 프로에 퀴즈 형식을 이용한 오락프로그램 <가족 오락관>

<진품명품> 등, 프로그램마다 하나씩은 있는 김장훈인지 서장훈인지 헷갈리는 ARS퀴즈 등 퀴즈 천국이다.

5월 1일 첫방송된 <퀴즈 정글>은 복잡한 퀴즈 프로그램이다. 단서를 달자면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퀴즈

정글>의 법칙은 라운드마다 패자가 한명씩 솎아내는 서바이벌 방식이다. 경기마다 걸린 상금을 서로 협력하여 적립하고 그 적립금은 마지막

라운드의 우승자가 모두 가져간다. 하지만 이 단순한 룰은 서로 협력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한 사람을 비밀리에 지목하고 그 사람이 다른 상대방을

지목하여 경기를 벌이는 ‘협력하고 배반하는’ 룰들로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1라운드. 7명의 출연자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를 푼다. 2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는 객관식이다. 2라운드의

문제에는 3개의 보기 중 2개, 3라운드는 4개 중 3개, 4라운드는 5개 중 4개의 답이 있는데 연속하여 답을 골라내야 한다. (돌발퀴즈1:

6라운드는 몇 문항 중 몇개가 답?) 한 문제를 온전히 맞혔을 경우에만 상금이 적립된다. 5라운드, 6라운드는 주관식이다. 5라운드는 출연자가

두개를 연속하여 풀어야 6라운드는 세 문제를 연속해서 풀어야 상금이 적립된다. 적립되는 상금은 1라운드 1만원, 2라운드 10만원, 이후는

10만원씩 증가한다(돌발퀴즈2: 6라운드의 상금은?). 각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투표를 한다. 인기 투표가 아니다. 나가줬으면 하는 사람뽑기다.

하지만 다수결로 결말이 나지 않는다. 이 거역하지 못할 운명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 추방대상자가 한명을 지목하여 그 사람과 생존게임(주관식)를

벌인다. 당연히 이긴 사람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패스라는 장치도 있다. 알쏭달쏭한 경우 ‘패스’라고 할 수 있는데 외칠 때마다 10만원이 <사랑의

리퀘스트>로 적립된다. 두번의 패스는 오답으로 간주된다. 6라운드가 끝나고 나면 두명이 남는다. 두명은 눈앞에 놓인 상금을 두고 겨룬다.

승자는 주관식 문제를 ‘연속하여’ 세 문제 먼저 푸는 사람이다. 세 문제를 맞히고 틀리게 되면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한다. 1라운드와 7라운드를

제외하고 라운드마다 상금을 축적하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2분30초다(돌발퀴즈3: 7명의 사람이 몇 라운드를 거쳐야 최종승자가 남는가. 힌트/

1라운드는 서바이벌이 없다. 답 대조 뒤 틀리면 다시 앞으로 가는 건 자기 맘). (돌발퀴즈 정답: 1.

6라운드는 주관식이다. 2. 50만원. 3. 7라운드.)

룰을 숙지했으면 전략을 짜야 할 단계다. 먼저 문제를 잘 푸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다. 다음 사람이 못 풀 것 같으면 어려운 답을 지적하여

그의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협력 전략이다. 나중에 선사받을 상금을 좀먹는 자들을 뿌리뽑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과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그들을 축출하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단계가 높아지면 협력 전략만으로는 부족하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The winner

takes all). 최종 승자가 될 소지가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의 실력을 빌려서라도 제거하고 싶어진다. 그를 일단 생존게임의 장으로

보내야 한다. 그래서 세 번째 전략은 우승예상자 제거 전략.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문제를 잘 맞히는 사람이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다. 제거하는

데 다른 사람이 동의한다면 그 또한 생존게임의 장으로 보내기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존게임의 장으로 나간 뒤 사정까지는 통제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하지만 라운드는 많고 계속하여 찍다보면 그가 모르는 문제가 나올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는 떨어져나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짜는 전략도 있다. 이는 맨 처음 전략, 문제를 잘푸는 전략을 배신하는 것이다. ‘흥선대원군 전략’이다. 처음에 못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생존게임을 피해가다가 마지막 포효를 하는 것이다.

생존게임에 임하는 사람에게 사회자인 이홍렬이 넌지시 묻는다. “누가 당신을 지목했는지 알고 싶으냐.”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알고 싶다는 사람도

많아진다. 만약 나중 녹화된 방송을 보며 지목자를 확인하는 과정이 없다면, 과연 몇명이나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온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알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평정심을 유지한다.

세트는 긴장된 분위기를 더한다. 퀴즈를 푸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는 없다. “편안한 자리에서 쉬시면서 긴장하지 말고 문제를 잘 푸시기 바랍니다”가

아니다. 별처럼 빛나는 전등을 배경으로 하여 출연자들이 놓인 공간은 우주처럼 까맣다. 그리고 그들은 서 있다. 은빛으로 굽어 있는 탁자는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물체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자를 향하여 원형을 이루고 있고 이 배치는 출연자 서로간의 협력을 표현하지만 동시에 서로간의

공격을 표현하기도 한다.

도 튼 퀴즈꾼, 고달픈 출제자

<퀴즈 정글>은 퀴즈 파일럿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우열을 가릴 수 없어 두개가 제작되었다. 프로그램으로 정착하기

전 통과한 관문 역시 ‘정글’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출연자를 인터뷰하는 중에 한 출연자가 이 파일럿 프로그램의 진행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파일럿 프로그램에서는 두명만이 남는 결승전의 방식이 지금 것과 달랐다. 8개 중 7개의 정답과 1개의 오답이 있는 객관식 문제를 출제했다.

두명의 출연자 중 ‘기여도’(그때가지 정답을 맞힌 확률)에 따라 순서가 결정된다. 그렇게 첫 순서에 등장한 출연자가 하나부터 셋까지 답을 고르고,

두 번째 출연자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오답을 지적하는 경우에 퀴즈는 종료된다. 그런데 문제의 출연자가 “이 방식은 첫 순서의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항의’하고 나섰다. 즉 첫 순서의 사람이 정답 3개를, 두 번째 사람이 1∼3개를 지적하고 나면 다시 첫 번째 사람 차례. 그가

나머지 정답 답을 맞추면 게임은 종료되고 그는 우승자가 된다. 두 번째 사람은 답을 알아도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1회에서는 순서대로

답을 지적하는 방식, 2회에는 동시에 답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이 방식도 3회에서는 실력자가 ‘운’ 때문에 상금을 놓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어 주관식으로 바뀌었다.

3회에서 놀라운 퀴즈 실력을 보여준 우승자에 대해서는 ‘자격시비’도 일었다. “당신은 퀴즈꾼이냐”는 것이다. 그 우승자는 <생방송

퀴즈가 좋다>에 출연하여 9단계까지 갔고 10단계에서 포기했는데, 그것도 10단계 문제를 개봉하자 정답을 말하며 안타까워한 실력자였다.

출연자들은 퀴즈를 통해 단련된 사람들이 많다. <장학퀴즈> <퀴즈 아카데미> <퀴즈 퀸> <퀴즈 대학>

<전국 주부 대항 퀴즈> <퀴즈 크래프트> 등 흥망성쇠한 퀴즈 프로그램이 길러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말로 퀴즈에

강하다. 따로 공부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입시생마냥 메모장에 적고, 때로는 연필로 연습장에 적어가며 외운다. 신문을 훑으며 단어를 외우려고

애쓰고 퀴즈 프로 등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시킨다. 그들은 예선 장소에서 서로를 발견하고는 의미있는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래서 퀴즈 문제를 내기도 고달프다. “우리 문제의 특성이 뭔지 눈치채셨어요?” <퀴즈 정글>의 동세라 작가는 단편적인 지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도록 출제한다고 한다. 여성작가의 작품을 고르는 경우를 예로 들면, 시중 상식책들은 한국고전, 서양 현대문학, 서양고전,

이런 식으로 레퍼토리를 나누어 출제하고 있다. 그러나 <퀴즈 정글>에는 그 모든 레퍼토리가 망라ㆍ혼합되어 있다. 그러니 문제를

내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승자가 결정된 대기실. 패스(pass)로 쌓인 돈은 이웃돕기성금으로 간다. 과거의 우승자들은 이 돈에 받은 상금을 보태기도 했다. 우승자가

수혜자나 기관을 정하지 않으면 수동적으로(passive) <사랑의 리퀘스트>로 갈 테지만, 하원 PD는 “구체적으로 지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루 몇 시간 노동으로 500여 만원을 벌었는데 그 돈을 어디다 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다그침이다.

세상 사는 데 퀴즈가 무슨 소용이 있냐는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이다.

구둘래|객원기자

<위키스트 링크> vs <퀴즈 정글>

더 잔인하고 복잡한

<퀴즈 정글>이 맨 처음 방영되었을 때 시청자란에는 영국의 <위키스트 링크>(weakest link)와 닮았다는 말이

많았다. “전세계적으로 서바이벌 퀴즈는 특이한 형식이 아니다. 벤치마킹했지만, 영국쪽에서 고소를 하더라도 승소할 자신이 있다”라고 하원 PD는

말한다. 과연 그의 장담은 맞는가.

<위키스트 링크>는 앤 로빈슨의 독설로 유명하다. 문제를 틀린 사람을 향해서 “그것도 못 맞히느냐”고 내뱉는 게 다반사. 이홍렬이

서로를 격려하도록 부추기는 것과 우선 대조적이다. 라운드마다 탈락자가 발생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위키스트 링크>에서는 다수결로 뽑힌

탈락자는 생존게임 없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 그리고 탈락자를 뽑을 때 <퀴즈 정글>의 경우 비밀투표를 실행하지만 <위키스트

링크>에서는 직접 대고 지목한 상대방을 향해 “당신이 떠나야 할 이유”를 말한다. 구체적인 룰로 들어가면 많이 다르다. <퀴즈 정글>은

독특하게 객관식, 그것도 (예를 들면) 4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답을 피해 3개를 선택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위키스트 링크>는

모두 주관식이다. 상금 적립방식도 다르다. <위키스트 링크>의 경우 정해진 시간 외에 ‘목표한 상금에 도달하면’이라는 라운드 목표가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위키스트 링크>의 경우 무일푼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치가 많다. 틀린 답을 말할 경우 ‘땡전 한푼 없음’이

되고, 답을 하기 전 ‘bank’라고 말하면 적립금을 저축하게 된다. 하지만 상금은 다시 0에서 시작한다. 순차적으로 맞힐 경우 상금은 두배가

되는데 ‘bank’라고 외친 출연자가 예뻐보일 리 없다. 상금을 쌓아가는 과정의 가장 약한 고리(link)는 누구냐가 이 프로그램의 제목.

이 제목에는 “협력하는 듯 보이는 이 단결이 정말 강한 걸까”라는 반어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위키스트 링크>가 더 잔인하고

룰이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베꼈다고 하더라도 우리 정서에 맞지 않으리라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