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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동시개봉 <매트릭스3 레볼루션>
2003-11-07

50개 나라 같은 시각 베일벗은 매트릭스 3 중심잃은 성전 혁명 기대 과부하?

지난 5일 한국 시각으로 밤 11시를 기해 <매트릭스 3 레볼루션>이 전세계 50개국에서 뉴욕 오전 9시, 런던 오후 5시 등 같은 시간에 개봉했다. 한국에선 전국 스크린수가 346개로, 한 회당 좌석수가 10만석을 넘는다. <매트릭스 3…>은 4년전 열광적인 찬사를 받았던 <매트릭스> 시리즈의 완결편에 거는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할까.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가 신비주의를 고수한 탓에, 개봉시간에 맞춰 일제히 인터넷에 올라온 외국 언론들의 반응은 석연치가 않다. ‘화면은 장관인데 이야기가 주는 감흥은 별로’라는 식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중 절반 이상에 따라붙는 익숙한 표현이 여러 글에서 보인다. 국내에서도 호오가 크게 갈린다.

기계군단 맞선 인간 저항군, 철학은 사라지고 전쟁만 남아

실제로 <매트릭스 3…>은, 관객들이 이 시리즈에 기대했던 것들 중에 중요한 하나, 다시말해 1편이 제기하고 2편이 확장시킨 철학적 문제제기에 대한 탐구를 멈추고 전쟁 스펙타클의 연출에 몰두한다. 2편에서 예정된 대로 기계군단이 시온을 총공격해오고, 시온의 인간 저항군들은 최후의 전투를 치룬다. 시온의 방어막인 돔이 무너지고, 성벽조차 헐린다. 컴퓨터그래픽과 실사의 결합이 다른 어떤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 자연스럽고, 처참하게 싸우다 죽어가는 인간들에게선 비장미가 풍긴다. 그런데 전편들을 상기하면 이 비장미는 당혹스럽다. 프로그램과 주체, 기계와 인간의 경계를 의심해온 게 <매트릭스>시리즈였다. 기계들은 잔혹한 악이 되고, 희생적으로 싸우는 인간을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연출 앞에선 <스타쉽 트루퍼즈>나 <인디펜던스 데이>를 보는 것 같은 혼돈이 생긴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가상현실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달리, 가상현실과 실제 세계를 명확하게 구별지워 놓고 출발했다. 이 이분법을 빌어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의 허구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이 허구적 세계와 실제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듯했다. 혹자들은 2편을 보고 난 뒤 시온 마저도 매트릭스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3편에선 두 세계의 경계가 다시 공고해지고, 주무대가 매트릭스 밖의 실제 세계로 옮겨간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매트릭스 안에서의 철학과 밖에서의 철학은 다를 수밖에 없다. 안에서의 철학은 시스템이 부여한 경계와 구분을 회의하는 것이다. 그건 시스템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비극적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밖에서의 철학은 경계지워진 상대방과의 투쟁이며, 그건 구원적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다분히 전자는 불교적이고 후자는 기독교적이다.

매트릭스 밖 실제 세계 주무대, 기독교적 구원의 세계관 깔려

<매트릭스> 시리즈는 이 둘을 아우르려 하지만 아무래도 설득력이 달린다. 매트릭스 밖으로 나온 3편은 기독교 세계의 이분법에 몸을 맡긴 채 성전으로 치닫는다. 그러다가 급선회해 균형을 잡아보려 하지만 이미 중심을 잃은 듯하다. “당신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매트릭스>를 본다 해도 그 안에서 자신의 관점에 부합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매트릭스> 1편이 나온 뒤 슬라보예 지젝은 이렇게 말했다. 3편 개봉 뒤 <뉴스위크>는 이렇게 썼다. “6개월 뒤면 이 3부작의 마지막 편에 걸었던 기대를 수정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글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