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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지 마란 말야!
2001-05-24

컴퓨터 게임|게임과 시간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게임 소비자의 절대 다수가 십대다.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 게이머들이 게임 좀 해보려면 탄압이 이만저만 아니다. 부모들이 게임을 못하게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게임하느라고 공부할 시간을 빼앗긴다는 논리다. 학생이 꼭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 게임 안 하면 그 시간에 꼭 공부하리라는 보장이 있는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꼭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게임을 하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론적으로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게임을 하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머리를 잠시 식히며 다음 할 일을 준비하는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게임을 하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한번 붙잡으면 적어도 3∼4시간은 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씩 잠도 안 자며 매달리는 일까지 생긴다.

고에이의 <삼국지>는 삼국지를 원작으로 한 게임들 중 단연 최고로 평가받는 게임이다. 난세의 군주가 되어 천하통일을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다보면 하룻밤 정도 새우는 거야 우습지도 않다. 탐험시대 제국주의의 선봉장이 되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대항해 시대>의 경우, 꼭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열을 올리다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던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다. 지구에 침략한 외계인을 물리친다는,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전혀 쿨하지 않은 스토리의 <엑스컴> 역시 시간 잡아먹는 귀신이었다. 이 게임은 전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하고 우리편 하나하나의 걸음 수까지 따져가며 전투를 벌이다보면 어느새 동이 터온다.

<삼국지>나 <엑스컴> 같은 게임을 하면서 밤을 새우게 되는 건 전체 게임 플레이가 하나의 거대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개별 전투는 그냥 이기고 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략의 구성요소로서 전체 전장을 아우른다. 호흡을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밤을 새우게 되는 것이다. 꼭 학생이 아니라도 게임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이런 게임보다는 단판으로 5분 안에 승부를 낼 수 있는 게임을 걸 하는 게 낫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게임을 하면서도 날밤을 새우는 일이 있다. 예를 들어 <지뢰찾기>를 보자. 윈도를 사용한다면 한번 정도야 다들 해봤을 테지만 이 게임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 비슷한 것도 없다. 그저 한판 한판 단판으로 승부를 내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한번 시작하면 의외로 손을 떼기가 어렵다. 그놈의 하이스코어 때문이다. 눈이 침침해지고 어깨가 결리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한번만 더 하면 기록을 깰 것 같은 부질없는 생각에 그만둘 수가 없다.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현상을 낳는 게임으로 최근 출시된 남코의 <미스터 드릴러>도 있다. 제목 그대로 목표 깊이까지 땅을 파들어가며 푸는 퍼즐게임인데 잘못 파면 무너져서 깔려죽기도 하고, 적절한 때 산소 캡슐을 얻지 못하면 숨이 막혀 죽는다. 게임을 마치면 파들어간 깊이가 그림으로 나온다. 한번 플레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4분 정도로 부담이 없다 보니까 한번만 더해서 다음 판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매달리게 된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을 전부 합하면 웬만한 게임 몇개의 엔딩 보기에 충분한 시간인 건 물론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게임은 시간 잡아먹는 귀신이다. 밤이라도 새우면 다음날에 지장이 막대하다. 게다가 슬프게도 나이가 들수록 피해도가 더 크고 복구하는 데 드는 시간도 더 긴 것 같다. 그래도 다음날 시험 망칠 신세는 벗어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박상우|게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