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8년 전에도 대장금? 아~헷갈려
2003-11-14

소주방 나인 이영애…맞수관계 동무…맛깔스런 궁중음식…

이영애는 궁궐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나인이다. 어릴 적 궁에 들어와 각종 나물 이름 외기, 물동이 이고 걷기, 놋쇠그릇 닦기, 상놓는 법 익히기 등 고된 수련을 거쳤다. 생각시 시절부터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동무도 있다. 이영애는 음식에 관한 한 뛰어난 기질을 타고 났다. 반면 그의 동무는 기교는 뛰어나지만 음식에 대한 깊은 이해는 갖고 있지 않다. 어느날 최고상궁이 두 사람을 불러놓고 말한다.

“내가 이제 물러날 때가 됐으니 두 사람이 경합을 벌여 음식 솜씨가 더 뛰어난 사람을 내 후계자로 삼겠노라!” 결국 전수자 결정은 보류되지만 그 뒤 두 사람은 서로 각기 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된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각종 맛깔스런 궁중 상차림은 양념으로 여러 차례 제시된다.

이상은 대한민국에서 텔레비전을 보유한 가구 가운데 40% 이상이 본다는 인기드라마 〈대장금〉의 줄거리가 아니다. 문화방송이 1995년 12월1일 창사특집극으로 방영한 〈찬품단자〉(사진) 1·2부의 초반부 설정이다. 드라마 앞부분 줄기와 가지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슷하다. 같은 방송사에서 8년 전 방송한 드라마와의 비슷한 설정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장금〉 연출자인 이병훈 피디는 당시 문화방송 드라마국 부국장이었다.

물론 두 드라마의 시대배경과 향후 전개되는 양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대장금〉에서는 주인공 장금이 이후 최고상궁을 거쳐 중종의 어의 자리까지 오른다. 반면 조선 말기를 시대 배경으로 시작한 〈찬품단자〉는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기, 한국전쟁과 휴전을 거쳐 현대에 접어들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영애는 궁중 전통 음식을 끝까지 지키다 세상으로부터 크게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그의 동무였던 이일화는 일식과 양식 등으로 재빠르게 변신을 거듭한 뒤 끝내 전통 궁중요리가로 이름을 날린다. 이 사이에 배신과 용서가 버무려져 있다. 요컨대 〈찬품단자〉는 친일파를 비롯한 기회주의자가 득세하고 독립운동가 등 소신파들은 이들에게 짓눌린 한국 현대사의 뼈아픈 구석을 비유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렇다면 ‘설정 빌려오기 논란’의 실체적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대장금〉의 김영현 작가는 결백함을 강조했다. 김 작가는 “〈찬품단자〉라는 드라마 얘기는 들어봤지만 전혀 본 적이 없다”며 “초반 설정은 모두 내가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피디로부터 관련한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찬품단자〉를 연출한 이승렬 피디는 긍정적인 해석을 하려 애쓰면서도 설정을 빌려왔을 개연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 피디는 “대장금을 보며 비슷하다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드라마가 지향하는 바가 달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 전개의) 징검다리로 쓰는 것이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문제”라며 “거부감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원작자에 해당하는 〈찬품단자〉의 작가 김진숙씨와는 거듭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주 끝난 문화방송 일일연속극 〈백조의 호수〉의 작가이기도 하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