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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이웃을 향한 정겨운 시선

아녜스 바르다의 <다게레오 거리의 사람들> 상영회 열려

10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파리 14구 당페르 광장 한 모퉁이의 작은 극장, 아담한 체구의 한 여성이 지팡이에 몸을 의존한 채 극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극장 안에는 일요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조금은 열띤 얼굴들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사람은 ‘누벨바그의 어머니’인 아녜스 바르다였다. 이날 당페르극장(Cinema Le Denfert)에서는 아녜스 바르다의 1975년 에세이영화인 <다게레오 거리의 사람들>(Daguerreotypes)의 상영회와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자신의 영화를 사랑해주는 관객의 애정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상영에 앞서 75살에 만든 12분짜리 단편영화 <날아가버린 사자>(Le Lion volatil, 2003)를 함께 보기를 제안했다.

<날아가버린 사자>는 파리 14구의 상징적 장소인 당페르 광장과 그곳에 있는 벨포르 사자 동상을 모티브로 그곳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두 젊은 남녀의 사랑과 삶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영화이다. <다게레오 거리의 사람들>은 아녜스 바르다가 30여년 동안 살고 있는 파리 14구의 다게르 거리 70번지에서 90번지까지를 배경으로 그곳 사람들과 거리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시선이 담겨 있다. 한 노부부의 삶이 배어 있던 향수가게 샤르동 블루, 빵집, 이발소, 미장원, 정육점, 잡화상, 마술사의 공연이 있던 카페, 거리에서 살아가는 이웃간의 대화. 지금 우리는 30년 전 그녀가 이웃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던 동네의 작은 극장에 앉아 30년 전의 그 이웃들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 속의 이웃들은 30년 뒤의 이웃들인 우리를 바라본다. 30년 전의 이웃들, 30년 뒤의 이웃들, 그리고 영원한 이웃 아녜스 바르다는 한자리에 모여 삶과 인간을 함께 이야기한다. 영화적 기적이 일어난다. 지금 그 거리엔 패스트푸드 상점과 대형 매장들이 이웃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필름은 그녀처럼 나이를 먹어버렸지만, 그녀와 그녀의 영화적 시선은 마치 마법처럼 시간을 초월한다.

작가 특유의 경쾌한 리듬과 시선이 듬뿍 담긴 두편의 영화는 ‘동네영화’(le cinema de quartier) 또는 ‘이웃영화’(le cinema de voisin)라는 새로운 시선, 대안적 영화의 발견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녀의 영화는 인류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나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념적인 메시지를 직접적인 수사법으로 전하지 않으며, 작가주의의 형식적 틀 안에 머물지도 않는다. 아녜스 바르다는 이웃의 삶과 고민을 함께하는 우리의 이웃이다. 그녀의 시선은 우리의 시선이고 이웃의 시선이며 인간의 시선이다. 시선은 다시 교환되고 영화적 기적이 다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