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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작은 영화 조용한 성공

블록버스터 틈새에서 인기몰이 중인 독립영화들

연말 극장가라 하면 아카데미상 후보작이나,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린 블록버스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체로 배급사들의 현기증이 날 만큼 정신없는 광고전략을 동반하게 마련. 그러나 이 북새통에도 뉴욕 연말 극장가에서 조용히 인기를 모으고 있는 독립영화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성인들의 어려운 우정 만들기를 그린 <역장>(The Station Agent), 허위 기사를 쓴 기자의 실화를 다룬 <셰터드 글라스>(Shattered Glass), 실버 스크린에서 조명 든 괴팍한 디바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담은 <다이 마미 다이!>(Die Mommie Die!), 적은 자본으로도 미국 뮤지컬의 에센스를 잘 표현한 <애니싱 벗 러브>(Anything but Love)가 그 작품들.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됐던 <역장>은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작품. 뉴저지주의 버려진 역을 상속받은 핀바(피터 딩클리지)를 주인공으로, 아버지 대신 역 옆에서 간이 커피점을 운영하는 조(바비 캐나발리), 아들이 죽은 뒤 시름에 잠겨 있는 올리비아(패트리샤 클락슨)를 둘러싼 ‘사람 사는 이야기’다. <역장>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살고 싶은 핀바의 일상에 갑자기 끼어들어온 마음 착한 수다쟁이 조와 아픈 가슴을 달래줄 친구가 절실히 필요한 올리비아 등의 캐릭터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펼쳐가는 ‘친구 만들기’를 조용히 풀어간다.

<셰터드 글라스>는 1998년 봄 미국의 유력 시사주간지 <뉴 리퍼블릭>에서 수년간 27건의 기사를 위조해온 혐의로 해고된 저널리스트 스티븐 글라스의 실화를 다뤘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헤이든 크리스텐슨을 비롯해 피터 사스가드, 클로이 세비니, 스티브 존, 로자리오 도슨 등 내로라 하는 ‘떠오르는 스타’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연기대결을 펼쳤다. 앳돼 보이는 글라스는 <뉴 리퍼블릭>에서 가장 아끼는 기자. 늘 보호 본능을 자극하며, 누가 조금이라도 기사에 의문을 제시하면 “나한테 화났어요?”라며 불쌍한 강아지 표정을 지어 모면한다. 동료와 상사에게도 인기 만점. 그러나 거액을 받고 대기업에 고용된 해커 소년의 흥미진진한 기사를 꾸며서 쓴 뒤 인터넷 잡지 기자 애덤 페넨버그와 <뉴 리퍼블릭>의 새로운 편집장에 의해 발각된다. 글라스 역의 크리스텐슨과 편집장 척 레인 역의 사스가드 사이의 연기대결이 압권이다.

선댄스영화제가 직접 배급을 담당한 <다이 마미 다이!>는 한마디로 <파 프롬 헤븐>의 주인공을 드랙퀸(여장남자)이 연기한다고 상상하면 가장 근접하다. 연극무대에 드랙퀸으로 출연해 유명해진 찰스 부시가 ‘왕년의 인기가수’ 안젤라 아든 역으로 나와 조앤 크로퍼드와 베티 데이비스 등의 ‘악녀’ 역할을 코믹하게 재현했다. 부시의 ‘오버 더 톱’ 악녀 역할이 폭소를 자아내며, <비버리힐즈의 아이들>로 알려진 제이슨 프레슬리가 안젤라의 연인 토니로 출연해 코믹연기를 선보인다.

뮤지컬 <애니싱 벗 러브>에는 유명 배우도 없고, 멋진 의상도 없다. 그래서 개봉되기까지 2년이나 소요됐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호화롭고 현란한 할리우드영화에서 볼 수 없는 풋풋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주인공 빌리 골든은 30대에 접어든 나이트클럽 가수. 50년대 뮤지컬처럼 멋진 사랑을 꿈꾸지만 뉴욕 변두리 공항 근처의 허름한 클럽에서 노래하는 그녀에게는 너무도 멀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그렉과 우연히 마주치고, 이들의 사이는 급작스럽게 진전된다. 하지만 법률회사의 변호사인 그렉은 빌리가 노래를 포기하고 자신의 ‘트로피’ 부인이 되기를 바란다. 이때 빌리 앞에 성격은이 괴팍하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만은 남다른 엘리엇이 나타난다. 빌리 역을 맡은 이자벨 로즈가 자서전처럼 쓴 이 작품은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도 곳곳에 영화에 대한 애정이 배어난다. 엘리엇 역에는 80년대 ‘브랫 팩’의 일원으로 알려졌던 앤드루 매카시가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