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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어땠어? <노보>

아가씨, <노보>를 보고 기억과 사랑을 곱씹다

며칠 전 최근 실연한 한 친구를 만났다. 상태가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친구는 답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런데 문제는 내 연애는 너무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거야. 1년 연애하면 그걸 잊는 데 3년이 걸려.” 원래 불쌍한 애인 줄은 알았지만 이런 연애라면 가장 불행한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그 상태로 한 3년 살고 알코올중독에 간경화 선고받으면 작살난 몸 추스르느라 바빠서 저절로 잊혀질 거야. 힘내서 계속 마셔.” 우정어린 충고를 하면서 나는 사랑과 기억의 관계에 대해서 물음표를 날리는 영화 <노보>를 떠올렸다.

기억은 사랑의 아군일까, 아니면 적군일까. 내 친구의 경우가 최악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끝난 사랑이 남겨놓은 기억의 거미줄 속에서 허덕거리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똑같은 경험에 대한 기억임에도 상황 진행과 종료 여부에 따라 그 기억은 사탕이 되기도 하고 쓴 약이 되기도 한다. 약처럼 무슨 효과도 없이 말이다. 고통의 시간마저 지나면 이빨 다 빠진 할머니처럼 “아름다운 추억이었지” 하고 회고할 수는 있지만 그때는 이미 기억도 김빠진 콜라처럼 어떤 느낌은 사라지고 단맛만 잔뜩 남은 맛없는 것이 되고 만다.

나처럼 좀 치졸한 부류에게만 해당되는 경우겠지만 기억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사랑을 방해하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상대방의 기억이 그것이다. 연애를 시작할 때는 과거 따위는 괘념치 않는다는 듯이 “옛날엔 어땠어?” 쿨하게 물어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방의 화려한 과거는 독화살이 되어 심장을 찌르고, 둘 사이에 약간의 긴장관계만 형성돼도 “나 아쉬운 것 없어, 돌아가라구” 창피한 줄도 모르고 쌍팔연도 멘트를 마구 날리게 되는 것이다. 이 방면에서 상대방의 기억상실은 그러므로 매우 유효적절하게 기능할 것 같다.

그러나 만약 그래험 같은 기억상실증 환자와 사랑에 빠진다면 어떨까? 물론 그래험처럼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라면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침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인간이라도 별 고민 안 될 것 같기는 하지만 이렌느는 양가적 감정에 빠진다. 처음에 그는 “매번 처음 같은 느낌”으로 인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래험과의 섹스에 매료된다. 그러나 매번 처음 같은 느낌에는 신선함과 낯섦이 공존한다. 아무리 많이 같이 자도 아침마다 “너, 누구세요?” 하는 질문에 “나는 말이야, 몇달 전 어디서 너를 만나서 어쩌고저쩌고” 설명하기란 얼마나 피곤한 일이며, 무엇보다 낯선 사람 대하듯 데면데면한 사랑하는 이의 눈빛을 감당하는 것은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이렌느는 그래험과의 관계가 “매일 처음 만나는 듯한 설렘이 있지만, 사랑하는 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가슴 아프다”고 기억의 편에 손을 든다.

다른 차원이기는 하지만 기억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갖는 것은 이렌느뿐이 아니다. 그래험이 지금은 기억 못하는 파블로였던 시절 그의 부인 이사벨은 그래험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그래험이 기억이 되찾을 경우 지금의 사랑- 그래험 친구와의- 이 깨질 것을 두려워한다. 같은 기억이라도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 어떤 지점인가에 따라 이처럼 선물이 되기도 하고, 대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노보>의 질문에 귀기울이는 건 충분히 흥미롭지만 어떤 의미에서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1년 연애질하고 3년 기억 때문에 고통받는 비경제적인 사랑을 하더라도 내 친구, 연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기억도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장 피에르 리모쟁은 사랑과 기억의 문제에 대해 탐구했지만 나는 10개월 남짓 ‘아가씨’로 글을 쓰면서 글과 기억의 문제를 집요하게 탐구해왔다. 정말이다! 대여섯번에 한번쯤은 내 글이 기억되기를 바랐지만 실은 독자 모두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차라리 내 글을 빨리 잊어줬으면 생각한 적이 그보다 더 많았다. 나쁜 기억이 더 오래 남듯이 이런 내 글들이 독자 여러분의 정신세계를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행여 초래했을지 모를 일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지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기억 속으로 들어가버린 시간인걸.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그리고 모두 건강하시길….김은형/ <한겨레>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