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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릴레이] 가와세 나오미의 <따뜻한 포옹> 정성일

서울시장에 항의전화 합시다. 충무로 활력연구소 왜 문닫느냐고

오호통재라!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이 글을 써야만 한다. 그리고 당신은 읽고 난 다음 비분강개한 나머지 눈물을 쏟으면서 항의해야만 한다. 서울 충무로 지하철역에 자리잡은 활력연구소가 2003년 12월 31일에 고아원처럼 강제로 문을 닫는다. 세상은 그렇게 엿같이 돌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죽어 가는 활력연구소의 최후의 12월 영상전은 ‘우연히도’ 야마가타 다큐멘터리 회고전이다. 그리고 그 초대작 중의 두 편이 가와세 나오미의 눈물겨운 ‘사적(私的) 다큐멘터리’다. 이건 정말 놓쳐서는 안 된다.

먼저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가와세 나오미의 팬클럽 회원이다(그 여자 감독의 사이트에도 가입했다). 가와세 나오미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혀를 내두른다. 그는 소문난 공주병 환자이다. 같은 말이지만 그는 일본 영화계의 ‘왕따’이다. 성격도 나쁘고, 현장에서 자기밖에 모르는데다가, 심지어 방송에 나와서도 자화자찬에 침이 마른다. 종종 그와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은 다시는 같이 하고 싶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영화제들은 다시는 초대하고 싶지 않다고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악명 높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에 마술 같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장면과 마주하게 만들고야 만다. 게다가 점점 더 영화가 좋아지고 있다. 아직 그는 34살밖에 되지 않았다.

(이번 활력 영상전에서 볼 수 있는) 가와세의 영화는 23살에 찍은 첫 번째 8㎜ 영화 〈따뜻한 포옹〉과 그 이듬해에 만든 〈달팽이〉다. 두 편 모두 처음 카메라를 잡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실수를 하고야 만다. 종종 초점이 안 맞고, 삼각대가 없어서 화면은 시종일관 흔들리고, 녹음과 화면은 때로 맞지 않는다. 이미지도 너무나 유치해서 소녀 그림책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유심히 보아야만 한다. 가와세는 이 영화의 카메라를 자기에게 들이댄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는 자기를 떠났다. 그리고 어머니도 떠났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입양되어 자랐다. 아버지는 그가 23살이 될 때까지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가와세는 망설이다가 할머니에게 말한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요. 그는 자신의 수많은 사진들이 찍힌 그 장소를 다시 찾아간다. 거기서 자신에게 고백한다. 나는 슬픈데 세상은 왜 이토록 아름다운지를. 그는 같은 화면을 두 번 보여준다. 한번은 하늘을 보고, 다음번엔 구름을 본다. 그러고 난 다음 힘겹게 아버지에게 전화한다. 그 결단을 가와세는 혼자서 연출, 촬영, 녹음, 편집, 음악, 그리고 진행을 한다. 말하자면 가와세 나오미에게는 그 어떤 친구도 없다는 뜻이다. 영화는 세상에서 오직 유일하게 그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유치하고 실수투성이지만 진심 어린 하소연을 야마가타 영화제는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그는 야마가타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오가와 신스케와 함께 작업한) 대가 촬영감독 다무라 마사키와 만나 그의 도움으로 첫 번째 극영화 데뷔작 〈수자쿠〉를 만들어서 1997년 칸 영화제 최연소 신인 감독상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에는 〈사라소주〉로 경쟁부문을 찾아왔다. 만일 야마가타가 아니었다면 이 왕따 소녀는 그저 카메라만을 부둥켜안고 세상과 절연한 채 세상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할머니 등 뒤에서 울고 있었을 것이다. 야마가타는 그를 껴안은 것이다. 거기서 가와세는 세상을 향해 수줍게 자기를 고백한 것이다. 그의 공주병이 세상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야마가타는 이해한다.

말하자면 활력 연구소는 우리에게 야마가타와 같은 장소이다. 소년, 소녀들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영화를 필요로 할 때, 그들의 활력을 끌어안고 세상을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는 놀이터다. 가와세 나오미는 야마가타 영화제를 통해 히스테릭한 소녀에서 새로운 천사가 되었다. 우리들은 그런 장소를 죽이기 위해 열중한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2003년 12월31일, 충무로에서 영화의 활력을 잃다. 세상은 점점 시시해져 가는 중이다. 항의전화 합시다. (02)731-6513, 서울시장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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