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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태어났을 뿐인데…, <미스틱 리버>

건달, <미스틱 리버> 속 피해자끼리의 연대에 몸서리치다

얼마 전 한 젊은 아버지가 아이들을 한강에 내다버렸다. 카드 빚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빚을 진 이유가 궁금해서 기사를 꼼꼼히 읽어봤다. 그는 신용카드로 빚을 얻어서 노름을 했다. 아! 장렬한 아버지, 목숨 걸고 도박을 하다니… 그런데, 이 투사가 왜 그까짓 빚 3500만원 때문에 제 새끼 둘을 차디찬 강물에 던졌을까? 그것도 불과 스물다섯의 나이에.

영화 <넘버3>가 보여준 먹이사슬을 들이대면 이런 가설이 가능하다. 열아홉살에 아이를 낳았으니 공부는 어지간히 안 했다. 품행도 제로다. 고등학교 때 배꼽바지 입고 놀다가 학교 앞 분식집에 담배 피우러 가서 교복에 옷핀 꽂은 여학생을 만났다. 성교육 시간에 졸았기 때문에 피임법을 몰라 아이는 생기는 대로 낳았다. 한겨레신문에 나온 부산 성인오락실 단속 기사를 보고 그게 뭔지 궁금해서 동네 오락실에 갔다. 대리운전해서 번 월급을 다 날렸다. 그 다음 월급도 다 날렸다. 본전생각에 카드 빚을 내 또 갔다. 느는 것은 카드 빚밖에 없다. 더이상 카드 빚을 돌려막을 수 없어서 인터넷 광고를 보고 ‘카드 빚을 대신 갚아준다’는 무지 고마운 회사를 찾아갔다. 왼쪽 팔뚝에 ‘차카게 살자’ 오른쪽 팔뚝에 ‘불사신’이라고 문신을 한 착한 불사신이 돈을 꿔주었다. 몇달 뒤에 불사신이 찾아와서 원금의 두배를 요구했다. 지금 갚지 않으면 다음달에는 네배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돈 떼먹고 달아난 사람들의 후일담을 자상하게 들려주었다. 김씨는 버터 발라 사자우리에 넣고, 박씨는 발가벗겨 냉동창고에 집어넣고….

품행제로는 억울하다. 그는 사채가 자신의 미래를 입도선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말한다. “본전 찾으려고 ‘단지’ 돈을 꿨을 뿐인데….” 그의 죄목은 머리 나쁘게 타고나서 멍청하게 행동한 것, 형량은 ‘대를 이어 빚 갚아라’이다. 불사신도 할말이 있다. ‘단지’ 돈 안 갚는 놈 혼내준 것뿐인데…. 오락실 조폭도 한마디 한다. “단지, 내 돈 투자해서 상납해가며 장사한 것뿐인데….” 오락실 뇌물을 받은 청룡봉사상 수상 경력의 경관도 억울하다. “단지, 눈 먼 돈 깡패 대신 썼을 뿐인데… 한달에 수억원씩 버는 깡패 돈 박봉에 시달리는 경찰이 쓴 것뿐인데….”

사람들 사이로 강이 흐른다. 무수한 ‘단지’의 입자들이 모여 강물이 되어 흐른다. ‘단지강’은 검게 오염돼서 강바닥은 캄캄한 암흑천지다. 거기에 유일하게 ‘단지’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묻혀 있다. “단지, 태어났을 뿐인데….” 하지만 그 아우성은 검은 물결에 파묻힌다. 2003년 7월 이후 한국에서 모두 23명의 아이가 ‘단지강’ 바닥에 유기됐다. 신문은 ‘불황 탓이냐 부모의 패륜 탓이냐’고 뚱딴지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단지 탓이다. 검은 물결에 몸을 숨긴 채 ‘단지’라고 말하는 주둥아리들 때문이다.

<미스틱 리버>에 나오는 세 아이도 ‘단지강’에 버려졌다. 다행히 복지국가의 아이들이라서 그중 두 아이는 목숨은 건지지만, 한 아이는 서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린다. 사연은 이렇다. 골목에서 세 아이가 노는데 변태 둘이 한 아이를 납치해서 사흘 밤낮으로 성폭행한다. 그 아이는 성인이 돼서도 이 기억에 떠밀려 자꾸 어디론가 흘러간다. 납치광경을 지켜본 두 아이도 분노와 죄의식 때문에 각각 경찰과 깡패가 된다. 이 깡패의 외동딸은 아버지가 죽인 다른 깡패의 아들에게 죽는다. 물론 우연이다. 그리고 이 깡패는 딸을 죽인 살인범이 납치당했던 아이라고 믿고 그를 살해해 강 속에 던져버린다. 물론 오해다. 깡패와 같이 납치광경을 보았던 경찰은 깡패가 살인한 사실을 알지만 모른 척한다. 이건, 단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인생이 꼬여버린 피해자끼리의 연대다. 그런데, 정작 ‘단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강바닥에 누워 있는 납치당한 아이이다. 단지, 그 차에 탔을 뿐인데, 아내에게 버림받고 친구에게 살해당한다. 나머지 두 아이는 결국 ‘단지’라고 말하며 친구 하나를 기억 속에서 지우고, 가족과 함께 축제의 퍼레이드 속에 파묻혀 새 삶을 준비한다. 나는 이 대목이 섬뜩하다. ‘단지강’의 피해자였던 두 아이는 단지강의 물결에 합류해서 강바닥에 있는 친구의 아우성을 지워버린다. 이 검은 물결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디에서 발원해서 어느 먼 바다로 흘러가는가? ‘의문의 강’에 플랑크톤처럼 부유하는 인간의 운명을 질문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노안은 강바닥까지 지그시 닿아 있다.

남재일/고려대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