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이탈리아 무성영화제-사일런트 디바
박은영 2004-01-19

스타 이전에 여신들이 있었노라

1월14일부터 ‘이탈리아 무성영화제-사일런트 디바’,

스타덤의 시작 프란체스카 베르티니 등을 만나다

진 켈리의 우중 가무신으로 유명한 <사랑은 비를 타고>는 유성영화 시대의 도래를 명랑하게 축하한다. 영화 속에서 배우의 목소리로 대사는 물론 노래까지 들을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해프닝들. 그중 뮤지컬 스타로 급부상하는 주인공 커플이 돋보이도록, ‘깨는’ 목소리의 ‘비디오형’ 여배우가 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는다는 이야기가 또 다른 축으로 코믹하게 펼쳐진다. 이것은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다. 우리의 기억이 닿지 않는 먼 과거, 무성영화의 스타란 어떤 존재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이탈리아 문화에서 오페라가 큰 비중을 차지하던 20세기 초,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를 뜻하는 말인 ‘디바’는 초기 영화의 여주인공들을 지칭하기도 했다. 1907년에 이미 9개의 영화 제작사와 500개의 극장을 설립 운영했다는 이탈리아는 영화 수출을 통해 4천만리라를 벌어들이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전세계 영화시장을 주름잡은 영화 대국이었다. 이 당시 이탈리아의 영화가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은 화려한 미장센과 대형 스펙터클 등 오페라의 본고장다운 노하우가 영화 속으로 녹아들었기 때문. 또 다른 포인트는 퇴폐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아름다움을 체현한 일군의 여배우들이다. 남성을 유혹하는 팜므파탈이거나 신문물에 대한 소화력이 왕성한 신여성으로 분한 그들은 대개 사랑 때문에 번민하거나 죄를 짓고 벌을 받는 수난을 겪었고, 이런 설정은 무기력한 신사나 우아한 탕아로 타입화된 상대 남성 역에 비해 드라마틱한 재미를 선사했다. 당시 이탈리아 무성영화의 활황이 ‘디바’들의 도약과 맞물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 초에 전성기를 구가한 이탈리아의 디바들을 21세기에 만나보는 느낌은 어떨까. ‘이탈리아 무성영화제-사일런트 디바’는 이탈리아의 대대적인 무성영화 복원작업 뒤에 뉴욕영화제에서 기획했던 프로그램 패키지로, 오는 1월14일부터 20일까지 하이퍼텍 나다에서 총 15편의 작품을 소개하게 된다.

프란체스카 베르티니 - ‘이탈리아의 여신’으로 불리며, 무성영화 시대를 풍미한 세계적인 여배우. 조각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이에 걸맞은 당당한 태도로 어필했다. 시대극, 멜로드라마, 로맨틱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사랑밖엔 난 몰라’형의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당대 작품으로는 드물게 사실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진 문제작 <아순타 스피나>(사진)에서 베르티니는 약혼자의 질투가 부른 범죄를 변호하기 위해 변호사에게 몸을 바치지만, 결국은 그 때문에 사랑을 잃어버리고 마는 가련한 세탁부 아순타를 연기해 각광받았다. 또 <푸른 피>에서는 남편의 외도와 이혼, 양육권 다툼 같은 부부문제를 겪는 젊은 아내로 출연했다.

피나 메니켈리 - 불온한 미소와 반항적 몸짓이 특징적인 그는 모든 디바 중에서 “가장 근대적이고 악마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엑스트라로 동원됐다가 연출 지시를 무시하고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는 등의 삐딱한 행동을 보여 조반니 파스트로네 감독의 눈에 띄었고 배우로 성장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거칠고 도도한 매력으로 남성 관객 사이에 높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어느 여인의 이야기>(사진)에선 자신을 불행에 빠뜨린 상류층 남성에게 복수를 시도하는 불우한 여인을, <비정한 남자>에선 여러 번 사랑에 빠지고 그로 인해 곤경에 처하는 백작 부인을 연기했다.

리다 보렐리 - 동그란 눈, 높은 코, 긴 턱, 물결치는 금발머리. “라파엘로 그림에 등장하는 관능적인 여인의 초상”에 다름 아니었던 리다 보렐리는 숙련된 연기력까지 갖춘, 이탈리아 최초의 디바였다. 가느다란 몸매가 드러나는 고급스럽고 유혹적인 의상, 복잡한 몸동작과 야릇한 시선이 특징적이다. <악마의 랩소디>에서는 영원한 젊음을 얻는 대신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악마와 거래하는 노부인의 갈등을, <악의 꽃>(사진)에서는 백작의 양녀가 된 창녀의 회한을 그렸는데, 이들 작품에서 다양한 연령대를 소화하는 것으로 연기력을 과시한다. 가족사의 비극을 알아차리고 어머니의 복수를 대행하는 여인으로 분한 <말롬브라>도 만날 수 있다.

박은영 cinepark@hani.co.kr

14일(수) *5:30 푸른 피 / 악의 꽃 / 아순타 스피나15일(목) 비정한 남자 / 악마의 랩소디 / 오스발도 마르스16일(금) 말롬브라 / 마망 푸페 / 어느 여인이야기17일(토) 연인 / 아순타 스피나 / 악마의 랩소디18일(일) *5:30 나폴리를 보라 / 사생아 / 스캄폴로 19일(월) 고아1 / 고아2 / 마망 푸페20일(화) *5:30 어느 여인이야기 / 비정한 남자 / 푸른 피* 자세한 영화정보는 하이퍼텍 나다 홈페이지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