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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의 생각도감] 집8 - [초원의 집]
권은주 2004-01-27

수십년 전에,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고 허리띠 졸라매던 시절에, 때가 오면, 우리도 잘 먹고 잘사는 그때가 오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어’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최고 인기가수 남진의 최대 히트곡 <님과 함께>에서 노래하던 그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에 대한 그 꿈은 영원히 유효하다. 누군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한백년 살기를 꿈꾸지 않으리. 풍요와 평화의 약속의 땅과 같은 푸르른 초원 위에 굳건히 자리한 행복의 성을 짓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개척의 시간들을 지나왔던가. 그 옛날, 거칠고 거친 서부의 숲속에서 통나무 집을 짓고 살던 로라 잉걸스네 가족들처럼 말이다. 그렇다, 아메리카 서부개척 시대의 감동적인 가족사가 <초원의 집>이라는 미니시리즈로 우리네 집집마다 일요일 낮 12시에 배달될 때, 우리도 꿈과 용기를 얻었다. 곰과 독사와 인디언의 흉포한 공격으로부터 가족을 지켜주던 그 통나무 집 안에 뜨거운 가족애를 보면서 우리는 은연중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위해 다시 한번 각오를 단단히 했는지도 모른다. 세월은 흘렀고, 나는 어른이 됐고, 아메리카의 서부는 이미 100년 전에 다 개척됐고, 한반도에는 그림 같은 집을 지을 초원도 없다. 초원은 아니지만 대신 친구들은 전원주택을 꿈꾸기 시작했다. 누구는 물 좋다는 어느 지방의 농가를 개조해서 들어가 살고 있고, 누구는 공기 좋다는 어느 골짜기에 새로 분양하는 전원주택 단지에 같이 들어가자고도 한다. 모두 그림 같이 예쁜 집들이다. 내 마음의 초원의 집이므로 그림같이 예뻐야 마땅하다. 그리고 또 강변과 호숫가와 바닷가의 풍광 좋은 곳에 그림 같은 집들이 하루가 다르게 지어지고 있다. 펜션(pension)이라 이름하는 그 집들은 고급 민박집이라 하여 여행자들에게 ‘초원의 집’에 대한 동경을 하룻밤 서비스해줄 수 있다. 펜션의 뜻이 ‘연금’, ‘퇴직금’ 등을 뜻하듯이 ‘펜션’은 노년의 퇴직자들이 퇴직금을 털어 투자하는 소규모 숙박업에서 유래하였다. 과연 지난한 인생 여정의 기나긴 개척시대를 지나온 노후의 보상으로는 그림 같은 초원의 집이 어울리겠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초원과 그림 같은 집이 있다.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r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