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컬처잼 > TV 방송가
악의 꽃, <천국의 계단>의 태미라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드러나는 것으로는 바다 속 깊은 곳에 살고 있는 강장동물류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저 오색찬란한 산호를 보라. 그 어둡고 깜깜한 곳에서 어떻게 그런 순색의 조화를 만들어 살고 있는가? 빛을 비추고 카메라를 들이대어서야 그들은 어둠 속에서 제 색을 내뿜는다. 그 가운데에서도 촉수를 세우고 닿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말미잘의 화려한 위용이야말로 섬뜩하게 저려오는 통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천국의 계단>을 보았다. 천국에 가는 서로 다른 방법들을 보여준다던 네명의 연인들은 계속해서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를 하고 잡힐 듯 말 듯한 아슬아슬한 순간들로 애간장을 태운다. 정서(최지우)의 기억 상실은 송주(권상우)의 피를 말리고 태화(신현준)의 잠적은 정서의 연민을 자극한다. 송주가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주지 않는 것에 치를 떠는 유리(김태희)는 어떻게 해서든 정서를 망가뜨려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누군가는 나서서 악의적으로 연인간의 만남을 방해하고 누군가는 지순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걸고라도 함께 있고 싶어한다. 정서가 걸핏하면 우는 바람에 나도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송주와 정서의 세팅에 태화는 희생과 온정의 끈이고 유리는 증오와 탐욕의 끈이다. 서로가 그 끈을 잡아당기며 드라마가 돌고 있었다. 지나치게 잡아당기지도 아주 놓아버리지도 않은 채.

그러나 나는 지순한 사랑의 연인들 앞에서 탄성을 지르기보다는 탐욕과 패악의 화신 앞에서 자지러졌다.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또한 얇기도 하고 두툼하기도 하면서 먹이를 향해 내뻗는 말미잘의 촉수와도 같이 내뿜어대는 태화와 유리의 생모, 태미라(이휘향)의 고혹적인 위용 앞에서였다. 그녀가 내놓는 한마디 한마디는 예술이었다. 사랑이라는 너절하고 시시한 것과 화려한 글로벌 그룹의 회장부인이 되는 것은 결코 맞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이라는 것을 유리에게 역설할 때, 자식이라도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팽개쳐버리고 심지어 해칠 수 있다고 그녀의 전남편에게 으름장을 놓을 때, 사람 꼴이 되려면 적어도 삼년은 핏덩이 자식을 키워야 하는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고자 삼년상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신 공자님이 무색하게도 태미라는 그대로 지순한 악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부모라는 이름이 처참하게 짓밟히는 그 현장은 이상하게도 너무나 순수해서 정신이 아득해왔다.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딸아이가 유리의 표독스러운 눈빛을 지켜보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더니 갑자기 TV 속으로 달려들어가 따귀를 한대 시원하게 때리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난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절대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가르쳐주어도 부족한 나이에 그 아이를 벌써 악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게 만들다니…. 매체의 힘 앞에 다시 한번 굴복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지순한 사랑은 사악함을 배경으로 해야만 드러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지순한 사랑을 안고 올라갈 수 있는 천국으로의 계단은 없었다. 태미라와 유리의 그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눈빛이 없이는 정서와 송주의 사랑도 제 빛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복수의 망치를 들고 노려보던 머리 위에 얹힌 동충하초파마(!)에다가 백여 마리가 넘는 달마시안의 가죽을 벗기지 못해 머리끝까지 울화로 쭈뼛 세우던 크루엘라처럼 근사한 모피를 걸친 태미라의 고혹적인 모습에서 난 무르익은 인간 욕망의 끝을 본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 따로 없었다. 미학은 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그녀의 자태에 난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나는 바란다. 제발 정서와 송주가 승리하고 태미라와 유리가 망가지는 상투적인 결말로 그 아름다운 악의 모습을 변질시키지 않았으면 하고. 궁극적으로 선이 승리하는 그 끝을 애타는 시청자들이 끝끝내 양보할 수 없다면 적어도 치졸하거나 변형된 비정상의 모습이 아니라 꿋꿋하고 당당한 악의 화신으로 사라져주었으면 하고. 철없는 딸아이에게 순수한 사랑을 가르치지 못하는 엄마의 가슴은 아프지만 태미라의 말대로 세상과 현실은 어쭙잖은 사랑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춥고 가난하기에 악의 지순하고도 본질적인 모습만이라도 끝까지 화려한 위용을 자랑해주기를 나는 너무도 학수고대한다. 어둠 속에서 꼬물대지만 생존을 위해서 촉수를 세우는 말미잘들이 카메라 불빛 아래에서 아름다운 몸체를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보여주는 것을 생명으로 하는 TV는 무엇이든 순색의 것을 보여주는 데에 인색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素霞(소하)/ 고전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