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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의 생각도감] 집9 - [러브하우스]

텔레비전은 때때로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요술 같은 능력으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한다. 기적을 만드는 텔레비전은 가난과 절망으로 도탄에 빠진 헌집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새집으로 바꾸어주기도 한다. 일요일 저녁 ‘MBC 러브하우스’

before - 라면박스와 빨갛고 파랗고 조악한 플라스틱 수납등과 짙은 고동색 가구들과 무너질 듯한 행거 위로 난지도의 넝마 같은 옷가지들. 쓰지도 못하고 쓸 일도 없지만 버리지 못하고 마냥 쌓아놓은 살림살이들이 쓰레기와 폐품들 사이에서 아무런 구분도 없다. 천장은 쥐오줌에 찌들어 있고 청테이프로 버티고 있는 벽지와 비닐이 처진 창문으로 겨울바람이 요동치고 있다. 아쉬울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사모은 살림살이들은 아무런 디자인도 라이프 스타일도 없다. 가난한 집이란, 쓰지도 못할 것을 버리지도 못하고 껴안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after - “자! 공개합니다!” 외침과 함께 현관문과 방문과 화장실 문이 열릴 때마다 탄성이 쏟아져 나오고, 눈물과 고마움과 감격과 또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는 감정들이 복받쳐 오른다. 사랑과 감동의 러브하우스는 어두운 그림자는 하나도 없이 눈부시게 하얗다. 아. 행복이 가득한 집. 병든 노모를 위한 홈 오토메이션 빌트인 가전제품에, 자동문과 멜로디가 나오는 변기가 마냥 신기할 뿐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전에 쓰던 살림살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넝마 같은 옷가지가 귀신처럼 웅크린 자리엔 하얀 수납장에 곰인형만 예쁘게 앉아 있다. 찬장에도 꽃그림 접시 몇장만 예쁘게 진열되어 있다. 전기밥통과 냉장고는 아직 쓸 만해도 미관상 처분되었으리라. 잘사는 집이란, 구질구질한 것들을 다 내다버리고 고급자재로 하얗고 푸르게 인테리어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러브하우스’는 사랑은 알지만 가난은 모른다. 하얀 집은 ‘가난해도 살기 좋은 집’은 아니다. 그래도 고마운 건 사실이다.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