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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검은 피부의 영화제
옥혜령(LA 통신원) 2004-02-17

12회 팬아프리칸영화 및 예술제, 전세계 아프리카인들의 이야기들 한자리에

국내외에서 각종 굵직한 영화제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12회 ‘팬아프리칸영화 및 예술제’(PAFF)가 2월5일 조용히 시작되었다. 전세계 각지에서 선발된 160여편의 아프리칸영화가 상영되는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아프리칸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의 선명한 정체성 탓인지 기타 영화제에 비해 언론과 일반인의 관심을 끄는 것이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피부 색깔이 삶을 차이짓는 공통의 경험을 가진 전세계 아프리카인들의 갖가지 삶의 이야기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유명한 갱스터, 스탠 투키 윌리엄스의 실화를 그린 오프닝작, 본디 커티스-홀가독의 <리뎀션>은 슬램을 벗어나려는 욕망과 좌절이라는 고전적인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의 팍팍한 현실을 대변한다. 어느 곳이나 각기 다른 모양새의 ‘슬램’은 있게 마련이어서, <혁명은 방송되지 않는다>가 전하는 베네수엘라의 쿠데타이건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의 잔재가 드리운 <바위의 병사들>이건, 스크린에선 여전히 슬램과의 전투가 진행 중이다. 부대행사로 영화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패널과 워크숍은 필름투자, 포스트프로덕션 등 실무적인 주제뿐 아니라, 미디어에서의 흑인 동성애자의 이미지, 미국 내 무슬림의 이미지 등의 첨예한 주제를 논의하며 스크린 밖의 전투에도 한몫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무거운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들도 있으니, 자메이카의 불멸의 스타, 밥 말리의 아들이 배우로 데뷔한 영화제 폐막작, <원 러브>를 가득 채운 레게나 힙합 뮤직 인더스트리를 해부한 <불멸의 힙합>, <카니발의 제왕>의 주인공인 삼바 뮤직은 아프리칸들의 삶의 한 부분으로서의 음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특히 영화제 부대행사 중 아프리칸 음악의 구전(oral) 전통을 차용한 ‘스포큰워드 축제’는 그 독창성으로 단연 눈길을 끈다. 전세계에서 선발된 음유시인들이 길거리 스피치나 랩, 힙합 경연대회에서처럼 라이브 래핑의 형식으로 공연한다고. 영화제 기간 중, 아프리칸 아메리칸 인디영화계의 선구자, 멜빈 반 피블스가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오는 16일, 7개 부문에 작품상을 수여하는 것을 끝으로 영화제는 막을 내린다.LA=옥혜령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