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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너트 | 크라잉 너트의 스크린 소동
2001-06-01

인디밴드 크라잉 너트, 장편디지털영화 <이소룡을 찾아랏!>으로 배우의 길에 서다

“무언가 일이 벌어지려 한다/ 내 안에

꿈틀대는 그 무엇 밖으로 나오려 한다.”-<이소룡을 찾아랏!> 중, <하수연가>(2001년, 3집, 드럭 발매)

밴 드 , 영 화 를 만 나 다

‘쑈도

보고 영화도 보고.’ 최근 서울 곳곳에 나붙은 이런 제목의 전단은 70년대 가수의 ‘리사이틀’이나 ‘효도관람용’ 버라이어티쇼를 알리는 것이

아니다. 인기 록밴드 크라잉 너트의 공연소식을 담은 이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적혀 있다. ‘크라잉 너트 주연 영화 <이소룡을 찾아랏!>

공개 시사회.’ 원래 장난치기를 즐기는 이들인지라 농담인가 싶지만, 오는 6월9일 서울 정동이벤트홀에서 열리는 이들의 공연 직전 공개되는 <이소룡…>은

정말 크라잉 너트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장편디지털극영화다.

서울에 나돌기 시작한 ‘이소룡 바이러스’로 주위 사람들이 죽어가자 충격을 받은 크라잉 너트 멤버들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서울 곳곳을 누빈다는

내용을 가진 일종의 로드무비인 <이소룡…>은 극영화라곤 하지만 좀 특이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섞여 있고, 현실과 판타지가

얽혀 있으며, ‘활동사진’과 스틸사진이 공존하는 이 작품은 내러티브보다는 이미지에, 논리적 구성력보다는 상상력에 더 큰 비중을 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실험영화나 예술영화인가 하면, 그건 더더욱 아니다. 그저 크라잉 너트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싱싱한 감각이 두드러진 ‘비주류영화’일 뿐이다.

사실 이 작품에 전문배우가 아닌 크라잉 너트가 출연하게 된 데는 이들이 속한 ‘드럭 공동체’ 대표 이석문씨의 영향이 컸다. 홍익대 앞 최초의

라이브 록클럽 ‘드럭’을 열면서 한국 인디음악계의 대부로 자리를 굳혔지만, 본디 영화청년이었던데다 동서가 박광수 감독, 처남이 배우 이재준,

친한 고교동창 중 하나가 차승재 싸이더스 부사장인 탓에 그에게 영화는 여전히 꿈의 한축을 이루는 세계였다. 크라잉 너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그의 계획에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에서 연출부로 일했던 강론 감독과 조미현 프로듀서가 합류하면서 총제작비 1억2천만원짜리

‘이소룡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몽키스패너가 머리를 때려도/ 예쁜 아가씨의 머릿결이 스쳐도/ 눈을 떠보면 차가운 내 길바닥/ 꽃이여 피거라

비라도 내려라.”-<양귀비> 중, 3집 <하수연가>

두 부 근 육 도 하 면 , 이 두 박 근 된 다

마침내 지난해 5월 촬영이 시작됐지만, 제 아무리 음악쪽에선 날고 긴다는 이들 네명도 영화판에선 결국 ‘초보배우’에 불과했다.

감독이 이들에게 맞게 대사를 줄이고 대부분의 내용 설명을 내레이션으로 처리하는 등 내용을 수정해줬다곤 하나, 연기내용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큰 상황만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배우의 창의력을 존중하는 스타일인지라 이들은 더더욱 카메라 앞에 서기만 하면 얼어붙기 일쑤였다. 돌파구는 엉뚱한

곳에서 만들어졌다. 촬영은 거르더라도 매일같이 새벽녘까지 열렸던 뒤풀이에서 감독은 다음날 촬영할 부분이 어떤 장면, 어떤 흐름이며, 어떤 감정일

것이다, 손짓과 말투는 대충 이렇게 가져가는 게 좋겠다, 이런 식으로 차분히 자신의 뜻을 전달했고 이를 통해 크라잉 너트는 연기의 세계를 조금씩

깨쳐나갔다. 게다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힘들어하기보다는, 무언가를 해도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딴 것 하면 되는 거고”(이상면)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크라잉 너트이다보니 잘 안 되는 연기도 ‘재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어려운 점도 많았다. 특히 네명 중 가장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던 베이시스트 한경록씨의 고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 웃통을 벗고 들어가 이소룡처럼 눈을 번득이는 영화의 하이라이트장면은 그야말로 지옥훈련이었다. “감독님이 ‘야, 이 두부근육아’라며

놀렸어요. 그래서 매일같이 팔굽혀펴기와 달리기를 했는데, 근육이 잘 안 만들어지고 살도 안 빠지대요. 촬영 이틀 전부터 밥을 안 먹었는데,

막상 촬영 전날엔 술을 많이 먹어 정신이 없는 가운데 14시간인가 똑같은 장면만 찍었어요. 서른여섯번 쯤 찍었는데….”(한경록) 뭔가 외우는

데 자신이 없는 기타와 보컬의 박윤식씨는 대사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사막 비스무레한 곳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 장면인데, 대사가 한 페이지가

넘었어요. 그런데 하나도 못 외웠어요. 결국 한 단어 한 단어 잘라서 찍은 다음에 이어붙였죠.”(박윤식) 진지한 척하는 게 ‘쥐약’이라 감독이

원하는 표정을 짓는 게 어려웠다는 드러머 이상혁씨는 “거리를 달리는 장면도 좀 어려웠죠. 홍대 앞, 종로, 퇴계로 같은 데서 여기저기로 뛰면

앵글 밖으로 나가고 해서 다시 찍은 적이 많아요”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어려웠다기보다는 연기를 지독히 못하는 나를 찍으며 다른 스탭들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기타리스트 이상면씨는 오히려 가만히 있는 신이 더 어려웠다고 말한다. 차라리 ‘몸으로 때우는’ 게 낫지

카메라를 향해 표정을 짓는 것은 미묘하지만, 가장 힘든 일이었단다.

이들에겐 연기보다도 어려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오전 출근이었다. 모두가 야행성 체질인 탓에 전날 술을 왕창 먹고 들어갔다 하면(물론 뒤풀이는

매일 이뤄졌다), 아침에 잡혀 있는 촬영시간을 지키기 어려웠다. “하루도 안 빠지고 두 시간씩 늦게 왔다”(상면)는 나머지 세 사람과 달리,

주연으로서 책임감이 강해던 한경록씨는 거의 늦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음주가무’와 절연했던 것도 아니다. 그는 아침 일찍 나와야 하는

상황이면 오히려 술을 평소보다 더 마시고 드럭 앞 길거리에서 노숙을 했다. ‘몽키스패너사건’도 그런 상황에서 일어난 것. 어느날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만취해 드럭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원치 않은 시비에 휘말린 그는 4명의 상대와 격투를 벌여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평소

같으면 이런 시비는 어떻게든 피했겠지만, 당시 이소룡이라는 캐릭터에 지나치게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이소룡으로 착각했던 것. “그날

본 사람들이 그러는데, 내가 ‘아뵤∼’ 이렇게 이소룡 흉내를 내면서 옷을 막 찢고 그러더래요. 그러다 몽키스패너로 머리를 맞고 그랬다는데,

그래서 어떤 장면을 보면 그날 생긴 ‘땜통’ 자국이 있는데….”(경록)

“우린 매직 서커스 유랑단/ 임찾아 꿈을 찾아 떠나간다/ 우리는 크라잉

너트 떠돌이 신사/ 한많은 팔도강산 유랑해보세.”-<서커스 매직 유랑단> 중, <서커스 매직 유랑단>(1999년, 2집,

드럭 발매)

매 직 서 커 스 유 랑 단, 충 무 로 가 다

지난해

10월까지 계속된 촬영작업 동안 내내 크라잉 너트는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늘 열리는 클럽공연과 여름철을 맞아 지방 곳곳에서

벌어지는 록페스티벌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가운데 영화를 찍어야 했다. 하지만 모두 한번도 후회해본 적은 없다. 어차피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니까,

재미있자고 하는 것이니까. 그중에서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그의 ‘도둑 형제’와 대화를 나누는 극중 영화촬영장면.

그곳에서 팬티만 걸친 상혁과 경록은 허벅지를 파고드는 ‘분장 언니’의 묘한 붓질을 견뎌내야 했고, 십자가에 매달린 몸이 아니라 몸에 매달린

십자가가 흔들리지 않도록 꼿꼿한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일당 1만원짜리 아르바이트로 영화에 출연하는 극중 설정이 자신들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경록의 바보 연기가 실감나기도 하고, 대사 한줄을 채 외우지 못하는 철학자 ‘씨벨리우스’ 또는 ‘씨파르타쿠스’ 역의

윤식이 웃기기도 해서 이날 난지도 꼭대기 ‘사막’에서 땡볕을 받으며 이뤄진 촬영은 자꾸만 기억나는 풍경이다. 미아리고개의 활인소극장에서 벌어진

촬영도 이들의 사진첩 속에 인상깊게 남은 모습이다. 이소룡의 모습이 세명의 멤버의 알몸에 빔 프로젝터로 비쳐지는 장면을 찍을 때 전날의 과음으로

퉁퉁 부어오른 눈을 깜빡거리면 바로 NG가 나곤 했지만, 이들은 시종일관 낄낄 킥킥거리며 수시간 동안의 촬영을 마쳤다.

아쉬움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나름의 진지성을 발휘한다고 했던 연기지만 이들에게 심각함이란 별로 어울리지 않는 종류의 단어였던 탓인지 감독은

다소 의외의 연기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연기를 하다가도 ‘에이, 또 컷 하겠지’ 하는 생각에 씩 웃으면서 어색한 표정을

짓곤 했는데 그런 장면만 영화에 나오더라.”(경록)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 크라잉 너트의 다소 과장된 듯한 표정과 천연덕스러움은 어쩌면 “서울에

사는 건강하고 예쁜 젊은이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중이 담긴 것일지도 모른다.

“노래하면 잊혀지나 사랑하면 사랑받나/ 돈 많으면 성공하나 차 있으면

빨리가지/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가만있어/ 우리는 달려야 돼 바보놈이 될 순 없어.”-<말 달리자> 중, (1996년,

옴니버스, 드럭 발매)·(1998년, 1집, 드럭 발매)

런 어 웨 이

어쩌면 그 싱싱한 이미지는 크라잉 너트가 95년 드럭을 통해 데뷔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갖고 있던 것이 아닐는지. 한강중학교, 중경고등학교를

함께 다녔고 고등학교 때부터 스쿨밴드로 활동하던 이들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클럽을 출입하며 유명한 펑크 밴드들의 카피곡을 불러젖혔고, 서서히

자신들만의 음악색깔을 만들어왔다. 이렇게 크라잉 너트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90년대 초반 젊은이들의 심장을 관통한

얼터너티브 록이었다. 물론 시애틀에서 불어온 이 회오리바람은 이들이 데뷔할 때쯤 되자 뜨뜻미지근해졌지만, 활짝 열린 감성의 문을 통해 그들

속으로 들어간 얼터너티브의 ‘틴 스피릿’만큼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그런 탓에 90년대의 청춘송가라 할 만한 <말 달리자>나

<파랑새> <서커스 매직 유랑단> <다 죽자> 등 이들의 대표곡들은 가슴이 터져라 팔딱거리는 젊음, 세상의

통속적 운명을 거부하는 비장미, 깃털보다 가볍고자 하는 쿨한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결국 “남들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전해준다고

하더라”는 박윤식씨의 이야기처럼 크라잉 너트는 청춘의 확고한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끊임없이 어디론가 움직이려는 이들의 역동성은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나, 데뷔 초기만 해도 스스로 인정하듯 서툴기 그지없던 연주솜씨도 하루도 빠짐없이 클럽무대에 오른 덕에 이젠 누가 뭐라해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추게 됐다.

다음달 초에 발매되는 이들의 세 번째 앨범 <하수연가>에서도 여전히 이들이 달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펑크로 출발해 폴카, 스카, 트로트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짬뽕 등으로 계속해서 새 영역을 구현해온 크라잉 너트는 이번에도 색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촬영을 마친 뒤 영화에 집어넣을

몇곡을 만들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 이번 앨범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뜻밖에도 ‘슬픔’이다. 대표곡 <밤이 깊었네>나 영화에 삽입된

<양귀비>, 그리고 <붉은 방> <몰랐어> 같은 음악에선 그동안 크라잉 너트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엷은 우울이 배어나온다. 영화작업이 앨범에

꽤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소룡을 찾아랏!>은 크라잉 너트에게 단순히 즐거움만 준 게 아니라 진한 무언가를 삼키게 한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영화작업을 통해 영화감독, 마임이스트, 무용가, 첼로연주자, 사진작가 등 다양한 예술가를 만난 것이나 사선으로 기울어진 서울의 풍경을

내달리는 과정에서 쌓인 부조리의 푸른 그림자 같은 것이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대사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내가 벌

수 있는 것은 하루에 1만원, 이것으로 살아가기엔 너무 힘들다, 하지만 수많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가는 거다, 뭐 이런 내용인데

실제로 우리도 하루 1만원도 못 번 적도 있고 해서 와닿더라고요.”(경록)

“나의 지랄같은 염병할 인생에/ 삼라만상에 꼬이고 또 꼬였던/ 돌아오지

않는 청춘의 여름날/ 꽃이여 피거라 꽃이여 피거라.”-<양귀비> 중

우 리 의 밤 은 당 신 의 낮 보 다 아 름 답 다

독특한 색깔의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의 구성원답게 이들은 주로 개성이 강한 영화을 지지하는 편이다. 물론 각각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들은 주성치의 코미디에서 레오스 카락스가 감독하고 드니 라방이 주연한 작품들을 거쳐 사지절단 속출 엽기 호러영화까지

독특한 스펙트럼을 구축하고 있다. 음악을 본업으로 삼는 이들은 과연 영화작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연기도 일종의 리듬이고,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좀더 사소한 감정이랄까, 그런 것을 표현하는 것 같고 영화는 좀더 복잡하고 전체적인 것을 다루는 것 같다. 영화 안에는 음악도

들어가고 전체 스탭과 함께 만들어가고 오케스트라 연주 같다.” 한경록씨의 이야기처럼 이들은 영화 ‘데뷔’를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볼 수 있는

더 넓은 시야를 확보했다고 말한다. “음악을 들으면 영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나. 그런데 막상 영화를 해보니 그 영상이라는 게 좀 달라졌다.

앞으로 사운드트랙 작업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상면)

하지만 이런 거창하다면 거창한 이야기보다 <이소룡을 찾아랏!>이 이들에게 전해준 것은 좀더 소박한 차원의 뿌듯함이다. “스무살 때부터

지금까지 작업해온 것이 그동안 앨범으로도 남아 있지만, 이번 영화는 우리가 움직이는 모습까지 기록해줄 것이니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든가

“2000년 여름은 정말 날씨보다 뜨겁게, 보람있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한 계절로 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라는 이야기처럼 크라잉 너트는 영화를

통해 ‘지금 그리고 여기’에 놓인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본 것이다. 그들은 정말 “돌아오지 않을 청춘의 여름날”을 필름에 새기고 다음 사진첩을

장만할 채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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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룡을

찾아랏!> 강론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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