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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소녀, 평강공주 되다 - <여고생 시집가기> 촬영현장
오계옥 2004-03-02

지난 2월19일, 얼어붙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 전주의 공기는 완연한 봄이 온듯 따사롭기만 했으나 <여고생 시집가기>의 촬영이 한창인 전주의 한 중학교 실내는 빛이 채 통과하지 못한 듯 쌀쌀하기 그지없었다. 교실을 가득 메운 엑스트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잘한 디테일들을 연습하고 있는 가운데 임은경은 휴지를 책상 위에 잔뜩 쌓아놓고 감정을 잡고 있는 중이다.

전생에서 열여섯에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서 애도 못 낳고 죽은 평강공주의 귀신이 씌운, 만 열여섯에 혼인이나 합방을 해서 애를 낳지 않으면 죽는다는 운명을 가진 평강(임은경). 전학온 운명의 상대 온달(은지원)과 첫 대면을 하게 되는 중요한 신이 그날의 촬영분이었다. 혜숙(임성언)이 울고 있는 평강에게 달려와서 온달의 전학소식을 알리는 장면에 이어서 교실로 달려오다 넘어지는 엑스트라 촬영분. 걸상을 딛고 올라서서 현장을 지휘하던 오덕환 감독은 계속해서 실수를 연발하는 엑스트라에게 “그게 아니잖아. 카메라에 얼굴이 잡히는 지점에서 넘어져야지!”라고 호통을 친다. 호통이 좀 미안했는지 “넘어진 데는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감독에게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남자 엑스트라는 그날 여러 번 계속해서 온힘을 다해 바닥으로 몸을 날려야 했다. 좁은 교실에서 많은 엑스트라들과 진행하는 현장에서 스탭들은 2배로 부산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정신없는 촬영현장에서도 감독의 ‘액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마술처럼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임은경은 신생 영화사의 첫 작품이자 오덕환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 <여고생 시집가기>를 양 어깨에 짊어진 셈. 그러나“현장이 부산해서 오늘은 감정 집중하기가 좀 어려워요. 그리고 무의식중에 흐르는 눈물이라 고민을 많이 했어요”라며 부담감도 피력한다. ‘신비한 소녀’로 고정되어 있던 자신의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에게 이 영화는 “처음으로 영화 찍는 기분”을 맛보게 해주는 의미있는 작품이다. 임은경에 대한 믿음과 재미있는 컨셉을 지닌 시놉시스에서 자신감을 얻어 영화를 선택했다는 감독은 이전의 한국 멜로코미디들과 <여고생 시집가기>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이 영화는 진부한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라 ‘꿋꿋하게 살아라’라는 주제를 가진 영화다”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신생 영화사와 신인감독, 임은경을 제외하면 모두 신인 연기자들로 구성된 이 생기로 가득 찬 싱그러운 영화는 이제 절반가량의 촬영을 전주에서 마치고 서울과 양수리에서의 촬영만을 기다리고 있다. 5월 말이나 6월 초면 온달과 평강의 운명의 실타래가 어떻게 풀려가는지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을 예정이다.

사진·오계옥 글·김도훈

△ 엑스트라의 “선생님 오신다!”라는 외침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임은경과 임성언. (왼쪽 사진)

△ 끊임없이 계속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지친 표정없이 성실하게 임하는 영화의 두 주인공 평강(임은경)과 온달(은지원). (오른쪽 사진)

△ 이날 진행된 촬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운명의 상대가 올 것을 예감하며 자리에 앉아 있는 평강(임은경)의 미묘한 감정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왼쪽 사진)

△ 삼삼오오 모여앉아 게임을 계속하는 엑스트라들. (오른쪽 사진)

△ 선생님 역의 김제록. (왼쪽 사진)

△ 첫 장편영화를 연출하는 오덕환 감독. (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