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영화제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전국 순회 상영 [1]
박초로미 2004-04-14

‘영화의 스승’을 따라가는 여행

구로사와 아키라의 유작이 되고 만 <마다다요>는 사전정보가 없으면 자칫 그의 영화가 아니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는 영화다. 여기에서 보여지는 것 같은, 관조의 시선을 가지고 만들어진 단아하고 정적인 세계는 전형적인 구로사와의 세계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던 해부터 노년의 구로사와는 (결국 완성을 보진 못한) 새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 <바다는 보고 있다>라는 제목의 이 프로젝트 역시 구로사와의 영화를 관심있게 봐왔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의외의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통과해서 구로사와는 남성의 세계가 아니라, 에도 시대의 두 매춘부가 주인공인 여성의 세계로 들어가려 했으니 말이다.

뛰어난 절충주의자 혹은 위대한 코스모폴리탄

구로사와가 말년에 시도한 이 ‘노고’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도 그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그로부터 몇년 전 아카데미 특별공로상을 수상하면서 그가 들려줬던 수상소감일 것 같다. “정말이지 나는 아직 영화의 본질을 파악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란 굉장한 것이지만 그 진정한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아주아주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후에도 최대한 열심히 영화 만들기를 계속할 것이고 그 길을 따라감으로써 영화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것임을 여러분들에게 약속드립니다.” 아마도 구로사와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한 듯하다. 그래서 그는 영화를 향한 또 다른 길들, 또 다른 가능성들을 향해 과감하게 탐험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은 아닐까.

언젠가 구로사와는 자기에게서 영화를 빼고 나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처럼 구로사와는 영화에 입문하고부터 쉼없이 ‘영화의 길’을 따라서만 걸어간 사람이었고 또 그렇게 해서 자신만의 인장이 담긴 확실한 자기 세계를 창조해낸 사람이었다. 바로 그런 이가 노년에 이르러 다소 일탈적인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영화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고심했다는 것은 충분히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많은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구로사와를 두고 ‘스승’이라고 불렀는데, 이야말로 진정한 스승의 자세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여러 다른 세계의 영화감독들로부터 구로사와가 ‘영화의 스승’이라 불린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자신의 영화들을 가지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생생한 교본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관객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게 하는 영화적 만듦새에 관한 한 구로사와만한 모범적 사례를 영화사에서 달리 찾기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할리우드식 대중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구로사와는 우선 캐릭터와 사건의 전개가 탄탄하게 맞물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기본적으로 구로사와의 드라마투르기는 정통적 혹은 고전적이라 불릴 만한 것이었으나 한 사건을 들여다보는 다중적 시점을 제시하거나(<라쇼몽>), 또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일종의 대칭을 이루는 내러티브의 기하학을 구축하거나(<천국과 지옥>) 함으로써 내러티브상의 미묘한 혁신을 도입하기도 했다.

여하튼 구로사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체로 그 궤적이 뚜렷한 동적인 것이었고 그것을 받쳐주는 스타일 역시 그에 맞게 역동적인 것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고전적 편집방식을 따르면서도 에이젠슈테인식의 충돌의 몽타주 원리를 끌어들여서 완급의 리듬을 조절할 줄 알았다. 한편으로 한때 미술의 길을 걸을 결심도 했던 이답게 구로사와는 탁월한 구도 감각을 발휘하면서 와이드스크린의 활용 면에서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주요 요소들이 그의 영화들을 일본적이지 않다고 낙인을 찍는 데 기여한 바가 없지 않은데, 그의 영화들에 일본적인 미의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사실과 다르다. 예컨대 그는 평소에 일본 전통극인 노(能)에 관심이 많아서 그것을 <거미집의 성> 같은 자신의 영화에 적극적으로 끌고 오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구로사와는 옛것과 새것,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을 모두 자기의 영화에 끌고 들어와 흥미로운 영화를 만든 감독, 그래서 뛰어난 절충주의자 혹은 위대한 코스모폴리탄이라 불릴 만한 감독일 것이다.

‘마다다요’- 아직 죽지 않았다

마스무라 야스조라는 일본의 영화감독은 구로사와가 왜 거장인가에 대해 거론하면서 시각적 표현력과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사상과 테마, 두 가지의 조건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제 후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모두가 동의하는 대로 구로사와는 휴머니즘의 가치를 지지하는 감독이다. 그는 자기 영화 속의 인물들로 하여금 어떤 윤리적인 딜레마에 처하게 만든다. 예컨대 죽음을 기다리게 된 <이키루>의 와타나베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룬 것도 없고 즐겨본 적도 없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같은 인물들이 책임감을 갖게 되고 어떤 행동에 착수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구로사와는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인가, 그리고 우리 인간은 어떤 조건 속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들을 탐구해왔다. 이런 구로사와를 두고 영화평론가 도널드 리치는 “일본영화의 가장 위대한 휴머니스트”라고 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특별하게 샤카이모노(사회물)영화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든 감독”이라고도 쓴 바 있다. 즉 구로사와의 영화들은 그것의 배경이 과거이든 아니면 현재이든 당대 사회에 대한 구로사와의 해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구로사와 자신도 자기의 영화들에는 저널리스트적인 감수성이 스며들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비슷한 식의 이야기를 한 후세대의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라면 적극적으로 반대했겠지만). 예컨대 그의 영화들 속에서 인물들을 짓누르는 데에는 <들개>에서처럼 전화(戰禍)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회 혹은 <천국과 지옥>에서처럼 높은 곳과 낮은 곳이 나눠진 경제성장 뒤의 사회가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후기작인 <>의 마지막 장면인 눈먼 이가 성벽 위에 위험하게 갈 곳 몰라 서 있는 장면 역시 당대 사회와 세계에 대한 구로사와의 해석이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구로사와의 영화들은 물론 기본적으로 대중을 배려하는 것이라 아주 노골적이진 않더라도 종종 교훈을 주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곤 하는데, 다른 이에겐 몰라도 적어도 구로사와 자신에게는 이건 그리 불편한 일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는 인간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무언가 가르치고 배운다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던 듯싶다. 공교롭게도 그의 필모그래피는 사제 관계에 대한 영화 <스가타 산시로>로 시작해서 또 다른 스승과 제자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마다다요>로 마감하고 말았다. 구로사와의 첫 영화는 초심자가 주인공인 것이었지만 마지막 작품에 오면 스승으로 주역이 바뀐다. <마다다요>의 제자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는 그 스승은 아무래도 구로사와 자신의 분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인용한 마스무라의 말처럼 탁월한 영화적 테크닉과 보편적이게 통속적인 사상으로 관객을 위한 영화를 만들었던 구로사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코시즈, 샘 페킨파 등 수많은 제자를 거느린 스승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비록 그가 존재하진 않지만 그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 있는 이 세상에는 ‘마다다요’(아직은 죽지 않았다) 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 상영기간: 2004년 4월16일(금)∼25일(일)

■ 상영장소: 서울아트시네마 ■

상영시간표

오후 12시

2시30분

5시50분

8시

4월16일(금)

스가타

산시로

주정뱅이

천사(2:30)

요짐보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17일(토)

들개

란(2:30)

거미집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8:20)

18일(일)

요짐보

7인의

사무라이

19일(월)

쓰바키

산주로

천국과

지옥

붉은

수염(7:10)

 

20일(화)

7인의

사무라이(1:30)

 

마다다요

이키루(8:20)

21일(수)

들개

특별강연(6:00)

22일(목)

숨은

요새의 세 악인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거미집의

천국과 지옥(8:20)

23일(금)

이키루

스가타

산시로

7인의

사무라이(7:10)

 

24일(토)

주정뱅이

천사

붉은

수염(2:30)

요짐보

25일(일)

쓰바키

산주로

거미집의

성(2:30)

(8:20)마다다요

■ 주최: 서울시네마테크

■ 공동주최: 일본국제교류기금

■ 후원: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 문의: 02-3272-8707, www.cinemathequeseoul.org ※4월21일 오후 6시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특별강연(강사: 영화평론가 한상준)을 가질 예정입니다.

▶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전국 순회 상영 [1]

▶ 구로사와 아키라 회고전 전국 순회 상영 [2] - 상영작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