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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일본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오즈의 세계
홍성남(평론가) 2004-05-10

5월에 부산과 서울에서 차례로 만나는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

자신보다 연배가 어린 구로사와 아키라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조구치 겐지가 경쟁심을 불태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들과 함께 일본 영화계의 또 하나의 거목으로 인정받는 오즈 야스지로의 경우에는 해외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에 대해 그리 조급해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젠가는 자신이 이해받을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던 그는 50년대 후반쯤에 자신에 대한 서구에서의 긍정적인 평가가 조금씩 고개를 들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우리의 야만인 친구들’도 이해를 했다는 거지?”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본격적인 ‘오즈 붐’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에 대한 (서구에서의) 열광은 그의 죽음 이후로, 특히 70년대 초반 이후에서야 번져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즈의 세계는 국제적으로는 그처럼 다소 뒤늦게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세계를 접한 이들에게 미약한 파장을 미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사정이 그와 반대라는 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오즈만의 독자적인 ‘우주’

우리가 흔히 통상적인 눈높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낮은 위치에 자리한 카메라, 그 카메라의, 트릭을 전혀 쓰지 않으며 움직임을 거부한 정적인 시선, 굵직한 굴곡이 없는 길을 따라가는 스토리라인 등, 오즈의 영화들을 본 이들은 그것들에서만 특별히 찾아볼 수 있는 특징들을 캐냈고 오즈적 세계에 대한 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미묘한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물었다. 어떤 이들은 오즈는 가장 일본적인 영화감독이고 전통주의자라고 부르면서 불교나 선의 개념들을 끌고와 오즈를 이해하려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일본 문화에 대한 특별히 깊은 이해가 없이도 오즈의 영화를 설명할 수 있다고도 논했다. 오즈의 영화는 무엇보다도 영화적 형식에 우리의 시선을 모으는 것이니 만큼 그것에 대한 논의로부터 풍부한 비평적 함의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식의 논의가 타당한가 하는 복잡하고 곤란한 문제를 일단 논외로 친다면, 오즈의 영화가 실로 다양한 갈래의 목소리를 내게 할 수 있는 영화비평의 풍성한 저장고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물론 오즈의 영화는 이해되어야 하고 연구되어야 할 중요한 비평 텍스트이지만 그 이전에 감상할 작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일본 내에서 오즈는 로베르 브레송이 아니라 존 포드 같은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비록 아주 얕거나 천박한 방식은 취하지 않았을지라도 여하튼 당대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노력했던 상업영화감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위대한 것은 시공간의 거리를 넘어서 존재하는 관객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일본영화 전문가인 막스 테시에는 오즈는 우선 이해되고 분석될 대상이 아니라 느끼고 경험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오즈의 그 오묘할 수도 있는 세계는 자기 같은 서구인들에게도 절대 불가해한 어떤 것으로 다가오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이건 오즈의 영화들이 당대 일본 사회의 가족제도나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를 그렸으면서도 그 너머로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의 근원적인 비애감을 투영해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오즈는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킬 줄 아는 세계를 제시했던 영화감독이다.

영화사의 거장들이 대개 그렇듯, 오즈는 영화에 접근하는 자신만의 방식, 그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재료로 온전히 자신에게만 속하는 하나의 우주를 만든 사람이었다. 현재까지도 그 우주는 때론 무신경함으로, 또 때론 존경심을 가지고서 자주 모방되어오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방작이 무턱대고 오즈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전 오즈의 조감독을 지냈던 이마무라 쇼헤이의 이야기에서 입증된다. 그는 오즈 밑에서 일했던 야마모토 고조가 예전의 오즈의 스탭들을 데리고 완전히 오즈 스타일로 찍은 <내 아내의 봄>은 전혀 흥미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마무라는 이렇게 말한다. “오즈 영화들의 세계는 결국에는 오즈에게만 속했다.” 여전히 흥미로운 비평의 대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적 감동의 대상이기도 한 그 독자적인 우주가 다시 한번 우리 곁에 찾아온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 Homage to Ozu Yasujiro>

주최: 시네마테크 부산, 하이퍼텍 나다

▷부산 5월8일(토)∼23일(일) 장소: 시네마테크 부산(051-742-5377, 5477)

▷서울 5월28일(금)∼6월10일(목) 장소: 하이퍼텍 나다(02-3672-0181)

▷ 상영시간표 및 문의 http://www.cinematheque.seoul.kr http://www.cinemathequeseoul.org

셋방살이의 기록 長尾紳士錄 1947년l 흑백 l 72분

전쟁이 끝난 뒤 오즈가 처음으로 만든 영화인 <셋방살이의 기록>은 패전 이후 일본의 모습을 유사가족 이야기 안에 담아낸 작품이다. 홀로 살고 있는 중년 여성 타네는 이웃 남자로부터 아버지를 잃은 한 어린아이를 억지로 맡게 된다. 그녀는 항상 뿌루퉁한 표정을 짓고 고집 센 이 아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둘 사이는 언젠가부터 부모 자식 사이처럼 되어버린다. 패전 뒤의 쓰라린 일본의 표정을 담고 있는 리얼리즘적인 작품이지만 오즈는 따뜻한 유머감각을 발휘해 영화를 마냥 싸늘한 것이 되지 않게 만들었다. 데이비드 보드웰이 “만일 오즈가 이 영화만을 만들었더라도 가장 위대한 영화감독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극찬한 작품이다.

늦봄 晩春 1949년l 흑백 l 108분

홀로 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떠나지 않으려는 딸의 이야기를 정제된 형식 안에 담은 <늦봄>은 후기 오즈 영화(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오즈(Our Ozu)”)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영화다. 결혼적령기를 지난 여인인 노리코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다는 마음에 결혼하기를 거부한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가 재혼을 고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야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영화비평가 크리스 후지와라는 <늦봄>을 두고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러브스토리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러브스토리’를 다룬 이것은 ‘러브스토리’라는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미묘한 보기와 읽기가 가능한 영화다. 하라 세쓰코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오즈의 영화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동경이야기

東京物語 1953년l 흑백 l 135분

<동경이야기>는 서구에 강한 인상을 남겨준 최초의 오즈 영화로 이후로 오즈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이 된 작품이다. 초창기에 미국에서 소개되었을 때 붙은 제목(<그들의 첫 번째 동경 여행>)처럼 영화는 자식들을 보러 도쿄에 온 노부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자식들은 이들을 귀찮아하고 오히려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은 전쟁 중에 남편을 잃은 며느리이다. <동경이야기>에 대해 오즈 자신은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일본 가족 제도의 붕괴를 그리려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영화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사회의 단면을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삶이라는 것 자체의 덧없음에 대한 감동적인 성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피안화

彼岸花 1958년l 컬러 l 120분

오즈의 첫 번째 컬러영화. 사실 이 영화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오즈는 아직 컬러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쇼치쿠사에서 다이에이 소속의 스타 야마모토 후지코를 기용하면서 오즈에게 컬러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코닥 필름보다 붉은빛의 아그파 필름을 좋아한 오즈의 취향이 드러난다. <피안화>의 이야기는 대략 <늦봄>의 네거티브쯤에 해당하는 것이다. 딸은 사귀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만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한다. 이 중심축 바깥에다가 미묘한 갈등을 빚는 부모-자식 관계의 작은 이야기를 두개 더 추가함으로써 영화는 좀더 풍요로워졌다. 세대 사이의 갈등을 아름다운 화면 위에다가 코믹하면서도 씁쓸한 향취로 그려낸 걸작.

안녕하세요

お早よう 1959년l 컬러 l 94분

오랫동안 주로 성인 혹은 노인의 시점에서 이야기되는 영화를 만들던 오즈는 자신의 무성 코미디 걸작 <태어나기는 했지만>(1932)을 리메이크한 <안녕하세요>에서 다시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돌아왔다. 도쿄 교외에 사는 가정의 두 소년은 부모에게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졸랐다가 거절당하자 침묵의 반항을 행한다. 영화는 그 반항과 그것을 만드는 상황으로부터 주로 웃음을 끌어낸다. 반면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수치심쪽이었다. 이것만 봐도 <안녕하세요>는 <태어나기는 했지만>을 그대로 리메이크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자크 타티식의 코미디 감각이 배어 있는 이 영화는 다른 한편으로는 색채의 다양한 이용에 대한 오즈의 특별한 관심을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고하야가와가의 가을

小早川家の秋 1961년l 컬러 l 103분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은 쇼치쿠가 아닌 다른 영화사에서 제작한 몇 안 되는 오즈 영화들 가운데 하나다. 영화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려움을 맞고 있는 한 양조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늙은 홀아비이며 장성한 세딸을 두고 있는 양조장의 주인 만베이는 최근 들어 외출하는 일이 잦다. 그는 19년 만에 만난 옛 애인에게 다시금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오즈의 필모그래피에서 마지막 두 번째 자리에 위치하는 <고하야가와가의 가을>은 만베이와 그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늙어간다는 것, 기대하지 않았으면서 불가피하게 마련인 변화와 마주한다는 것 그리고 삶의 덧없음을 껴안는다는 것 등을 조목조목 성찰하는 영화다. 여기에 담긴 유머와 씁쓸함의 묘한 공존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만하다.

꽁치의 맛

秋刀魚の味 1962년l 컬러 l 113분

오즈의 마지막 작품인 <꽁치의 맛> 역시 그의 몇몇 다른 후기작들처럼 늙는다는 것과 홀로 남는다는 것에 대한 차분한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여기엔 장난기 다분한 유머도 곁들여져 있다. 여기에서 오즈는 <늦봄>의 상황을 변주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내없이 혼자 살고 있는 회계사 히라야마는 딸에게 어울리는 신랑감을 찾아주려 한다. 결국 그는 딸을 시집보내고 홀로 남게 된다. <꽁치의 맛>이 오즈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형식의 제의, 혹은 유희를 극단적인 지점까지 밀고 가는 오즈의 면모를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순수하다고 표현할 스타일을 가지고 그는 삶의 우수를 빼어나게 표현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