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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녀의 미션 임파서블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 이신영(명세빈)의 실존적 고뇌다. 32살의 노처녀, 신영은 지금 결혼시장의 냉혹함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왜냐고? 안 팔리니까. 오랜 연인은 젊은 애한테 뺏겼고, 새로 찜한 남자는 한눈만 판다. 방송기자에 중산층 가정.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그런데도 ‘안 팔린다’. 물론 과년한 탓이다. 그래도 신영은 어떻게든 ‘팔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신영의 친구 진순애(이태란)도 안 팔리긴 마찬가지다. 결격사유는 소녀가장. 또 다른 친구인 장승리(변정수)는 재벌에 팔렸다가 반품당했다. 백인 아이를 낳은 죄다. 32살, 그녀들의 세일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 같이 나이가 계급이 되는 사회에서 여자 나이 30대 중반이면, 게다가 미혼이면 하층민 중의 하층민이다. 나이 카스트의 밑바닥에 깔려 죽을 지경이다. 대다수의 총각들이 만나기조차 싫어하는 불가촉 천민이다. 그래도 32살, 아직은 30대 초반이라고 우길 수 있다. 하지만 한두해 더 지나면 재고처리되기 십상이다. 땡처리당해 재혼시장으로 넘겨질 위기다. 그래서 신영은 울부짖는다. 내일이면 늦으리. 그래서 사랑이 필요한 거죠∼.

우리의 씩씩한 ‘노처녀 3총사’가 ‘미션 임파서블’에 도전한다. 그 불가능한 작전이 어찌 엽기로 흐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일단 엎어지고 보려고 몸으로 ‘댐비고’, 동남쪽의 귀인을 만나려고 침대를 대각선으로 놓는다. 코미디는 따놓은 당상이요, 페이소스까지 절로 흐른다. 이를테면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부제는 ‘파란만장 미스 리의 32살에 시집가기’인 셈이다. 어쩌나. 한국에서는 ‘파란만장 미스 김의 10억 만들기’보다 어렵겠다.

혼신의 힘을 다해도 어려운 판에 혼란스러움까지 겹친다. 어떤 세상은 그녀들에게 멋진 싱글로 살라고 꼬드기고, 또 다른 세상은 그녀들에게 결혼만이 지상목표라고 부추긴다. 결혼이냐 일이냐. 그녀들이 흔들린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아직 공중파의 선택은 ‘섹스’가 아니라 ‘결혼’이다. 그래서 한국판 <섹스 & 시티>라는 별명이 붙은 이 드라마의 제목은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된다. 캐리는 연애를 꿈꾸지만, 신영은 결혼을 꿈꾼다. 캐리에게 결혼은 공포지만, 신영게게는 미혼이 악몽이다. 그게 뉴요커와 서울시민의 차이다. 뉴요커였던 승리가 가끔 서울 시민인 신영과 순애에게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설교하지만, 결혼하고 싶은 여자들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한다.

마음을 다잡아도 세상과 그녀들의 불화는 끝나지 않는다. 30대 여성은 변했는데, 세상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고로 자신의 잣대와 세상의 척도가 어긋난다. 그녀들은 스스로를 아직 젊은 나이라고 여기지만, 세상은 그녀들을 아줌마 취급한다. 부모는 그녀들을 ‘치우지’ 못해 안달이다. 동료들은 그녀들을 낙오자 취급한다. 한국의 학교 현실을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선생님이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한다면, 그녀들의 현실은 ‘19세기의 사회에서 20세기의 부모가 21세기의 딸들을 닦달하는’ 모양새다. 어찌 문화지체가 일어나지 않으며 문화충돌이 없겠는가? 드라마는 그 충돌로 웃음을 만들고, 시청자는 그녀들의 엽기스러운 불행을 관음한다. 예컨대 가족들의 심려가 뻗쳐 신영의 공개구혼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고, 20년 만에 만난 첫사랑은 친구를 배려한답시고 이혼남을 소개해준다. 그래도 꿋꿋하게 신영은 동갑내기 준호(유준상)에게 집적대지만 준호는 띠동갑만 찾고, 기껏 달라붙는 남자는 “재고”인 이혼남 지훈(이현우)뿐이다. 이처럼 스스로를 응시하는 시선과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그래서 그녀들은 “내 인생은 장마”라고 되뇐다. 그렇다고 비가 그치기를 포기하지도 못한다. 참 곤혹스러운 시절이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았지만… 혹시 기다려보는” 나이. “아픈 만큼 성숙해지기에는… 아픔이 너무 생생한” 나이. 서른둘. 그 기다림이 외롭고 웃기다.

청첩장. <씨네21> 애독자 여러분도 잘 아시는, 72년 쥐띠생의 33살 ‘아가씨’가 드디어 ‘날’을 잡았습니다. 자신이 미모의 여기자라는 터무니없는 오보로 ‘만리동 끼자매’의 정론직필 정신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던 그 아가씨가 마침내 아가씨의 탈을 벗고 ‘아줌마’로서 영육일체를 이루는 경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 숱한 우여곡절에도 노구를 이끌고 마침내 ‘미션 임파서블’에 성공한 아가씨에게 ‘만리동 끼자매’의 자매로서, ‘템프테이션 아일랜드’의 열성당원으로서 감축 또 감축 드리옵니다. 참, 혼수 비용은 자신의 경험을 이신영 캐릭터에 무단으로 사용한 MBC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서 해결한다고 합니다.

신윤동욱/ <한겨레21>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