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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에 대하여

커다란 눈, 갸우뚱거리는 표정, 보들보들한 솜털로 덮인 짧고 통통한 몸에 만화처럼 큰 머리. 강아지와 병아리와 아기곰, 아기코끼리, 동물의 새끼들은 모두 귀엽다. 내 새끼가 아니라도 고슴도치 새끼조차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새끼들은 왜 귀여울까? 꽃들은 왜 예쁠까? 이런 질문이 어디 있어. 새끼니까 당연히 귀엽게 느껴지는 거지, 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유형기(幼形期)의 귀여운 외모는 생존에 필요한 용의주도한 설정이며 필사의 노력이다. 새끼들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자연환경에서 부모와 집단으로부터 사랑의 욕구를 불러일으켜 헌신적인 양육을 받으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치밀한 생존전략으로 ‘귀여운 외모’를 구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 인간이 보기에만 귀여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귀여운 것이다. 실제로 동물의 세계에서 우연히 남의 새끼, 심지어 다른 종의 새끼까지 열심히 양육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늑대소년 이야기가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숲에 버려진 그 갓난아기가 얼마나 귀여웠는가. 그것이 생과 사의 결정적 갈림길인 것이다.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수많은 책임과 의무에 시달리는 인간은, 오직 사랑만 듬뿍 받았던 유아기를 기억하며 그 귀여움의 힘을 연장하려 한다. 아기처럼 귀여운 존재에게는 무책임의 특권이 있다. 이른바 키덜트(kid+adult)는 어른으로서의 스트레스를 회피하기 위해서 훨씬 더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귀여움의 세계로 퇴행하려는 욕구를 보인다. 그러한 귀여움이 주는 ‘해방감’에 대한 의지(依支)는 점점 범사회적 보편정서가 되어가고 있다. 경찰서, 관공서, 정치권에도 각종 귀여운 캐릭터가 손 흔들며 인사하고, 비련의 사랑영화는 여고생의 좌충우돌 사랑 해프닝으로 대체되고 있다. 우아하고 고상하며 교양있고 성숙한 매력의 아름다움보다, 앙증맞고 깜찍하며 발랄하고 당돌하며 귀여운 쪽이 부담이 없다. 앓음다움을 구가하기보다는 귀여움을 떨기가 한결 쉽다. ‘귀여움’에는 결코 난해하거나 심각한 지경까지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귀여움에 의존하고 귀여움에 탐닉하는 시대. 그래, 너무 치열하고 복잡한 세상, 부담 좀 덜고, 좀 쉽게 가자는 거지. 에헴에헴 하는 것보다, 까꿍까꿍하는 게 우습긴해도 속편할 테다.

유아적 귀여움에의 집착은 일종의 정신적 유형성숙(幼形成熟 neoteny)이다. 유형성숙이란, 동물의 개체발생과정으로, 외모는 유형, 즉 성체로 변태하기 전의 유생상태로 머물면서 생식기능은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번식이 가능한 성체노릇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베이비 어덜트라고 말하면 될까. 유형성숙은 진화과정에서 새로운 종이 발생하는 중요한 지점이 되기도 한다는데 그렇다면, 인간적 유형성숙의 단계에 있는 베이비 어덜트는 먼훗날 어떤 인종의 시원이 될까. 슬쩍 궁금하다.

글·그림 김형태/ 무규칙이종예술가 www.thegim.com